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커피를 좀 더 깊고 진하게 즐기는 법 - 커피 한잔

글 입력 2022.01.31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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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면 뭐가 가장 먼저 떠오르냐는 질문에 '커피'라는 답을 자주 듣는다.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나는 커피를 사랑해왔다. 하루에 커피를 한 잔도 안 마시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되었고 물보다 커피를 더 자주 마시는 날이 많다. 그렇다고 또 아무 커피나 마시는 건 아니다. 음식은 아무거나 줘도 잘 먹는 반면 커피 맛엔 은근한 고집이 생겨 생활권이 바뀔 때마다 내 입맛에 맞는 카페 찾기를 첫 번째 미션으로 정한다. 그렇게 찾은 카페는 사장님이 내 커피 취향을 기억할 만큼 문이 닳도록 찾는 단골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취향 맞는 사람과의 대화를 좋아하듯 나 또한 초면이라도 커피 좋아한다는 사람을 만나면 눈을 빛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떤 커피를 좋아하는지, 요새 가장 좋아하는 카페는 어디인지, 인생 통틀어 어떤 커피가 가장 맛있었는지 서로의 커피 취향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정말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때가 많다.

 

<커피 한 잔>을 읽을 때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마치, 책을 사이에 두고 또 다른 커피 애호가를 만나 오랫동안 커피에 대한 대화를 나눈 느낌이었다. 특히, <커피 한 잔>의 저자 권영민 교수는 나보다 더 오랜 시간 커피에 대한 애정과 경험을 적립해온 선배 커피 애호가이다. 한국 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커피에 대한 애정과 더해지니 이 책이 커피의 역사를 다루는 비문학 책인지, 그저 본인의 경험을 녹여낸 커피 에세이인지 헷갈릴 정도로 내용의 밀도가 높다.

 

커피가 처음 가비차로 한국에 뿌리를 내린 역사와 문학 속에 등장하는 카페들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사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선배 애호가가 커피를 더욱 진하게 즐기는 법이었다. 그가 커피를 즐기는 방식이 군데군데 녹아있는 책을 읽는 내내, 다음에 이건 꼭 따라 해 보리라는 커피 버킷 리스트를 세우게 되었다.

 

 

 

바흐의 커피 칸타타를 들으며


 

 

커피를 어찌 맛과 향으로만 말할 수 있겠는가?

커피를 제대로 즐기려면 그윽한 분위기가 더해져야 한다. ...

지금도 커피의 분위기를 따지는 사람에게는 커피 잔을 들고 <커피 칸타타>를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바흐의 <커피 칸타타>의 원제는 <가만히 입 다물고 말하지 말아요>이지만 <커피 칸타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바흐가 이 곡을 발표한 게 무려 1732년의 일이지만 그 가사를 살펴보면 지금과 별다를 바가 없어 아주 재미있다. 딸은 커피 없인 못 살 정도의 커피 애호가, 아버지는 딸의 건강을 걱정하며 날마다 커피 좀 끊으라고 잔소리한다는 칸타타 내용을 보면 18세기나 21세기나 참 비슷하다는 생각에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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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은 커피하우스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공연을 위해 작곡되었다고 한다. 18세기 독일에서 커피가 점차 대중적인 기호품으로 인정받고 이를 즐길 수 있는 커피 하우스가 생겨나며 쓰이게 된 것이다. 딸 리첸의 커피에 대한 찬사와 아버지의 잔소리가 아름다운 선율에 어우러지니 경쾌하고 밝은 느낌이 가득하다. 맛과 향만으로도 즐길 이유가 충분한 게 커피이지만 다음 번 커피를 마실 땐 저자의 추천대로 <커피 칸타타>를 들으며 분위기까지 곁들여 커피를 즐겨봐야겠다.

 

 

 

하와이 코나 커피


 

커피의 종류는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다. 안 그래도 다양한 원두들인데 이를 어떻게 블렌드 하는지에 따라서도 다양한 맛이 날 수 있다. 심지어 같은 원두도 얼마나 로스팅 하느냐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고 커피를 추출하는 시간, 물의 온도, 그날의 날씨 등의 변수까지 고려하면 맛있는 커피 한 잔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저자 권영민 교수는 #내가 좋아하는 커피로 하와이 코나 커피를 꼽는다. 여행길에 우연히 들렀던 커피 농장에서 맛본 풍성하고 달콤한 맛을 잊지 못한다며 코나 커피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풀어낸다.


 

따뜻한 커피잔을 들고 입가에 가져가면, 고소한 향기에 먼저 취하고 혀끝에 닿는 산뜻한 신맛과 쓴맛, 단맛이 저절로 눈을 감기게 한다. 약간 쌉쌀한 맛이 입안 전체에 번져 오랫동안 감돌다가 느껴지는 단맛이 코나 커피의 매력이다. 텁텁하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은 중간 정도의 바디감! 그것만으로도 나의 기분을 좋게 한다.

 

 

하와이 코나 지역의 커피는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예멘 모카와 더불어 세계 3대 커피로 손꼽히는 커피이다. 그만큼 요즘은 커피 좀 한다는 카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원두 종류가 되었다. 그러나 저자가 기억하는 커피엔 맛과 향뿐만 아니라 분위기와 추억이 얽혀있기 때문에 어느 카페를 가도 그 맛을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을 꿈꾸기 참 힘든 요즘이지만 언젠가 여행이 자유로워지면 꼭 하와이의 코나 커피 농장에 방문하겠다는 버킷 리스트를 추가했다. 그곳에서 갓 볶은 원두로 내린 코나 커피 한 잔을 꼭 마셔보고 싶다.

 


 

봄이 오면 학림다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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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문학 속 커피뿐만 아니라 자신이 다녔던 여러 카페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일본에서 교수로 지내며 다녔던 동네 카페부터 문학적으로도 가치가 높은 역사 깊은 카페까지 다양한 카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중, 나에게도 익숙한 곳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혜화에 위치한 '학림다방'이다.

 

대학에 막 입학한 무렵, 혜화에 위치한 대학에 다니던 친구가 꽤나 유명한 카페가 있다며 데려간 곳이 바로 학림다방이었다. 유명한 카페라는 말에 화려한 인테리어를 기대했던 내가 처음 카페에 들어서며 느꼈던 당혹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기대와는 달랐지만 학림다방에는 어느 카페도 따라 하기 힘든 그만의 분위기가 있었다. 널찍한 테이블과 2층으로 구성된 신기한 내부, 바쁘게 커피를 준비하는 직원들 뒤 목재 선반에 빽빽이 자리한 찻잔들, 구석구석 벽을 채운 낙서들이 세월을 머금고 있었다.

 

 

바꾸지 않는 곳도 더러는 있어야지요. 이 주변만 해도 해마다 새로운 간판을 내거는 집들이 수도 없어요. 여기 학림은 그냥 제가 지킬 수 있을 때까지 지킬 겁니다.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는 가게엔 추억이 서려있다. 특히, 대학교 주변에 위치한 음식점이나 카페는 가기만 해도 그 시절이 떠오를 만큼 추억을 가득 머금고 있는데 저자에겐 학림다방이 바로 그런 공간인 듯하다. 많은 것이 빠르게 생겨나고 사라지는 요즘,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는 가게와 그 주인들에 대한 고마움이 더욱 커진다. 돌아오는 봄엔 처음 학림다방에 데려가 준 친구와 함께 혜화에 다녀와야겠다.

 



[이영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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