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원히 기억될 사울 레이터의 세계 - 영원히 사울 레이터

글 입력 2022.02.08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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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사울레이터_표1.jpg

 

 

책 <영원히 사울 레이터>는 눈이 내린 2022년 1월 말에 출간된 두 번째 사울 레이터 사진집이다. 이번 책은 그가 사진을 찍기 시작하던 1940년대 초기작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10여 년간의 미발표작까지 사울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보여주는 엄선된 사진들이 담겨 있다. '사진집'이라는 명칭에 맞게 312쪽의 분량이 거의 사진으로만 채워져 있으며 사진들 틈에 종종 등장하는 그가 생전에 남긴 문장들은 사울이 가진 사진에 대한 생각을 드러낸다.


'컬러 사진의 시초'라는 평가를 받는 사울 레이터는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던 사진작가이다. 1923년 피츠버그에서 태어난 그는 랍비가 되길 바라셨던 부모님의 뜻에 따라 어린 시절 그에 맞는 교육을 받았지만, 1946년 학교를 중퇴하고 화가가 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났다. 뉴욕으로 이주한 이후 그는 평생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50년대 뉴욕의 풍경을 비밀스럽고 아름답게 담고 있는 그의 사진은 비비안 마이어와 함께 영화 <캐롤>의 배경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책의 첫인상



나는 사울의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사울 레이터: 인 그레이트 헝거>를 통해 그를 처음 알았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봤지만 사진집은 처음이다. 300페이지가 넘는데 글자는 몇 자 쓰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많은 페이지에 작품이 인화되어 있어 행여 종이에 구김을 줄까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어 페이지 넘기는 게 어려웠다. 한 장씩 넘길수록 내가 책을 읽고 있는 것인지 전시장을 읽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는 경지에 이르렀다.


많은 책을 읽어 봤지만 난 기꺼이 말할 수 있다. 책 <영원히 사울 레이터>는 책장을 넘기기 어려운 책 순위에 들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우선 앞서 말한 듯 글자보다 더 소중한 사울의 작품들이 훼손될까 두려워 페이지를 조심히 넘기게 된다. 게다가 사울 레이터 사진의 특성상 그가 어떤 부분에 초점을 두고 찍은 사진인지 빠르게 알아차릴 수 없었기 때문에 유심히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책장을 넘기는 일은 어려웠지만 언젠가부터 남은 페이지가 얼마 없다는 사실에 아쉬워졌다. 다행히 내가 보고 있는 사진은 공간을 이탈하면 재입장이 불가능한 전시장에서가 아닌, 잠시 한눈팔면 장면을 놓쳐버리는 영화에서가 아닌, 언제나 내가 원할 때 찾아볼 수 있는 '사진집'에 수록되어 있다.

 

기억이 휘발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필요 없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안도감을 주었다. 다시 사울의 사진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그가 선택한 피사체에 대해 생각했다.

 

 

 

사울 레이터의 외부 세계



사진에 대해 전문적으로 알지 못하지만, 경험으로 확인한 사실은 사진을 찍는 특별한 목적이(제출용 증명용) 없다면 보통 사랑이 담긴다는 것이다. 요즘은 필름 카메라가 아닌 디지털카메라 혹은 핸드폰에 내장된 카메라를 이용하지만, 카메라 기능을 활용해 사진을 앨범에 저장하고자 하는 마음은 그 순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을 때'였다. 달이 밝게 떴거나, 친구의 웃음이 말갛게 예쁘거나, 눈이 포근히 땅에 내리는 순간이 아름다워 보일 때처럼 말이다.


사울이 카메라로 담는 대상은 정말 사소하다(고가 철도, 창문, 치즈 가게, 거울, 버스, 택시, 지하철, 구두, 지도, 빨간불). 누구나 일상을 살면서 수없이 곁을 지나가고 마주쳤을 대상을, 카메라 렌즈에 담아 포착하는 그가 얼마나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봤는지 느낄 수 있다. 그의 카메라는 특히 색이 확실한 경우에 반응한다(자주색 우산, 노란 점들, 빨간불, 하늘색 치마, 초록색 드레스).


사울 레이터의 사진을 보다 보면 간혹 그가 어떤 물체에 초점 맞췄는지 알기 어려울 때가 있다. 사진의 면적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물체가 아닌, 미약한 존재감을 지닌 물체가 작품의 제목인 경우 그제야 사울의 관심은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사진작가 오타케 아키코의 글처럼 그는 무언가 자신의 시선을 사로잡더라도, 대상에 접근하는 대신 거리를 둔 채 응시하거나 근거리에서 찍더라도 초점이 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울 레이터의 내부 세계



그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면 앞서 말한 그가 촬영한 외부의 것들을(거리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물, 눈이나 빗방울이 내리는 날씨) 카메라에 담는 그만의 방식(무언가에 가려진 듯)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인물을 찍은 사진이더라도 그가 일했던 잡지에 게재된 패션모델이거나 평범한 행인의 경우가 많다. 이 책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사울 레이터를 구성하는 내부 세계에 존재하는 인물들이 담긴 사진도 있다는 것이다.


집을 나설 때마다 카메라를 챙기는 사울의 사진에서 자주 등장하지 않는 피사체가 있다. 바로 카메라를 들고 있는 본인이다. 과연 이게 정말 자화상이 맞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는 무제의 작품들. 본인을 찍으려는 것인지 본인이 들고 있는 카메라를 찍으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마치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 자신을 삽입하는 시도처럼 보인다. 뚜렷하게 보이지 않지만, 그는 분명히 그곳에 존재한다.


사울의 여동생이자 그가 사진에 담은 최초의 모델이자 뮤즈인 데버라 혹은 데비라고 불린 여성이 있다. 그녀는 1940년대에 찍은 사울의 초기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전문 사진작가이기 이전에 작품들에서 데버라를 향한 그의 순수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울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솜스이다. 사진 속 솜스 밴트리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건 그녀 자체의 매력에 사울의 애정 어린 시선이 더해진 결과일 것이다. 그의 가장 오랜 뮤즈이자 친구인 솜스의 사진은 사울이 남긴 자료들 속에서 지금도 발견되고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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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 인화지: Contact sheet, 시기 미상

© 2020 Saul Leiter Foundation, New York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사진집에서 아주 드물게 등장하는 '밀착 인화지'다. 작가에게 작품으로 선정되어 이름 붙여진 '한 순간', 그 이전과 이후의 상황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사진에 담긴 찰나가 홀로 존재할 수 없고 몇 가지 우연이 동시에 일어나야 비로소 작품이 탄생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진들 사이에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과거 사울이 매체를 통해 이야기한 내용 중 유독 내 마음에 들어온 문장이 있다. '아무것도 찍지 않은 듯하지만 한쪽 귀퉁이에 무언가 보이고 그게 무언지 확실히 알 수 없는 사진을 나는 좋아한다.' 관심을 두고 봤을 때 찾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한눈에 띄지 않더라도 사울의 시선에서는 사진 속 주체가 된다. 작은 존재가 애정 어린 시선에서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게 희망적으로 들렸다.

 

사울 레이터가 카메라에 담은 대상은 평범하다. 대부분 우리의 일상과도 맞닿아 있다. 하지만 그의 사진은 특별하다. 사람들이 평범해서 관심을 두지 않던 대상을 다정한 시선으로 포착했기 때문이다. 가깝지 않고 충분한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 사울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면 그의 피사체가 되었던 사물을 전과 같은 마음으로 볼 수 없다. 차가운 겨울 공기도 따스하게 담은 사울 레이터의 눈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그를 아는 사람들은 영원히 사울 레이터를 잊지 못할 것이다. 매년 내리는 눈과 빗방울을 볼 때도. 버스를 타고, 신호등의 빨간 불빛을 볼 때도. 사울 레이터는 우리의 시선이 닿는 일상 곳곳에서 마음속에 존재할 것이다. 언젠가 그처럼 거리를 두고 대상을 관찰하는 게 익숙해진 순간에도.

  

 

[정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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