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익숙한 존재를 바라보는 다정한 시선 - 영원히 사울 레이터 [도서]

프레임에 담긴 지극히 평범하고 아름다운 순간들
글 입력 2022.02.0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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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기본적인 요소들로 글, 사진, 영상이 있다. 주체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글과 달리 사진과 영상은 직관적으로 현장을 담아내 시각적인 즐거움을 더한다. 1초의 영상에는 최소 사진 24장이 필요하다. 생생한 기록의 본질은 사진인 셈이다.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 기록한다는 것은 참으로 매력적인 행위다. 순간의 감정을 간직하기 위해 사람들은 부지런히 사진을 찍는다. 맛있는 음식, 여행을 떠나 즐거운 얼굴, 눈부시게 멋진 풍경에 너도나도 카메라를 든다. 기억하고 싶은 장면은 셔터를 누르는 순간, 영원성을 부여받는다. 마음속에 새기고 싶은 욕망은 흔적을 남겨 현재에 진득하게 머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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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사울 레이터>는 그의 초기작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 10여 년간 촬영했던 미발표작이 수록된 사진집이다. 흑백사진부터 컬러 사진의 시초로 불리던 색감이 돋보이는 사진까지 감상할 수 있다. 사울 레이터가 사진과 삶에 대한 생각을 옮긴 문장들이 이미지 중간중간에 위치해 그의 작품세계에 깊이를 더한다.

 

사진은 찍는 이의 시선을 엿보는 것이다. 그 눈이 어떤 태도와 기분으로 프레임을 바라보는지에 따라 포착되는 이미지의 리듬과 분위기는 좌우된다. 사울 레이터의 사진은 화려한 뉴욕 풍경에서 한 발짝 물러나 익숙해서 무심코 지나쳤을 존재들에게 다정한 시선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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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그린 낙서: Graffiti Heads, 1950

 

 

사진 속, 거울에 비친 건물의 모습과 유리 자체에 그려진 낙서가 겹쳐져 하나의 이미지로 보인다. 사울 레이터의 사진 중에는 거울과 창문을 사용해 찍은 작품이 많다. 사물이 유리를 관통하거나 반사된 모습을 통해 무작위의 존재들을 프레임에 담아 새로운 장면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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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 철도에서: From the El,c.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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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Untitleld, c. 1955

 

 

렌즈에 덧대어진 창은 세상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바라본 그의 눈길까지 희미하게 비치는 듯하다.사울은 일관적인 모티브를 사용하거나 독특한 구도를 시도하면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피사체로 우산을 좋아했으며, 틈 사이로 무언갈 바라보거나 아래 혹은 위에서 대상을 응시했다.

 

사울은 눈과 비가 세상을 뒤덮은 날에도 어김없이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그럴때면, 자연적인 요소가 만들어낸 변화로 이전과 색다른 거리가 펼쳐졌다. 저마다의 색깔을 뽐내는 우산, 펑펑 내리는 눈밭을 헤치며 뒤뚱뒤뚱 걷는 사람들, 빗방울이 맺힌 거울은 뉴욕의 숨겨진 민낯을 드러냈다.


 

사본 -KakaoTalk_20220209_003551941.jpg

보도: Sidewalk. 1950s

 

 

"아무것도 찍지 않은 듯하지만, 한쪽 귀퉁이에 무언가 보이고 그게 무언지 확실히 알 수 없는 사진을 나는 좋아한다."

 


그가 대상을 가까이서 찍은 경우는 드물다. 시선을 사로잡는 피사체를 있어도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관찰자의 입장을 유지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다가 빛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그렇게 찍은 장면조차도 초점이 맞지 않는다.

 

흔들리고, 뿌옇고, 형상이 뚜렷하지 않아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 모호함이 주는 아름다움이 그가 사진을 연출하는 방식이다. 복잡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여지를 남기기 때문에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머물 수 있다.


 

“거의 평생을 뉴욕에서 살았지만, 뉴욕을 안다고 할 수 없다. 이따금 거리에서 사람들이 길을 물으면 나는 이곳에 살지 않는다고 답한다.“

 

"신비로운 일은 친숙한 장소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하며 특별한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늘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사울 레이터는 한 곳에 60년 넘게 살면서도 외부인의 눈으로 뉴욕을 보았다. 특정 공간의 구성원이 되는 순간, 주위를 둘러싼 풍경은 금세 질리고 익숙해져서 소중한 순간을 놓치기 쉽다. 그는 낯설게 바라보는 감각을 유지하고 관찰하기 위해 촬영을 계획하지 않고 외출할 때마다 항상 카메라를 챙겼다.


화려하고 거창한 의미가 있는 사진보다 낯선 시선으로 바라본 평범한 모습이 큰 울림을 줄 때가 있다. 그는 단순한 것이 주는 아름다움을 믿었고 일상적인 순간에 셔터를 눌렀다.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던 그의 삶의 방식이 투영된 것이다.

 

사울 레이터는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성공에 대한 욕망보다 항상 겸손한 태도를 유지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을 존경하고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은 존재가 되는 것을, 최대한 평범하게 사는 것을 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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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Untitled, 1950s

 

 

그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뚜렷하게 혹은 도시 한 부분에 스며든 그림자로 사진에 담았다.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 사이에 카메라를 들고 멈춰 선 남성으로, 거울에 반사된 형상으로 자화상을 꾸준히 기록했다. 사울은 낯선 세상에 자신이 어울리는지 점검하려는 듯이, 뉴욕 곳곳이 담긴 사진에 자신의 모습을 자연스레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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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버라: Deborah, 194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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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스 벤트리: Soames Bantry, Harper's Bazaar,c. 1963

 

 

사울 레이터의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인 데버라와 솜스. 데버라는 사울 레이터의 여동생, 사진의 최초 모델이자 뮤즈다. 사울이 자신의 스타일을 찾을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줬다.

 

패션모델인 솜스는 사울과 40년 넘게 함께 지내며 수많은 예술 작품을 만들고 감상했다. 솜스는 사울의 사진뿐만 아니라 회화에 등장하며 그의 가장 내밀한 부분을 채워준 존재다.

 

사울은 “우리는 행복한 바보짓을 많이 하고 다녔다”며 "솜스와 함께한 인생이 온갖 문제가 닥쳐오기도 했지만 비애에 파묻히는 대신 삶을 즐기곤 했다."고 얘기한다.

 

60년 넘게 살았던 거리의 모습,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 수줍은 자화상과 사랑했던 사람들의 사진 등 그의 작품을 한데 모은 사진집에서 일상적인 순간의 아름다움을 마주했다.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사울이 바라본 세상의 조각을 탐미하면서 그의 삶과 조우할 수 있었다.


세상에 관계하지 않고 무심코 바라봤던 사진가의 인생. 인화하지 않은 수많은 컬러 슬라이드가 그를 꾸준히 기억할 것이다. 너무 평범하고 흔해서 소외되고 관심을 두지 않았던 존재들은 그의 사진 속에서 찬란하게 빛난다. 세상을 목적없이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본 사울 레이터의 작품들은 우리 곁에 영원히 머물 것이다.

 

사울 레이터의 사진에서 영감을 받은 영화 <캐롤>과 현재 피크닉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진전 <사울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을 감상한다면, 사울의 세계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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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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