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공주 [영화]

열 일곱, 누구보다 평범한 소녀 한 공주
글 입력 2022.02.12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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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공주>의 장르를 따져볼 때 드라마보다는 전쟁, 재난 영화에 가까워 보인다. 주인공인 ‘한공주’의 생존 영화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듯하다. 아니 어쩌면 이 영화를 보는 모든 여성이 ‘한공주’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현실 스릴러일지도 모른다.

 

 

<한공주>

 

 

수십 명의 어른들 가운데 큰 잘못을 저지른 듯 오롯이 앉아있는 ‘공주’는 쫓겨나듯 집과 학교를 떠난다. 그녀는 자신의 몸만 한 캐리어를 이고, 빠르게 지나가는 세상을 지나 새로운 터전에 도착한다. 그녀를 도와주던 선생님, 이난도는 자신의 모친인 조여사(이영란)에게 공주를 잠시 동안 데리고 있어 달라 부탁하지만, 조여사는 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며 수차례 거절한다. 그러나 이난도의 계속되는 부탁에 조여사는 마지못해 응하고, 그렇게 공주는 조여사의 집에 일주일간 머무를 수 있게 된다.

 

새로운 학교를 다니며 공주는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같은 반 아이 은희를 만난다. 은희는 공주에게 관심을 갖고 가까워지려 노력하지만 내성적인 공주는 그런 은희를 쉽게 받아주지 않는다. 이렇듯 곁에 아무도 두려고 하지 않는 공주지만, 그녀가 직접 찾아가 만나려 하는 이도 있다. 바로 그녀의 모친이다.

 

그녀(공주 모)는 공주의 아빠와 이혼한 후 다른 남자를 만나 나름 잘 살고 있다. 하지만 새 남편에게 전 남편과의 자식을 보여주는 것은 아무래도 눈치가 보이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계속해서 공주를 숨기는데 급급하다. 심지어는 전할 말이 있어 그녀를 힘겹게 찾아온 공주를 남편에게 들키자 자신의 딸이 아닌 척하기까지 한다. 그녀는 새 남편에게 자식이 있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 애써 자신을 모른 척하는 엄마의 행동에 크게 상처받은 공주는 그렇게 아무 말도 전하지 못하고 그곳을 떠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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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공주를 위로해 준 건 다름 아닌 그녀가 그렇게 밀어내던 은희와 다른 친구들이었다. 은희는 노래하는 걸 좋아하던 공주에게 합창반에 들어오라 권하고 그들은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공주는 은희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처음의 우울한 얼굴이 아닌 평범한 고등학생의 표정을 짓는다. 조여사와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조여사가 일하는 마트에서 일을 돕고 그녀의 집에서 조용히 지내는 공주를 보며, 그녀를 단순 가출 소녀라 판단하고 꺼려 하던 조여사는 그녀에 대한 생각을 바꾼다. 외롭고 쓸쓸하던 공주에게 은희와 조여사는 작지만 큰 힘이 되어 준다.

 

그렇게 차차 좋아지는 것 같던 공주의 인생은 갑작스레 찾아온 아빠로 인해 한순간 뒤틀려 버린다. 공주의 새로운 학교까지 찾아온 수십명의 학부모들. 뛰고 또 뛰어도 그녀를 뒤쫓아오는 거대한 비난들. 그녀는 결코 도망칠 수 없는 ‘진실이 가려진 사실’에 그대로 차갑게 잠겨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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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주제로 다운 이 영화는 단 두 번의 직접적인 장면으로 관객들에게 공주의 비참한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사건을 크게 재조명하지 않고 영화는 사건 이후 피해자의 삶을 보여주지만, 그 삶이란 사실상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총알을 대비해야 하는 긴장 가득한 전쟁터나 마찬가지이다. 공주의 친구였던 ‘동윤’을 마구 내리찍던 스테이플러 소리는 사건 이후 공주에겐 귀 옆에서 때리는 총소리와 같고, 또래 남학생들의 시끄러운 말소리는 그녀를 공포에 떨게 만드는 두려운 존재이다.

 

이 영화를 글 초반 생존 영화라 언급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러하다. 영화 첫 장면부터 공주는 깊고 차가운 물속에 빠지지 않으려 두 다리를 힘차게 버둥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붙이는 어른들과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 같던 모습들은 그저 공포에 잠식된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철저히 제한되고 절제된 최대한의 감정 표현이었다. 비인격적이고 무자비한 수사와 가해 부모들의 행패는 공주가 오롯이 견뎌야 하는 현실의 아주 일부이자 단편적인 부분일 뿐, 그 뒤에는 그녀가 넘어야 할 수많은 난관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수진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평범한 학생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건을 보여주진 않는다. 그는 단지 평범한 학생에게 일어나서는 안되는, 하나 일어날 수 있는 하나의 사건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사건이란, 두 명의 여학생이 수십 명의 남학생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가 아닌 수십 명의 남학생이 여학생을 집단으로 성폭행했으나 그 사실은 은폐되었고, 비협조적인 수사가 이루어졌으며 적절한 처벌은 가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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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살고 싶어 질지도 모르니”

 

수영을 배우며 공주는 이런 말을 했다. 공주는 어떤 이유로 살아남으려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생존이 죽음이라는 사실 앞에서 수없이 고민했을 것이다. 자신이 도망쳐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모한 채 계속 도망 다니다 결국 이 세상에 도망칠 곳은 없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삶이란 생존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다른 자의 시선을 통해 포착된 그녀의 자살은 그저 버스를 타고 지나가고 나면 상관없을 하나의 장면일 뿐이다. 피해자가 곧 죄인이 되어버린 현실에서 그녀를 발견하는 것은 결국 그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

 

스릴러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종종 영화 속 일이 내게 실제로 일어날까 무서워하곤 했다. 그런 영화들은 대체적으로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편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자체로 스릴러였다. 그 이유는 이 모든 상황이 불특정 다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문득 나도 한 명의 공주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7살 때까지는 그들의 집에서 한 명의 공주님이었을 것이다. 누구든 공주가 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똑같은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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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이 영화의 과정과 결과는 한 몸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실 모두가 그 답을 알고 있다. 우리 모두는 생존과 삶, 그 앞에서 평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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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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