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스턴트 세대론 [사람]

글 입력 2022.02.04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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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자주 먹는 음식이 있다면 아마 인스턴트 라면이 아닐까 싶다. 그것도 아주 자극적인 맛의 것들로만 사다 먹어서 속이 쓰려 밤새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굴러대는 모순을 꽤 여러 번 자처하고 있는 중이다.

 

맵고 짠맛에 정신을 놓고 먹다가도, 막상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속이 더부룩해서 왠지 모를 찝찝한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스턴트 라면을 먹는 것만큼 단순하고 저렴하며 즉각적인(인스턴트라는 이름에 걸맞은) 쾌락을 선사하는 음식은 찾기 쉽지 않기에 이 해로운 식습관을 끊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갈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 먹을 시간적 여유, 이러저러한 일들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낼 경제적 여유, 건강 따위를 걱정하고 앉아있을 심리적 여유. 그 비좁고도 얄팍한 내 일상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인스턴트 라면이란 존재는 단돈 천 원 정도면 누릴 수 있는 가장 만만한 유희거리일 것이다.

 

오랜 시간 기다릴 것 없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천 원 정도의 기대감과 맛과 포만감을 주는 음식. 누군가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담겨있는 사랑스러운 맛은 아닐지라도 기대를 버린다면 생각 없이 한 끼를 때우기 괜찮은 맛. 나쁘지 않다. 아니, 이제는 꽤 즐기고 있다고 보아야 하나.


어찌 보면 현 젊은 세대의 삶도 이런 식으로 변화해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뻔하디 뻔한 맛의 인스턴트 음식으로 배를 채울 때처럼, 무언가에 대한 기대를 버렸을 때 생기는 적당한 거리감과 공백은 때론 모든 것을 심플하게 포장해버리기에.


언젠가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우리 세대는 정을 참 빨리 떼는 세대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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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속 젊은 세대의 모습을 볼 때면 이러한 회의감이 온전히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란 것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들이 많다. 한껏 치장된 모습을 뽐내고 때론 거짓된 행복을 이야기하며 선망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이들의 모습에는 깊은 외로움이 내재되어 있다.

 

홀로 살아가고자 하면서도 홀로 살아가는 것이 버거웠던 젊은 세대는 다양한 방법으로 현실에서 찾을 수 없었던 사랑을 갈구한다. 비록 그것이 '단순하고 저렴하며 즉각적인', 어쩌면 스스로를 해칠지도 모르는 '인스턴트 쾌락'이라 할지라도.


한편으로 그것은 천천히 익어가는 다정한 관계를 품어낼 여유마저 상실한 현 젊은 세대의 어지러운 삶을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타인에게 줄 마음마저도 모두 소모해버린 이들은 기나긴 안부 문자나 진솔한 대화 대신 말없이 '좋아요'를 주고받는, 그 어떤 특별한 감정도 오가지 않는 소통을 지향한다.

 

그저 서로의 허기를 잠깐 달래기 좋은, 딱 그 정도의 거리감. 그 선을 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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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情)의 온기를 빠르게 잃어가는 이 '인스턴트 세대'는 남몰래 현실 속 불온전함을 채워줄 뒤틀린 소속감을 찾아 나선다. 본연의 모습을 꽁꽁 숨긴 채 스크롤을 멈추게 할 만한 덫을 놓기도 하고,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를 향해 열띤 환호를 보내거나 어떠한 이유에서 특정 개인 및 집단을 향한 맹목적인 혐오감을 거리낌 없이 공개적으로 표출한다. 한마디로 쉽고 빠른 '공감'을 유도하고 이를 서로에게 표하는 것이다.

 

이는 인스턴트 세대에게 정작 진실이 무엇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이유이다. 시간이 없고, 돈이 없고, 자유가 없어 모든 것이 보장되지 않은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는 차라리 심플해지기로 한 것이다.

 

애매하고 밋밋한 진실에 쩔쩔매느니 맵고 짠 자극적인 거짓으로 서로 속고 속일 때의 달콤한 쾌락을 추구하는 편이 이들에게는 훨씬 속 편한 선택이다. 없는 에너지를 서로에게 쏟아가면서까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의 관계를 감수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슬프게도 대가 없는 사랑을 기대하지 않는 세대이다. 이러한 악순환 끝에, 쉽게 정을 주지도 받지도 않는 이들은 결국 숨 쉴 곳을 찾아 '관심 사냥'에 나서고야 만다.

 

*

 

거리 위는 언제나 정신없이 휴대폰 자판을 두드리며 걸어가는 사람들 투성이다. 바쁘게 움직이는 손가락들은 지겹도록 퀴퀴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성비 좋은 유희거리를 찾아 구석구석을 헤맨다. 사람의 온기보다 모니터 속 세상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기 때문일까.

 

모니터 불빛을 스포트라이트 삼아 춤을 추는 모든 이들의 평온한 밤을 위해 기도한다. 순간의 허기를 달래려 거북한 쾌감을 억지로 삼켜내는 외로운 밤을 맞이하지 않길. 어딘가 서투르고 어색한 얼굴 속에도 여전한 진심이 있으며, 그것은 항상 우리의 삶에 아주 느리고 따뜻하게 스미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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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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