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손편지 월간 구독 서비스, '월간 白나경'

나의 아날로그 생존기 2편.
글 입력 2022.01.30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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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손편지를 쓰는 사람이 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우체통을 열어보았던 것이 언제였는가? 하긴, 통신비 고지서부터 카드 명세서까지 전부 전자 우편으로 날아오는 시대에 이러한 질문이 가당키나 할는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은가. 택배는 올 곳이 많은데, 편지는 딱히 올 곳이 없다. 택배는 인터넷에서 카드만 한 번 긁으면 당장 내일이라도 문 앞에 도착할 수 있지만, 편지는 (그것이 카드 명세서가 아니라면) 카드를 한 번 긁는다고 뚝딱 생겨나지 않는다. 그것이 대량 발송되는 기관 소식지가 아닌, 나만을 위한 누군가의 '손편지'라면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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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렇듯 손편지가 씨가 말라가는 와중에 꿋꿋이 손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바로 나다. 물론 우표를 봉투의 어느 부분에 붙여야 하는지도 모르는 청년들이 늘어가는 마당에 내가 편지 몇 통 쓴다고 손편지 문화가 부활하는 것도 아닐 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지난 2021년에 친한 친구들을 대상으로 1년 만기형 손편지 구독 서비스 <월간 白나경>을 런칭했다. 그리고 구독 신청자들에게 한 해동안 총 40여 통의 손편지를 써서 우편으로 발송했다.

 

12개월 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2022년 1월을 맞이한 <월간 白나경>의 편집장으로서, 지금부터 나의 지극히 사적인 종간(終刊) 후기를 남겨보려 한다.

 

 

 

기(起): 친구들의 군 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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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전부 친구들의 '군 입대'에서 시작되었다. 한 마디로, <월간 白나경>의 본래 정체성은 위문편지였다. 2020년은 배신과 갈등으로 점철되어 필자 인생에서 가장 힘겨웠던 시기였다. 그런데 그 2020년을 함께 견뎌 주었던 친구 A와 B가 나란히 2021년 2월 그리고 3월에 입대하게 된 것이다.

 

친구들은 나의 가장 힘든 시절에 함께 있어 주었는데, 정작 나는 그들의 가장 힘든 시절에 함께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나름대로는 추억을 만든답시고 우정사진도 찍고, 방탈출 카페도 가고, 고기도 사 먹이는 등 최선을 다했지만 그래도 아쉬웠다. 그러던 와중 셋이서 찍은 우정사진의 인화본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친구 A가 말했다. "손바닥보다 큰 사진은 부대에 반입할 수가 없는데..."

 

손바닥보다 큰 사진이 안 된다고? 그럼 손바닥보다 작은 사진을 보내면 될 일이었다. 친구의 말을 듣고 손바닥을 빤히 쳐다보니 딱 폴라로이드 사진 사이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매달 폴라로이드 사진이 담긴

편지를 보내면, 받을래?

 

 

친구들은 웃으며 당연한 것 아니냐고 답했는데, 그들은 아마 내가 정말로 카메라를 사재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그래서 이튿날 곧장 용산 전자상가에 가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사 들고 왔다.이때 친구들의 표정이 참 볼만했다. 이것이 <월간 白나경>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승(承): 배신, 그리고 리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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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발간된 <월간 白나경> 2월, 3월호는 순조롭게 발송되었다.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익숙지 않아 한 장에 1000원씩 하는 비싼 필름을 몇 장씩 날리는 일이 허다했지만 친구들이 받아 볼 것을 생각하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집에 오는 길이면 친구들이 부대 안에서 어떤 피사체가 제일 보고 싶을지 고민하면서 거리를 걷는 게 일상이었다.친구 B는 입대 전 몽마르뜨 언덕을 찍어 달라는 전언을 남겼기에 출장 촬영도 다녀왔다.

 

그러던 2021년 5월, 필자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나의 2020년을 송두리째 망쳐 놓았던 배신과 갈등의 주범이 모두 친구 A였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나는 A가 자신의 잘못을 1년 내내 숨긴 채 나의 호의를 계속 누려왔다는 것에 매우 화가 났다. 그래서 <월간 白나경> 리뉴얼을 감행했다. 기한(12월)을 정확히 밝힌 뒤 정식으로 추가 구독자 신청을 받았고, 답장을 구독료로 수취한다는 조항을 추가하여 일방적인 '퍼주기'가 되지 않도록 체제를 개편했다.

 

그렇게 <월간 白나경>은 총 6명의 구독자와 함께 새 출발을 맞이했다. 즉, 나는 달마다 6장의 폴라로이드 사진이 담긴 6통의 손편지를 발송하기 시작했다.

 

 

 

전(傳): 기대와 부담



<월간 白나경>은 리뉴얼 이후 5월호부터 12월호까지 총 8회 발행되어 발송되었다. 한 회차에는 나의 도장이 찍힌 작은 원고지 4장 내외의 편지에 폴라로이드 사진 1장이 담겨 있었다.보통 480원(연말 즈음에는 520원)짜리 선불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어 발송했다.  초기에는 폴라로이드 사진에 딱히 제목을 적어 주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욕심이 생겨 나름 예쁜 제목을 지어 주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또한 원고지는 담을 수 있는 글자의 수가 너무 적었기에 때때로 일반 편지지에 발송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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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송 과정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나의 불성실성이었다. 5월호 발간 직전 신청자를 받을 당시에는 6통의 편지 모두 심혈을 기울여서 썼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발송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디지털 메신저가 아닌지라 내가 보낸 것에 대한 기록이 남지 않는다는 점도 한몫했다. 각 구독자마다 매월 다른 내용을 담고 싶었지만 6통이나 되니 내가 지난 호에 어떤 이야기를 적어두었는지 정확히 떠올리기가 힘들었다.이쯤 되면 발송 전 사진을 찍어두는 것이 나을 듯 싶지만, 당시 나는 '아날로그는 사본이 없어야 한다'는 요상한 철칙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심적인 부담감이 커진 만큼 구독료(답장)에 대한 기대도 커졌다. 분명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돌아오는 것에 기대를 걸기 시작하니 구독자들에게도 부담이 전가되는 역효과가 생겨 일부 구독자의 경우 중간에 잠시 구독을 쉬거나 중지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더불어 원년 구독자였던 친구 B가 <월간 白나경>을 비롯한 나의 노력을 '사소하다'고 평하는 사태도 생겨났다. 그렇게 매월 초에 발송되던 것이 매월 말로, 그리고 다음 달 초로 서서히 밀려갔다.

 

 

 

결(結):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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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결국 22년 1월 초, 12월호 발송을 끝으로 이 프로젝트를 완주했다.

 

종간(終刊)호를 펴낸 후 최종 구독자 4명으로부터 12월호 답장을 받기 전까지 나는 이 프로젝트가 나에게 남긴 것에 대해 천천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솔직히 힘든 순간의 빈도가 더 높았던 것 같지만, 그 모든 순간을 상쇄할 만한 성취가 하나 있었다. 적어도 구독이 유지되는 순간까지는 구독자에 대한 나의 언어를 지켰다는 점이다.

 

나는 언어란 자신의 혀를 걸고 하는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언어의 힘과 가치를 알고, 나의 언어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내 인생 전반의 목표로 삼고 있다. 나는 구독자들에게 '일반 대중이 아닌, 바로 당신을 위한 글을 쓰겠다'고 약속했고 그것을 지켰다. 손편지의 특성상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나는 항상 '받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글을 썼고, 하다못해 사진을 고르고 제목을 지을 때에도 '받는 사람'의 성향을 고려했다. 그리고 받는 사람이 그 노력을 알아줄 때마다 날아갈 듯이 기쁘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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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보면 <월간 白나경>은 '내가 당신을 잊지 않았다'는 표시, 즉 내가 가진 사랑의 형태였던 것 같다. 코로나로혹은 군 입대로 인해 몸이 멀어진 상황에서도 매달 하루만큼은 상대를 생각하며 편지를 쓰겠다는 각오를 했으니 말이다. 내가 이런저런 상처를 받았음에도 이 프로젝트를 그만둘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언어와 당신의 언어가 설령 다르더라도, 나의 언어가 당신의 모국어가 될 수 없더라도 나는 계속 당신에게 말을 걸고 싶다'는 마음 하나였다.

 

물론 서로 구사하는 언어의 간극이 너무 클 때 이 마음은 상처입는다. 반대로 내가 상대에게 상처를 준 적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손편지'를 주었기 때문에, 상대는 (그것을 버리지 않는 한) 내 언어의 일부를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보통 SNS 메시지는 아무리 인상적이어도 실체가 없으므로 '소장'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월간 白나경>만큼은 모든 구독자들에게 영원히 '소장'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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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白나경> 구독 만료 공지문 中 일부.

 

 

**

 

내가 언어의 형태로 굳이 '손편지'를 택한 것은 어찌 보면 시대에 어떻게든 역행하고 싶은 청개구리 심보였을 수도 있고, 또 어찌 보면 빛을 잃어가는 옛 문화에 대한 연민이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인지는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는 언제나 아날로그식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1초면 휴대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세상에서 폴더폰을 꺼내고, 1초면 말을 전할 수 있는 메신저가 있는 세상에서 우표를 붙인 편지를 우체통에 쑤셔넣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시간이 허락하는 한, 0과 1의 흑백논리로 뒤덮인 이 디지털 세상에서 나는 영원히 360º로 회전하는 아날로그 언어로 말하고 싶다.

 

 

p.s. 편집장의 첨언. <월간 白나경> 편집부는 달콤한 휴식기를 가지며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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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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