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래도 사유는 계속된다 - 라스트 세션 [공연]

글 입력 2022.01.28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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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라스트세션_메인포스터_페어(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연극 <라스트 세션>은 프로이트와 루이스의 세기적인 만남을 구현한 2인극이다. 극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이 아맨드 M.니콜라이의 저서 <루이스 VS 프로이트>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이다. 실제로는 만난 적 없는 두 사람이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의 무대에서 논쟁을 벌인다는 점이 흥미롭다. 오직, 작가의 상상력으로 마주한 두 지성인은 신의 존재, 삶과 죽음에 대해 과감하면서도 재치있는 논쟁을 벌인다.


관람했던 공연은 4회차로, 프로이트 역에 배우 신구가 농도 깊은 연기로 깊은 감동을 전했고 루이스 역에 배우 전박찬은 남다른 카리스마로 관중을 압도하며 배역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극은 오로지 두 배우의 대화로 전개된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사상을 갖고 있음에도 예의를 지키며 끝까지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인다. 민감한 주제를 다룰 때도, 흔들리지 않고 논리적으로 반박하며 토론을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었다. 충분히 늘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둘의 입담과 유머로 그 무게를 덜어내고 분위기를 산뜻하게 채웠다.


삶을 관통하는 주제들이 물 흐르듯이 던져지고 각자의 신념이 부딪히며 근거를 앞다퉈 내세우는 둘의 모습에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 공간을 메우는 둘의 말소리는 대화에서 토론을 넘어 동시대를 사는 인간의 소통이자 이념의 강렬한 교류다. 논리적인 의견에 프로이트의 편에 섰다가도 루이스를 동조하게 됐다.


정적인 공간에서, 공습 소식이 들려오는 라디오와 간간이 울리는 전화기 소리만이 이들의 대화를 조절하는 유일한 장치다. 이로 인해, 둘의 만남이 사사로운 감정으로 만들어진 자리가 아닌 공포가 엄습하는 전쟁이 배경임을 자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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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생각의 교류를 통해 서로 크고 작은 영향을 받는다. 프로이트는 전쟁 소식을 듣기 위해 라디오를 켜지만, 음악이 흘러나오면 칼같이 꺼버린다. 그는 감정에 흔들리는 것을 싫어한다. 이성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음악에서 감동받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루이스는 감정을 드러내기 두려워한다고 지적했고 음악을 좋아하지 않던 프로이트는 루이스가 퇴장한 후 라디오 속 음악을 키운다.


끔찍한 전쟁이 일어난 것도 신이 존재해서일까. 그렇다면, 왜 이런 혼란을 주는지 원망이 들 것이다. 무신론자인 프로이트는 “신이 있다는 것은 히틀러를 신격화하기 위한 수단이야. 제도는 우월한 자들을 위한 것이지”라며 신의 존재는 전쟁의 도구라고 말한다. 이에 루이스는 "악이 존재해야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가치를 느낀다"며 반박한다.  종교는 과학을 끌어들이고 싶어 하지만, 과학은 이를 거부하고 신을 믿지 않는 것 자체가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라며 설득력 있는 반론을 제시한다.


신의 존재에 대한 이견에도, 죽음 앞에서는 전부 나약한 존재가 된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겠다던 프로이트도, 유신론자였던 루이스도 갑자기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에 속수무책 없이 굴복한다. 살기 위해 책상 밑에 숨고, 가방에서 황급히 방독면을 꺼내 얼굴에 쓰기 바쁘다. 전쟁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나약함은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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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이 나를 죽이기 전에 내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겠다."

 

 

프로이트는 죽음에 대한 선택이 자유 의지에 달려있다는 신념으로 구강암으로 입천장을 드러냈지만 더 이상의 고통을 피하고자 치료를 거부한다. 결국, 그는 루이스를 만나고 3주 후 약물중독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극도 그렇게 끝이 난다.

 

루이스가 떠나고 남은 서재에서 그는 홀로 온 세상을 홀로 떠난다.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죽음을 선택했다. 인생의 마지막에서 보여준 그의 신념을 통해 우리는 고민하게 된다. 통제할 수 없는 이유로 죽음을 맞닥뜨리게 됐을 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말이다. 치열하게 싸울 수도,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죽음에 대한 프로이트의 신념처럼 그는 수집할 때도 죽은 것을 모은다. 그는 시간과 역사가 깃들어 있는 고대유물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무대 위, 정갈하게 놓인 오브제의 기운이 서재를 감싸며 프로이트의 논리에 힘을 더한다.

 

고대유물에서 시작된 이야기의 흐름은 이집트의 사후세계로 이어진다. 이집트 사람들은 심장에 인생의 경험이 들어있다고 믿었다. 시신을 처리할 때 뇌는 버리되 심장을 저울에 올려 그 무게를 쟀다고 한다. 경험이 많으면 그만큼 무게가 더 나간다는 논리다.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기독교의 사후세계처럼 삶의 모든 것을 심장에 묻고 떠난다고 생각한 것이다.

 

 

22라스트세션_티저포스터(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시대의 불안감 아래, 상상 속에서 펼쳐진 이들의 대화는 현시대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까. 루이스는 대화 막바지에 깨달은 듯이 말한다.

 

 

“시대를 초월한 최대의 미스터리를 하루아침에 풀어보겠다고 생각하는 건 미친 짓이죠.”


 

그렇다. 프로이트는 신의 유무를 판가름 짓기 위해 루이스를 만나고 싶었던 게 아니다. 치열한 토론 후에 어떠한 질문도 그에 맞는 답을 찾지 못한다.

 

전쟁으로 하루에 수만 명이 목숨을 잃는 암담한 현실에서 사람들은 나약함으로 점철된다. 인생은 무엇일까. 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삶에 무의미함을 느끼고 자신의 존재에 의구심을 갖게 된다. ‘죽음’이라는 공통분모는 신을, 사랑을, 도덕적 신념을 의심하기도, 간절하게 믿게 만드는 존재다.

 

두 사람은 삶을 관통하는 질문을 통해 각자의 인생을 반추한다. 아버지와의 관계, 욕구와 갈망, 신의 존재를 갑작스레 깨우쳤던 사건까지. 하지만 끝내 알게 된다. 이분법적 시각으로 다가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그래서 루이스는 신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그 형태가 항상 변할 뿐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무신론자인 사람들조차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는 신을 찾기 마련이다.


이들의 대화는 현재에도 유효하다. 코로나라는 질병이 세계를 강타했고 하루에도 수만 명의 목숨이 오간다. 전쟁처럼 예상할 수 없는 변수들이 삶을 쉴 새 없이 위협하고 있다. 그럴수록 자신을 더 단단하게 지켜야 한다.

 

깊이 있는 극을 담아내기에 내 식견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분명한 점은 질문을 통해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하면 진리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을 내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관객들이 이들이 나눈 질문을 통해 각자의 사유를 즐기길 바란다. 그동안의 지적 욕구를 맘껏 충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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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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