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바랜 익숙함 속의 정취를 사각 프레임에 간직하다, 영원히 사울 레이터 [도서]

글 입력 2022.02.07 01:3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사진 (寫眞)

물체의 형상을 감광막 위에 나타나도록 찍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게 만든 영상

물체를 있는 모양 그대로 그려 냄. 또는 그렇게 그려 낸 형상

 

 

사전적인 정의처럼, 사진은 오랜 보존이 가능하다. 인화해서 사진첩에 끼워 보관하거나, 스마트폰 앨범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보통의 방식으로 말이다. 언제든 떠올리고 꺼내 보면서 추억할 수 있도록 손이 잘 닿는 곳, 기억하기 쉬운 장소에 저장된다.

 

자주 활동했던 집과 스튜디오에 수천, 수만 장의 사진을 아카이빙한 사울 레이터도 보다 가까이에 세상을 담아낸 보물창고를 만들었다. 오가던 거리, 자화상, 사랑했던 이들… 그저 조용히, 먼발치에서 관조한 시선의 결과물을 그곳에 채웠다. 시선이 깃든 사각형 프레임은 세상을 바라보는 자그마한 통로, 그 자체가 된다.

 

 

사진1.jpg

 


책을 소장하는 게 좋다.

그림을 감상하는 게 좋다.

인생을 누군가와 함께하는 게 좋아서

내게 마음써주는 이에게 나도 마음을 준다.

내게는 이것이 성공보다 중요했다.

 

 

사울 레이터는 본인의 삶과 예술을 내세우려 하지 않았다. 그 사실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증거로 드러났다.

 

욕심내지 않은 마음, 사랑하는 것들을 온전히 사랑하려는 노력이 셔터를 누르는 힘과 동일해보였다. 꾸밈없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 눈부실 정도로 반짝이진 않지만, 은은한 빛을 오래도록 품고 있을 영원한 이치를 그는 확신했다. 정말 그렇다. 거짓된 치장보다는 본질이, 우러나온 진실함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다만, 긴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지금은 국경과 세대를 초월하여 큰 사랑을 받는 예술가지만, 레이터도 평범하고 고독한 피사체가 아름다움의 최상위라는 것을 전하기 위해 주류에서 벗어난 길을 묵묵히 걸었다. 인정받고 명성을 떨치는 것을 목표로 삼진 않았으나, 사진가로서 감상자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 ‘일상의 간과된 아름다움’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발자취는 중요한 질문을 건네는 듯했다. 짧게 반짝이다 지는 화려함을 선택할 것인지, 화려하진 않지만 응시하면 할수록 보이는 경이로운 감동을 택할 것인지를.

 

 

사진2.jpg

무제 : Untitled, c. 1970

©Saul Leiter Foundation

 

 

아무것도 찍지 않은 듯하지만 한쪽 귀퉁이에 무언가 보이고

그게 무언지 확실히 알 수 없는 사진을 나는 좋아한다.

 

 

한편 뉴욕 이스트빌리지 거리, 행인의 발걸음, 복잡하고도 정적인 도시의 풍경 등을 포착한 레이터의 필름에는 진지한 질문 외에도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일상을 찍은 동시에 어우러지는 색감, 몰래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특이한 시점, 중심 피사체를 흐릿하게 처리한 주객의 전환은 이미지에 빠져들게 한다.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인데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레이터의 프레임에는 풀어야 할 것 같은 신비로운 수수께끼가 곳곳에 위치해있다. 정형화돼있는 직선의 굵직함과 유연한 곡선의 조화는 똑같은 나날에도 특별한 순간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우려는 도상 같았다.

 

도상은 곧 여동생 데버라, 평생의 사랑이자 뮤즈였던 솜스, 친구, 아무런 인연이 없는 사람들에게서 매일의 기쁨을 얻었던 레이터의 정직한 삶이 작품에 짙게 깔린 흔적이다. 그 흔적을 좇아가며 인생의 가치로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사진3.jpg

무제 : Untitled, 시기 미상

©Saul Leiter Foundation

 

 

'응시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사울 레이터의 사진 작업. 지나치지 않게 하는 붙잡는 힘, 구석구석 살피는 만큼 얻게 되는 따스한 에너지가 충만하다. 전시회에서는 발걸음, 책을 읽으면서는 두 눈이 떼려야 떼지지 않았다. 그의 작품을 마주하려면 매체와 상관 없이 긴 호흡을 견딜 용기가 필요하다.

 

책에서는 사진과 더불어 레이터의 가치관을 옮겨 놓은 짤막한 문장을 찬찬히 음미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겨울에 어울리는 문학 한편을 마주한 듯 포근하다. 그러다 보면 영원히 살아 움직일 사울 레이터의 정신은 그렇게 한참 동안, 잠겨 왔던 바랜 익숙함 속의 정취를 환히 비추어줄 것을 약속해보인다.

 

 

나는 잊히길 바랐다.

중요하지 않은 존재이고 싶었다.

 

 

영원히 사울레이터_표1.jpg

 

 

 

아트인사이트 전문필진 네임태그.jpg

 


[최세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