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현재를 담은 사진첩, 영원히 사울 레이터 [도서]

글 입력 2022.02.0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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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레이터가 60년 넘게 살았던 거리의 사진들, 내밀한 자화상, 평생 사랑했던 사람들의 사진을 통해 세상에 끼어들지 않고 그저 관조하려 했던 한 사진가의 인생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시선은 세상 반대편이 아닌 가까운 사람들과 주변으로 향했으며, 찰나에 담긴 아름다움과 영원성을 포착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의도적으로 균형을 깨뜨린 대담한 구도, 거울과 유리에 비친 이미지에는 유머감각이 녹아있다.

 


누군가의 즐겨 찾는 사진이나 사진첩을 보면,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구도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언제부턴가 단순 기록을 위해 셔터를 누르는 게 습관이 되어, 구도보다는 현장실사 느낌의 사진만 빼곡히 찍어 내리고 있는 요즘이다. 친구들과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가장 신경 쓰지 않고 찍은 사진은 내 것이었고, 사진을 한 번에 외장하드에 옮겨두곤 자주 꺼내 보는 일이 없다는 걸 안 뒤로는, 사진에 크게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대충 두어 번 찍고, 그래도 ‘누구’랑 있었다는 걸 알리기 위해 셀카 두어 번으로 마무리. 그래도 흔들리는 내 사진 속 인물들은 내가 좋아하거나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거나 소장하고 싶은 배경임에는 틀림없었다. 사울 레이터의 사진에 담긴 감정도 그랬다. 평범한 순간을 그렸지만, ‘순간의 시간을 채가 영원히 멈추게 만든 무언가를 향한 애정’이 담겼다.


이따금 오래 눈길을 사로잡는 사진이 있었다. 포커스가 사뭇 다른 곳을 향해있는 사진, 꼭 높은 곳에 앉아 몰래 사람들을 보고 있는 고양이의 시선처럼 찍은 것, 회상하듯 두세 개의 기억들이 뭉쳐있어 보이는 것, 컬러 화보와 같은 것들이다. 평범한 것들을 다른 구도에서 찍으니 신선하고 웃겨 책장이 몇 번 씩 멈췄다.


CCTV가 보는 인간들의 모습은 이럴 것일까, 고양이나 새의 시선이 된 듯하다.


 

단순한 것이 지닌 아름다움을 믿는다. 전혀 관심을 끄는 데가 없는 대상도 굉장히 흥미로울 수 있다고 본다. - 본문 中

 


사진을 감상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일상의 간과된 아름다움'이라고 말한 사울 레이터. 그의 사진은 ‘다른 어딘가가 아닌 바로 이곳에 아름다움이 있다.’ 말을 건넨다. 얼마 전에 문득, 가진 게 있음에도 왜 불행을 느끼는지 반문했었다. 가지지 않은 무언가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는 결론 뒤에, 충분히 모든 것이 구비된 내 방, 내 집, 도합 20개의 손가락과 발가락, 다친 데 없이 건강히 듣고 말하고 표현하는 등 수 천개의 당연했던 것이 소중해졌다.


지갑은 얇을지언정 충만했다. 내가 노트북이 없어-, 키보드가 없어? 칫솔이 없어-, 뭐 안경 닦이가 없어? 생필품을 살 수 있는 돈이 있었고, 돈을 벌 수 있는 멀쩡한 사지가 있었다. 물질적인 결핍이 아닌, 마음의 사소한 충만함은 이내 ‘현실 집중’이라는 흡족한 결론을 내었었다. 레이터의 말처럼, 지금 이곳에 아름다움은 묻어나 있었다.


 

분홍 우산.jpg

SAUL LEITER

UNTITLED (PINK UMBRELLA), C.1950

COPYRIGHT © 2022 M+B PHOTO

 

 

사울 레이터의 사진 중에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분홍색 우산’이다. 추적추적 빗소리에 촤르르 굴러가는 자동차 바퀴 소리, 걸음 소리가 들리고, 우산이라는 나만의 공간에서 아늑함을 느끼길 잠깐, 어디로들 가는지. 좋아하는 색상과 분위기 앞에, 시선이 오래 머무른다.


‘당기시오’ 표시, 눈 쌓인 포장마차, 미용실 간판, 신호등. 5, 60년 전의 사진 속의 것들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와 함께 사진에 대한 나만의 정의가 한 뼘 확장되었다. ‘표현된 무언가를 그대로 노골적인 채로 옮기는 것’에서 ‘간판과 그림자 혹은 난간에 가려진 뒤편의 것을 상상할 수 있게도 찍을 수 있다’는 것으로 말이다.


일상의 소재를 가지고 상상력과 기대로 ‘일상의 변주’를 주는 것이 사울 레이터 사진의 재미 요소였다. 2장의 자화상을 담은 사진에서는 조금씩 보이게 찍거나 끝에 걸쳐 찍은 사진들에 웃음이 났고, 동생과 솜스를 두고 찍은 사진들에는 애정이 듬뿍 드러나 보였다. 특히 화보와 영화 스틸컷 같은 솜스 사진엔, 좀 더 눈에 익은 구도들이 보여 점점 변화해간 그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주변에 언제나 비슷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들, 너무 평범하여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일상을 다정한 시선으로 포착한 그의 사진을 보며 사진이 담은 매력에 빠졌고, 명함 크기로 잘라 간직한 ‘조각 사진’들은 독특하고 분위기 있어 따라 하고 싶어졌다. 세상의 모든 명함이 딱딱한 글씨체가 전부인 것 보다 다양한 사진이라면 눈이 즐겁겠지.


도서 <영원히 사울 레이터>로 평범한 것을 다시금 인식할 수 있었고, 현재와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애정을 반추할 수 있었다. 현재는 영원하다. 책장을 덮고 제목을 보다 생각난 말이다. 사진이 가진 의의이자 사울 레이터의 감성과 잘 어울린다.

 

 

영원히 사울레이터_표1.jpg

 

 

 

서지유.jpg

 

 

[서지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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