[Opinion] 나는 콘텐츠로 세상을 배웠다 [문화 전반]

배움과 위로가 된 콘텐츠를 그대로 보답하고 싶다
글 입력 2022.02.19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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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전공은 사범대학 자연계열에 속해 있다.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는 이보다 더 좋을 임용고시에 최적화된 교육 과정이 따로 없지만, 만일 선생님이 될 생각이 없다면 정말 골치가 아파진다. 애석하게도 나는 후자였다. 전공과 맞지 않는다는 느낌은 일찍부터 피부로 느꼈지만, 애써 외면해오기도 했다. 그동안 나는 부모님 말도 잘 듣고 알아서 해야 할 일을 잘하고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정석의 모범생 루트를 밟아왔었다. 맹목적으로 따라간 엘리트 학벌주의의 끝은 공허함이었다.


과외는 잘 잡히는 학과였기 때문에 학과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았다. 아니 못했다. 집에서 수능이 끝남과 동시에 경제적 지원을 일절 안 해주셨기 때문에 학생, 학부생 신분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 나섰다. 내 전공을 활용하면 과외와 학원 아르바이트만큼은 잘 잡을 수 있고 시급도 꽤나 짭짤했다. 과외를 하면서 수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을 만났다. 나에게 영감과 신선한 자극을 주는 경험도 있었지만,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든 시간이 더 많았다.


적어도 내가 직접 보고 느낀 것에 의하면 드라마 < 스카이캐슬 >은 절대로 허구가 아니었다. 그깟 1등 2등 차이가 뭐라고, 사이좋게 같이 각자 분야로 나아가면 될 텐데. 전교 1등이, 문제를 하나라도 더 맞추는 게 무조건적인 만병 통치약은 아닌데, 과도한 경쟁과 욕망, 성적이 나쁜 아이에 대한 부당한 분노로 가득 차 있는 드라마는 곧 현실이었다. 학생들은 앞다투어 수학 선행 진도를 나가고, 원리를 이해하지도 못하지만 일단 머리에 풀이법을 채워 넣는데 바빴다. 학생들은 자신이 무얼 하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저 어머니들이 짜 준 커리큘럼에 움직였다.


'실생활'에서는 학교 교과과정 중 배우는 수학이 쓰이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수적으로 분석을 하는 데에 필요한 역량은 실제 교과 과정의 수학을 배움으로써 얻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적분과 통계, 기하와 벡터는 분명 쓰일 데가 있는 것은 맞으나 원리와 그의 올바른 활용이 중요하지, 베베 꼬인 문제를 전략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얼마나 소용이 있을까. 4점짜리 킬러 문제 하나를 맞추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대치동에서 탈출하여 멀리서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니, 한숨밖에 안 나온다. 성적으로 학생들의 서열이 암묵적으로 형성되는 분위기 또한 만연했다.


내 고등학교 생활을 돌이켜봐도 그랬다. 부모님은 내가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 관심이 없었고, 그저 전교 1등 하면 좋아했다. 높은 성적임에도 전교 등수가 떨어지면 언제나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선생님들도 성적 하나에 급급했다. 모의고사 전과목을 통틀어 틀린 개수가 하나가 넘어가는 순간 압박이 시작됐다. 교사들은 생활기록부를 앞세워 학생들 위에 군림하며 정신적인 갑질을 선사했다. 더럽다고 생각했고 목소리를 내려면 이 학벌주의 사회에서 학벌을 쟁취해야만 할 것 같아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 이유만은 아니었기도 했다. 세뇌가 무섭긴 했던 것이, 그 와중에 군더더기 없이 틀린 것 하나 없이 높은 등급, 높은 등수를 기록하는 게 최고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어린 나의 머릿속에 자리 잡아서 책상 앞 의자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죄책감이 들었다. 높은 학벌을 단 과외선생으로서 교육 특구에서 대면한 교육 현주소는 심하면 더 심했지 절대로 덜하진 않았다.


내가 이때까지 경험한 세상이 어딘가 잘못됐다는 점을 점차 느꼈다. 오히려 전문직, 성적에 얽매이던 어른들이 좁혀놓은 내 세상과 달리 대학교 입학 후 마주한 넓은 세상에서는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면서 잘하는 것을 좇아가고 공부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많았다. 혹은 자신의 일과 진로를 일찍부터 찾고 지칠 줄도 모르는 듯이 끝없이 자신이 생각하는 옳은 방향으로 달려가는 사람들도 많이 봐 왔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꽤나 많은 아이들이 나와 비슷한 세상, 혹은 그보다 좁고 획일적인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무조건 좋은 대학, 무조건 전문직, 그러기 위해서는 무조건 수능 내신 잘 보기. 그들과 나의 세상은 숨 막히는 요소들로 가득 찼다. 인생은 주변에서 배우는 법인데 내 가정환경이나 학교 환경이나 성적에 연연했던 곳이었기 때문에 다른 가치관을 접하기 힘들었다.


내가 접해왔던 세상이 잘못됐다는 것은 알았어도, 또 다른 세계를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요소는 당장 주변에는 없었다. 무언가 다른 걸 해 보려 하고 방황해도 방향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은커녕 하다못해 응원도 못 받았고, 그저 낙오자 취급을 받았다. 길을 잃은 채 겪을 수 있는 간접 경험부터 찾아 나섰다. 간접 경험은 크게 책, 영화, 드라마, 음악 등의 콘텐츠로부터 손쉽게 겪을 수 있었다. 책은 내가 속도를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호흡이 자유로운 간접 경험 수단이었고, 영화는 제일 효율적인 간접 경험 수단이었고, 드라마는 긴 호흡을 따라가면서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전반적으로 겪을 수 있는 간접 경험 수단이었다. 음악은 짧은 시간 동안 순식간에 다른 세계에 간 듯한 순간 이동 같은 간접 경험 수단이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는 접하지 못한 비주얼도 마주하면서 시각적인 영감 또한 얻을 수 있었다. 영상은 한 가지 이상의 감각이 사용되는 만큼 비주얼적인 요소와 청각적인 요소들을 모두 경험하면서 다양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스토리, 연출 등 다양한 관점에서 영상물을 분석하면서 논리적인 사고력 또한 기를 수도 있었다.


소설을 읽으면서는 앞서 영화와 드라마를 접할 때와 비슷하게 다른 사람의 인생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그들이 살아가면서 부딪친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을 보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 소설을 제외한 책들을 보면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깊게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생각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들이 왜 이런 주장을 하는지, 그리고 나의 입장에서 받아들일 것과 그렇지 않을 것들을 구분하면서 비판적으로 세상을 마주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음악은 시공간의 제약 없이 언제든지 찾을 수 있고, 찾으면 언제든지 있는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주었다. 3분 동안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오기에도 충분했다. 높은 성적이 아니면 무조건 틀렸다고 말하는 가족과 교사와 달리 내 감정에 깊이 공감해주고, 나도 화자에게 공감하며 음악으로 인해 '교감'을 경험했다. 음악 역시 보는 음악의 시대인 만큼 정교한 세계관과 그를 뒷받침하는 비주얼 요소 등 다양한 볼거리 또한 충족시켰다.


콘텐츠가 모여 복합적으로 내게 위로가 되어주었다. 공부만 했던 학생 때 이런 콘텐츠를 더 많이 접하면 어땠을까 싶다. 그때도 이런 콘텐츠들을 참 좋아하긴 했지만, 어려운 교과과정을 체득하기 위해서는 나에겐 엄청난 공부량이 필요하기도 했고, 가정은 공부를 하지 않는 모든 시간에 내게 핀잔을 주었다. 결국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발생한 결과의 책임은 개인의 몫으로 돌아온다. 자아가 잡히지 않은 또다른 어린 학생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현실이다.


학교 수업보다 학교 도서관을 수없이 들락날락거리며 읽은 책들, 멀티미디어실에서 죽치고 앉아서 본 영상물, 학교를 오가면서 들었던 음악들로부터 훨씬 많은 것들을 배운 사범대생인 나는 이젠 콘텐츠 기획자라는 꿈을 가지고 있다. 에디터 활동처럼 좋은 글을 통해 잔잔한 울림을 주고 싶고, 내가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재가공하여 유익한 정보를 발행하고 싶기도 하다. 먼 훗날 언젠간 다큐멘터리를 통해 내가 생각했던 교육 현주소, 더 나아가 여러 사회 이슈를 꼬집고 싶기도 하다.


한때는 더러운 교육 세계를 바꾸고 싶었지만, 이 세계는 뿌리부터 바꿔야 한다. 다수 속의 소수는 무조건 이상한 사람이 되는 시스템에서 버틸만한 엄청난 체력도 열정도 없는 것을 알기에 더 이상 발도 내밀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나는 교육 업계가 아닌 다른 곳에서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방법으로 물결을 일으킬 노력을 지속할 것이다.


내가 콘텐츠에서 많은 걸 배우고 느꼈던 만큼, 콘텐츠업에 종사해 사람들에게 배움과 새로운 영감을 주는 콘텐츠를 생산하고 싶다. 내가 기획을 하든, 제작에 참여하든 나에게 새로운 인사이트와 영감을 준 콘텐츠에 그대로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를 비롯한 활동을 통해 생각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걸음을 오늘도 내딛는 중이다. 날이 갈수록 더욱 다양한 콘텐츠의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시대이다.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콘텐츠에 대해서도 언제나 열린 마음을 가지고, 학교에서 접할 수 없는 배움을 스스로 찾아 나서고 무언가를 깨우치며 단기간에 채워지지 않는 영감을 수없이 채울 것이다.


콘텐츠로 세상을 배웠고 앞으로도 학교보다는 콘텐츠와 내가 직접 부딪친 경험으로부터 많은 것들을 더 배울 예정이다. 견제와 부조리함, 획일성으로부터 오는 지침과 무력함이 가정과 학교에서 경험했던 가장 인상 깊은 감정이었던 나와 달리 아이들은 세상을 멀리, 넓게 볼 수 있는 직관과 다양한 경험, 따뜻함을 좀 더 쉽게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들에게 바라는 일이지만, 자아가 잡히지 않은 아이들에겐 보호되어야 할 권리고 어른들은 그 권리를 지켜내야 할 의무가 있다. 나는 그 의무를 좋은 콘텐츠로 생산하는 방식으로 실천하고 싶다.

 

 

[김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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