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오감으로 즐기는 책 - 커피 한잔

글 입력 2022.01.3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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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커피를 못 마시는 사람이었다. 안 마시는 것이 아니라, 못 마시는 사람.

 

워낙 카페인에 예민한 몸을 가지고 있던 터라 카페인이 조금만 들어가도 심장이 너무 뛰어서 참을 수 없었다. 굉장한 심박수였다. '아, 사람들이 이래서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 잔다고 하는구나' 싶을 정도의 빠르고 거센 뜀박질을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따라서 커피를 먹는 사람들이 참 부러웠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습관적으로 커피를 찾는다. 술이 마실수록 느는 것처럼 커피도 마시다 보니 적응이 되더라. 빨리 뛰던 심장도 버틸 만해지니까 맛을 조금씩 느끼게 되고 맛을 느끼니 향도 맡게 되고 뭐... 뻔한 레퍼토리다. 커피가 좋아졌고 자주 마시게 되었다.

 

책 <커피 한잔>의 저자 역시 누구보다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커피를 더 향미롭게 즐기고 싶은 마음이 문학과 음악까지 섭렵하게 만들었다 말한다. 우리나라의 최초 커피 도입된 시기가 언제인지, 어떤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는지부터 커피를 소재로 만든 바흐의 <커피 칸타타>, 나아가 문학 속 카페 문화까지. 커피라는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도 뜯어보고 저렇게도 뜯어보고 있다.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시 중 이상의 <이런 시>가 있다. 우연히 접하게 된 순간, 반해버리고만 시인데 이 시 덕에 이상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내적 반가움을 느끼곤 한다.

 

책 <커피 한잔>에도 이상의 이름이 나와 퍽 반가운 마음으로 글을 읽어내려갔다. 이상이 경성 시내에서 다방을 운영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고백하건대, 나는 이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상이 문을 열었던 다방 이름은 <제비>. 이상에게는 문학의 글로 들어설 수 있게 해준 시발점이기도 했다고 한다.

 

화가를 꿈꿨던 그는 그림 실력도 꽤 수준급이었던 것 같다. 건축과 수석 졸업의 영예를 안고 조선총독부의 내무국 건축과 기사로 일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스물둘에 폐결핵 진단을 받고 건축 기사로서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어지자 떠올렸던 것이 다방 사업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타고나기를 장사치가 아니었던 그가 다방을 원활하게 운영했을 리가 없다. 한때 문인들의 아지트로 사랑받았던 다방 <제비>는 이상에게 문학의 맛을 알려준 대가로 역사 속 한 장면으로 사라지고 만다. 그 이후에도 이상의 다방 사업은 계속되었으나, 결과는 늘 비슷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소 안타까운 이야기이지만, 이상의 이야기를 통해 다방의 역할이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프랑스에서도 오래전부터 발달되었던 카페 문화가 경성 시내에서도 존재했었다는 것이 무척 놀랍다. 그곳에서 나눈 이야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방, 지금은 카페라 불리는 공간이 가진 특별한 힘이 있는 것일까? 은은한 커피향이 사람의 마음을 이완시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경우도 생각해 보았다. 카페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주제로 이야기가 번지곤 한다. 때로는 굉장히 방대한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굉장히 세밀한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카페의 건조한 공기가 목이 마르고 코가 간지러울 때까지 이야기는 멈추지 않는다. 입에서 입으로, 귀에서 귀로 흐른다.

 

친구를 만나면 맥주 한 잔을 시원하게 나누는 것도 좋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과는 역시 따뜻한 카페가 제격이다. 커피 한 잔씩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은은한 커피 향을 맡으면 경계심으로 가득 찼던 마음이 슬며시 풀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카페 안에서는 약간의 침묵도 견뎌낼 수 있다. 같은 이유로 카페를 찾는 다른 이들이 그 빈 공간을 대신 채워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인연을 시작하고 싶을 때면, 자연스레 카페를 찾게 되는 것 같다. 같은 맥락에서 책 <커피 한잔>을 떠올려 본다. 처음 읽는 책치고 문장들이 술술 넘어가서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커피, 그리고 카페의 힘을 여기서도 느낀다. 정말 마성의 단어라는 생각과 함께, 지금 이 글도 술술 읽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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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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