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름다움을 예감하기 때문에 –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 [도서]

음악의 소리가 문학의 언어로 깨어나는 기적의 순간
글 입력 2022.02.17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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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문학에는 시적 낭만이 있다. 그의 문장들은 시의 운율처럼 부드럽게 흘러가며 일정한 리듬감을 준다. 그의 문학은 음악으로 가득 차 있으며 거의 모든 작품에 음악의 형체와 질서, 정신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 헤세의 유려한 글솜씨로 직조된 청각적 분위기는 작품에 그대로 드러난다.

 

[수레바퀴 아래서]에서 한스의 곁에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예술적 재능이 있는 친구 헤르만이 있었고, [데미안]에서 싱클레어는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들으며 신비한 전율에 사로잡힌다. 또, 성당을 지나가다 오르간 연주를 들으며 위로를 받기도 한다. [게르트루트], [황야의 이리], [유리알 유희]에서도 헤세의 언어로 음악을 만날 수 있다.

 

 

"음악은 제가 무조건 경탄하는, 절대적으로 꼭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 예술이고요. 다른 그 어떤 예술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아요."

 

-pp. 219-220.

 

 

헤세에게 음악은 “미적으로 지각 가능하게 된 현재”이자 “찰나의 순간이 과거 및 미래와 합일을 이루는 마법”이었다. 때문에 헤세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과 자연을 사랑했으나, 무엇보다도 음악과 특별한 관계를 맺었으며 음악을 가장 높은 곳에 내세웠다.

 

그는 모차르트와 쇼팽, 바흐와 같은 위대한 작곡가의 음악을 향유할 때면 영혼을 다해 흐르는 선율을 음미했다. 온몸으로 음악을 느끼며 극도로 내밀한 감상을 써낸 헤세의 글은 언어로 만든 악보와 같았다. “헤세는 모든 문장을 악보처럼 연주하여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더욱 찬란한 구원의 메시지로 변신시킨다.”라는 정여울 작가의 말이 와닿았다.

 

그러므로 헤세의 작품 면면에 일렁이는 음악의 속삭임을 읽은 이들은 그의 문학을 ‘악보 없는 음악’이라 칭하기도 한다. 음악은 헤세의 문학 세계를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로, 그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선 음악에 대한 사유를 따라가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음악의 비밀이다. 음악이 그저 우리의 영혼만을 요구한다는 것, 하지만 오롯이 요구한다는 것 말이다. 음악은 지성과 교양을 요구하지 않는다. 음악은 모든 학문과 언어를 넘어 다의적 형상으로, 하지만 궁극적인 의미에서 항상 자명한 형상으로 인간의 영혼만을 끝없이 표현한다."

 

-p.32.

 

 

헤르만헤세_표지띠지1.jpg


이 책은 헤르만 헤세 전문 편집자 폴커 미헬스가 헤세의 모든 글 중 음악을 대상으로 하는 가장 중요한 텍스트들을 가려 뽑아 만든 최초의 시도이다. ‘완전한 현재 안에서 숨쉬기’와 ‘이성과 마법이 하나되는 곳’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있으며, 헤세와 음악과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드러내었다.

 

1장은 음악에 대한 헤세의 자율적인 작업들을 모은 것으로 산문과 소설, 시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헤세가 직접 경험한 음악적 체험들을 단상이나 회상, 중단편의 소설과 시 등으로 남긴 것으로 음악에 대한 그의 세밀한 감정을 따라갈 수 있다.

 

2장은 신문과 잡지에 기고한 글, 편지, 일기, 메모 등에서 일부 발췌해 집필 순서에 따라 배열했다. 자전적이며 직접적인 고백을 담고 있는 2장에서는 몇 개의 예외를 제외하고 당시 그가 마주했던 시대의 인상을 의식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음악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적어서 음악을 들을 때는 가급적 마음으로 깊이 포착하고 정신으로 외우려고 해. 그렇게 몇 가지 중심을 잡아 내 감상의 위치와 출발점을 단단히 하려고 미적 감각이 참 보잘것없지.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고, 다른 사람의 감각을 모방하는 것보다도 나아."

 

-p.192.

 

 

낭만적 감상자에서 모럴리스트의 입장으로, 도취적인 음악이 아닌 삶을 긍정하는 선율을 사랑했던 헤세의 음악 탐색과 변화 과정을 알아볼 수 있었다.

 

특히 초기 헤세의 “청각적 지각을 시각적 비교로 묘사하는” 글은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음악에 문외한이기에 오로지 청자의 자세로 연주 내내 심상을 떠올렸다는 그의 글은 누구보다 음악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헤세는 소리의 잔향을 들이마시며 온 힘을 다해 음악을 받아들였다. 전문가보다 문외한이 음악의 아름다움을 깊이 즐길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을 뒷받침하듯 음악을 통해 존재의 표면을 돌파하고 세계의 거대한 울림을 순전하게 맞이했다.

 

더없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이가 음악의 시적 형체를 그리며 그의 세계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길을 안내했다. 음악의 소리가 시의 언어로 옮겨가는 황홀한 경험을 독자에게 선사해주었다. 이 신비하고도 아름다운 순간은 헤세의 글을 읽는 동안 계속되었으며, 그가 받았던 음악적 인상을 선명하게 그릴 수 있었다.


 

"이를 듣는 자는 신비의 섭리를 느끼며, 신비가 달아나는 걸 본다. 신비를 붙들 수 있기 바라며 마음은 향수로 불탄다. 아름다움을 예감하기 때문에."

 

-p.25.

 


헤세가 그려낸 음악은 감상자의 내면에 무궁한 공간을 만들어 세계를 울렸다. 악기의 울림으로 고통과 비애에 흐느끼다 기적과 같은 구원으로 환희와 질서를 만나게 했다. 감정을 헤집은 전율은 점점 고양되어 음악의 신비를 마주하게 했다.

 

완전히 음악에 압도된 헤세의 감상에서 “사무치게 깨달은 자의 경쾌함과 무구함이” 담긴 영혼을 느낄 수 있었다. 연주의 시적인 면과 음악적인 면에 대한 뛰어난 헤세의 감식안은 삶을 긍정하는 “순수한 빛 한 방울, 영원한 명랑함 한 방울”이었다.

 

아름다움을 예감하기 때문에 감각을 깨우고 정밀하게 반응했던 헤세, 그의 문학에 스민 음악을 함께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문지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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