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무애 無礙 3

악흥을 좇아 실컷 우스워지리라
글 입력 2022.02.1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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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일견 서글프지만, 비로소 나는 고요하게 여러분을 바라볼 수 있다. 너무 큰 사랑이 가지는 추동력, 경계는 그것을 막고자 생성되고 그 크기만큼 비대해지는 것이었다면, 이상 내겐 그 경계가 필요치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남은 것은 경계의 잔상과 습관, 이제 이 수풀 우거진 철망을 거두어야겠다는 생각은 뒤따른다. ... (중략) ... 강박이 깊은 만큼 그 반대편으로 자라나는 꿈들은 더욱 아득하다. 불가한 꿈, 이상 개념들은 차츰 떠올라 별자리가 되어 나를 응시한다. 아예 닿을 수 없기에 아름답기만 한 것들, 불가하다 여기기에 성립되는 낭만적 환상으로서…

 

- 지난 에세이, 무애 2 中

 

 

나의 경계, 나의 강박. 그것은 낭만과 꿈의 그림자, 충동적인 에너지를 붙잡어 여기 멈춰 있게 만드는 모든 자기규율. 나는 청춘을 붙들어 나룻가에 묶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여겼기에. 그 '때'라는 것이 무언지, 언제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아니라고 다그쳤다. 그 '때'라는 것은 아마도, 비로소 놓아두어도 좋을 만큼 자신이 미더워지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나는 나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나의 경계. 꿈은 자라나는 만큼 그 반대편으로 한계를 드리운다. 빛과 그림자처럼, 그것은 나의 육신, 나의 자아를 경계로 그려지는 데칼코마니. 높이 오르는 만큼 발생하는 낙차와 같이, 꿈이 별처럼 높아가면 한편 현실에 대한 감각은 더욱 깊어간다. 별 같은 꿈이라, 나의 꿈은 무엇 대단하지도 않은 것, 그저 사랑하는 것이었다. 다만 몇 가지 수식어를 달고 있는, 예컨대는 '변치 않는'과 '진실한'과… '일생의'와 '단단한', '전인격적인', '진정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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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아니라고 여기었다. 아직은 내 바라는 사랑을 찾아 나서기엔 준비되지 않았다고 여기었다. 바램에는 자격이 수반되는 것이니. 바라는 만큼 내겐 자격요건이 생겨난다. 내 꿈이 높아가면, 내가 올라가야 하는 높이도 따라 올라가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층위.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나의 내면도 따라 아름다워야 하듯, 그 아름다움의 모습이 각 다르다 하더라도, 소망에는 걸맞은 자격이란 것이 은연중 생겨난다.

 

그러나 누군가는 내게 이렇게도 말한다. 각자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지 않느냐고. 외려 통제하고 구속하는 동안 아름다움은 자취를 감추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어쩜 그 아름다움은 가장 자유로운 모습. 그 아름다움은 참 자신으로 살아가는 순간, 삶을 가장 만끽하는 그 순간순간 발하는 빛과도 같은 것.

 

그러나 누군가는 내게 이렇게도 말했다. 사랑을 설계하려는 것은 어리석다고. 사랑을 재단하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이라고. 다가오는 누구든 마음 열어 맞이하고, 열렬히 대화하고, 기꺼이 아파해야 한다고. 나는 그 앞에 깊이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몇 가지 이야기는 채 뱉어내지 못하여 삼켜냈다. 그를 위해서는 마음에 굴레가 없어야 한다는 것과 스스로를 사랑해야만 한다는 것을. 나와 '나'는 아직 화해하지도 타협하지도 못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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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여동생이 하나 있다. 그 애는 참, 뭐랄까… 아름답다기보다는 그저, 사랑스럽다고나 해볼까. 주변에는 간혹 이런 사랑스러운 이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반짝반짝 빛난다. 그들에게도 각자 숨겨둔 사정과 고충이 있겠지만, 그 징후는 나타나지 않는다. 얼굴에 그늘이 없는 이들. 아마 그들의 안에도 학업과 인간관계의 스트레스, 직장 상사로부터 받는 불합리에 대한 생각과 몇몇 걱정거리가 깃들어 있을 테다. 다만 드러나지 않는 것일 테지. 그들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없다. 고민들은 마음 안에 잘 잠들어 있다.

 

고민은 마음에 잠들어 있다. 이따금 술자리가 무르익고, 몇 명은 이미 취하여 나자빠진 즈음 긴요한 이야기들이 오가는 나지막한 무대가 마련되면, 그때야 잊어둔 고민들이 날숨에 섞여 나온다. 몇 마디 뱉어내다가 보면 벌써 개운한 듯, 그래도 뭐 괜찮아, 한다. 그리곤 이내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한 누군가의 가벼운 농담에 갸르르 웃는다. 방긋 웃는 그 얼굴 위로 빛이 흐른다. 그 빛은 그 순간에 몰입한 이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삶을 만끽할 때 발하는 빛이다.

 

그 애를 관찰했다. 그녀는 자유로와 보인다. 의식과 마음이 서로 정다이 어깨동무하고 있는 모습, 그녀의 안에서 마음의 부름에 의식은 너그러운 귀를 기울인다. 마음이 새로이 생겨난 바람들을 뽀로로 풀어내면, 의식은 꼬치꼬치 토를 달지 않고 잠자코 듣다간 '그렇게 하자!'고 답한다. 마치 '네 말이 맞아'라며, 다정히 들어주는 누군가의 따스함 같이 의식은 온유하다. 나와 '내'가 이렇듯 가깝고 친하면, 나는 이제 세상과 타인의 앞에서 더욱 온유하고 당당하게 나를 드러낼 수 있다. 가끔은 얄밉기도 하지만, 종국엔 사랑스러운 그 애, 이런 그녀의 의식은 온화히 선잠에 들어 있다.


그녀를 위시하여, 사랑스러운 이들을 연구해보았다. 그들에게는 너무 진지한 고민도, 짙은 무게감도 없다. 자신의 바람에 솔직하고, 그것이 불러일으킬지도 모를, 말하자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들에 대한 괜한 생각과 염려가 없다. 그것은 아직 오지 않았기에. 그들은 청춘이다. 가선 오지 않는 이 시간을 아까이 여겨, 아니 그런 의식조차도 없이 삶을 만끽한다. 염려가 없으니 마음은 요동치지 않고, 상념이 없으니 의식은 맑게 개어있다. 그런 그들의 모인 삶은 축제 같다. 즐거움을 좇아 모여 계속이 웃음을 생산하는 무리들. 지금을 살아가는 그들에게는 삶의 모습이 가득하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으로 기쁜지에 대해 전력으로 궁리하는 그들의 산뜻한 골몰이 어여쁘기도 하다. 이것, 이러한 삶의 모습과 그 안에 깃든 마음과 의식의 행로는 지금의 내게 있어, 무애 無礙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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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애 無礙, 거리낌이 없다는 뜻이랬다. 무엇이 어찌 거리낌이 없는가에 대한, 보다 깊은 논의는 내가 해내일 수 있는 것이 아니겠고, 내게는 그것이 참 자유의 다른 말로 읽힐 따름이다. 제한과 제약이 적어 자유로이 스스로 빛나는 모습들, 때로는 타인의 마음을 채 헤아리지 못해 본의 아닌 상처를 입힐 수도 있겠지만, 의도와 의식마저 없었으므로 재빠르게, 또한 산뜻하고 신속하게,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사과를 건네고 화해한다. 그들에게는 지나친 염려와 그에 파생되는 생각들이 없다. 경직이 없고, 억지가 없다. 삶의 모양은 천진한 미소와 같다.

 

거리낌의 민낯은 결국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모습이다. 이것, 어떤 행동의 전후로 마음에 발생하는 제약들은 우리가 젊은 나날 동안 학습한 두려움. 겪은 바 슬픔을 예방하거나 최소 반복하지 않기 위한 마음의 습관, 체화된 생각들이다. 이것들은 학습된 불행들로부터 나를 멀리하고자 하는 일종의 보호 장치, 그러나 또한 마음의 소리를 억누르는 억압의 장치이다.

 

제약 조건이 많을수록 한 인간은 경직되어감을 자주 보아 왔다. 너와 나의 날개를 무겁게 하는 이것들, 우리 난 본질이 어린아이와 같다면, 무엇이 우리를 어른으로 만드는 것인지에 대해 관찰해왔다. 인간을 어른이게 하는 것, 어른의 위엄과 체면이라는 것은 사실 갖가지 행동제약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한다. 가끔은 트램폴린(내 고장에서는 방-방이라고 불렀다)을 타고 싶으면서도, 입장 시 무게 제한 때문에 타지 못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해보듯. 해도 되는 것보다는 해서는 안 되는 것, 네거티브가 훨씬 많이 그곳에 있었다.

 

아무런 제약도 개발되지 않은 시기, 유년기를 가끔 동경하는 까닭은, 그때 내 모든 나날이 나였으며, 나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에서 떠오른 모든 것들이 곧바로 육신을 통하여 세상으로 튀어나오던 모습, 그래서 뭇 문인과 철학자들이 유년의 시절을 추억하고 추앙하는 것이겠거니 생각해보았다. 작위와 제약들이 우리를 경직시켜 충분한 어른으로 만든 후,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감각이 텅 빈 마음을 차오르기 시작할 즈음, 우리는 다시금 우리의 본질을 회복하려고 했다. 그때의 본질이란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닌, 가장 원형된 모습과 속성을 일컫는바, 바로 우리의 유년시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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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건 어린아이의 시절, 마구 앞으로 뛰어나가다간 우뚝 서 뒤돌아보며, 세상 가장 가득 찬 웃음을 지으며 어머니를 불러보았을 것이다. 사랑스러운 모습들. 누구의 아이가 됐건 그렇게 가득찬 환희를 앞에 두고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다. 사랑스럽다는 것이다… 내가 이제, 주변의 사랑스러운 이들을 관찰하며 느끼는 바로 그 감정과 같이. 아무런 노력 없이도 가득 차 있는 그 감정, 그것은 본위의 행복, 행복의 본질 같다. 그것이 사랑스럽다는 것이다.

 

*

 

그렇다고 유년으로 돌아가 보겠노라 이야기하진 않겠다. 그것은 불가한 일이고 무익한 일이므로. 다만 지금, 시절의 경계에 서서 나는 궁금해 보는 것이다. 내 지나버린 20대를 돌아다보며, 나는 무엇에 그다지 얽매어 있었던가 하며 찬찬히 되짚어보는 것이다. 불행한가? 그렇지는 않다. 행복한가? 그렇지만도 않다. 그럼에도 근래의 나날 속에 옅게 깔린 슬픔을 호흡한다. 나는 무엇을 잃어버리어, 그 사랑스런 웃음들을 짓지 못하게 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다간, 내 어린 날의 사진을 꺼내어 지긋이 바라보았다.

 

5살의 나는 참 사랑스러웠구나. 사진 속에서 뽀얗게 웃는 내가 참 귀엽다. 곧 액자 유리에 비치어 그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근 몇 년 새 많이도 늙었네. 아직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는 너무 이르지만...

 

이런 하릴없는 생각 속에서 글 쓰는 밤이다. 결국, 이번에도 '무애'에 대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꺼내어보지 못했으므로, 글은 계속될 예정이다. 사랑스러운 여러분을 관찰하며 주워 모은 힌트들로, 잃어버린 나를 찾을 때까지.


 

[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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