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노다메 칸타빌레' 나의 외로움과 불안이 부를 때 [영화]

글 입력 2022.01.29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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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외롭지 않은 게 아니냐고 물었다. 그렇다면 성공이다. 드러나지 않게 잘 숨겼다는 이야기일 테니까. 그저 외롭지 않은 사람이 있냐고 답했다. 구구절절 말하지 않은 건 내 곁에 누군가가 존재하더라도 모든 외로움이 채워지지 않는다는 생각 정도. 혼자 가는 길보다 누군가의 존재 자체가 위로와 안도가 되지만, 마음의 세상은 꼭 있는 그대로의 현실과는 다르다. 적어도 보이지 않은 내 마음 어딘가는 가난하고 결핍되어 있으며 불안하고 고통스럽다.


성공은 공들이고도 운이 좋은 몇몇 순간. 그마저도 애써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져버린다. 연세가 드신 분들이 자신의 업적을 꾸준히 다른 이에게 전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 아닐까. 알 수 없는 길을 걷고, 사람을 만나고, 밥을 먹고, 잠에 드는 와중에 폭풍이 밀려오고 산이 무너져 내린다. 사상자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건 다행일까? 마음의 재해에서는 가장 괴로운 사람도, 가장 애쓰는 사람도 스스로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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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다메 칸타빌레, 2006

여기까지 오기 많은 사연이 있어요


 

잘 살고 있는지 두려움이 앞설 때마다 <노다메 칸타빌레>를 찾았다. 마음에 이미 있는 답을 눈으로 보고 듣고 확인받고 싶었다. 노다메와 치아키처럼 흔들리면서도 조급해하면서도 계속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다시 기운을 차린다. 다짐을 한다. 저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누군가에게 저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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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다메 칸타빌레, 2006

 

 

<노다메 칸타빌레>는 제목이 무색하게 치아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치아키의 트라우마 극복 및 성장 이야기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치아키는 지휘자가 되고 싶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고, 확실한 장애물인 트라우마가 발목을 붙잡았다. 실력 있고, 멋지고, 부유한, 뭐 하나 부족한 것 없어 보이던 그도 누구보다 절박했다. 어릴 적 트라우마가 생겨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자신은 할 수 없는 유학을 다른 사람이 하면 그렇게 신경질이 나고 음악을 관둬야 하는 건가 자괴감에 빠졌다. 타고난 재능도 있지만 매일 꾸준하게 연습했고 피아노과 학생이 지휘 공부를 하냐는 말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분노의 피아노를 선보이다가 교수님에게 필터링 없이 화를 내서 지도교수가 바뀌고 콩쿠르 기회가 날아갔다. 치아키도 당시엔 뵈는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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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다메 칸타빌레, 2006

노다메한테 볼 뽀뽀를 허락하겠다고

아까부터 벤치에 저러고 누워있다니까요


 

옆집 사는 사이. 이렇게 적당히 현실적이면서 환상적인 사이가 없다. 치아키와 노다메는 알고 보니 이웃이었다. 이웃인 걸 알기 전부터 치아키는 이미 베토벤 소나타 2악장 비창을 듣고 적어도 노다메의 피아노에는 반한 상태였다. 그의 마음에 든 음악이 없었다는 걸 생각하면 애초에 대단한 일이다. 노다메의 더러운 방엔 기겁하면서도 자신의 집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악취를 견딜 수 없어 요리와 청소를 해주고, 그녀의 칭찬과 열렬한 구애에는 은근하게 스며들어 버렸다. 나중엔 일부러 볼 뽀뽀를 '허락'해주는 지경에 이른다. 그림같이 벤치에 누워서 노다메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걸 생각하면 재미있다.


<노다메 칸타빌레 최종악장>(이하 <최종악장>)에서 치아키가 노다메를 만난 게 신이 도운 것 같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럴 만도 하다. 물론 슈트레제만까지, 사실상 두 명 덕분이다. 처음 대학 오케스트라에서 지휘를 하게 됐고, 지휘자로서의 커리어를 쌓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심지어 슈트레제만이 준 시계로 노다메가 한 간단한 최면 덕분에 평생의 한이었던 트라우마가 해결되었다. 처음 비행기를 타고 게를 잔뜩 사서 노다메에게 주던 모습이 선하다. 물론 비행기를 타는 게 편하진 않지만 이제 그를 막고 있던 장애물은 사라졌다.


비주얼 커플이라 불리던 성악과 전여친 사이코는 비행기도, 배도 못 타는 그의 트라우마를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한심한 게 아니라 마음이 동체착륙 때 같은 비행기에 탑승했던 승객 중 할아버지 제때 약을 드시지 못해서 사망한 일이 죄책감이 되어 생긴 트라우마였다. 우연히 약을 드시는 걸 알았고 음악을 많이 좋아하시는 분인 걸 알고 동체착륙으로 굴러가는 약병을 잡지 못했다는 게 치아키가 느낀 잘못이었다. 치아키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고등학교부터 오래 알던 사이임에도 그런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 게 의아하지만, 사이코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도 했고 치아키 역시 그렇게 상세하게 이야기하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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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다메 칸타빌레 최종악장, 2010

 

 

그러나 슈트레제만과 노다메는 그의 트라우마를 한심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슈트레제만은 치아키를 제자로 들일 정도로 아껴주었고, 노다메는 치아키가 유학을 가게 되면 자신과 너무 멀어질까 봐 걱정을 했지 트라우마를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치원 선생님에 안착하려던 마음을 접고 선배와 함께 유학을 가겠다는 포부로 콩쿠르에 도전한다. 어릴 적 콩쿠르 준비과정에 좋지 않은 기억이 있어서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노다메가 치아키를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스스로에게도 상처가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저 자유롭게 마음대로 치고 싶다는 표현 뒤에 숨어 있고 더 티가 나지 않았을 뿐. 아이를 좋아하긴 하지만 유치원 선생님이 되려고 했던 이유 중 음악과 너무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일부 있었을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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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다메 칸타빌레 최종악장, 2010

베베쨩이라고 부르지 말지 그랬어요


 

노다메는 콩쿠르 수상엔 실패했지만 심사위원이었던 오클레르 선생님 덕분에 피아노에 전념할 수 있었다. 치아키도 순조롭진 않았지만 지휘자 콩쿠르에 나가 좋은 결과를 얻고 새로운 오케스트라를 맡게 된다. 다만 <최종악장>에서는 오클레르 선생님도, 치아키도 답답하다. 조급한 마음이 들 걸 알고 있으면서도 노다메가 괜찮을 거라고 착각한 것이다. 입이란 게, 필요한 이야기를 하라고 있는 거거든요. 오클레르 선생님은 계속 노다메에겐 비밀로 하고 실력을 쌓아주고 무조건 콩쿠르도 안 된다며 '베이비'라고 부른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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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다메 칸타빌레 최종악장, 2010

폭풍전야

 

 

치아키는 음악에 전념하고 싶어서 노다메와 거리를 두고 이사를 간다. 노다메는 치아키와 콘체르토를 하고 싶은 꿈이 있는 걸 알면서도, 상황상 피아니스트 손 루이와 콘체르토를 하게 된다. 심지어 노다메가 가장 하고 싶었던 곡을. 서운하고, 서운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노다메가 그걸 이해 못 한 건 아니다. 다만 치아키는 노다메에게 같이 하지 못해서 아쉽고, 미안한 마음을 제대로 전한 적이 없었다.


결국 <최종악장>의 돌이킬 수 없는 걸음은 오클레르 선생님, 치아키, 그리고 슈트레제만으로 완성된다. 앞길은 막힌 것 같고, 치아키는 노다메를 불안하게 만들고, 슈트레제만은 이 와중에 콩쿠르도, 치아키와의 협연도 됐으니 나랑 협연하자고 제안했다. 우리의 주인공 노다메는 협연을 망치지 않았고, 그게 가장 큰 장애물이다. 반응이 너무 좋았고, 스스로도 그 이상을 할 수 없을 거라는 엄청난 불안감에 휩싸였고, 치아키를 만나기도 그런 상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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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다메 칸타빌레 최종악장, 2010

본업 할 때만은 진지한 두 사람


 

노다메를 우당탕탕 예측할 수 없는 캐릭터로 볼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일관성이 있다. 거짓말을 할 땐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정말 힘들 땐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잠수를 탄다. 이번에도 남은 건? 당연히 잠수다. 잠수를 타면 사람들은 찾다가, 찾다가, 점점 익숙해지고 잊어버린다. 나중에 치아키가 괴로워하는 모습이 쌤통이었던 건 부정할 수 없다. 만고불변의 명언이 있지 않소, 있을 때 잘하자. 후회하지 말고.


<최종악장>에서 마음에 들었던 건 노다메의 잠수를 꺼낸 게 치아키가 아니기 때문이다. 음악과는 담을 쌓고 숨어있던 시간을 꺼낸 건 기숙사에 사는 숨은 작곡가 학생이었다. 우연히 그녀가 하는 음악을 듣고 같이 연주하면서 음악을 즐기면서 하는 게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상관없고, 내가 좋으면 되는 거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기회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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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다메 칸타빌레, 2006 (상)

노다메 칸타빌레 최종악장, 2010 (하)

 

 

당연하게도, 두 사람을 응원하는 입장에서 둘이 화해하게 된 건 기분 좋았다. 노다메의 소식을 듣고 치아키가 미친 듯이 달려와 노다메의 피아노 소리를 듣고 울컥했다. 손목을 붙잡고선 노다메와 다시 모차르트의 2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를 연주하고 나니 마지막 둘의 표정은 사르르 풀어져 있었다.


노다메에겐 치아키라는 존재가, 사랑하는 사람이면서 쫓아갈 수 없는 목표가 등대처럼 있었다. 피아노를 더 진지하게 마주한 것도, 유학을 온 것도, 콩쿠르에 나가고 싶었던 이유도 치아키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과거와는 달라졌다. 이제 노다메는 치아키를 사랑하지만 그에게 먼저 보고 싶지 않다고 스스로 거리를 둘 수 있고, 치아키가 음악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니다. 슈트레제만과 한 협연 역시 부담되지만 그게 슈트레제만이 주고 싶었던 마지막 교훈이었다. 살아가면서 재능이 많은 사람들에 불안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경쟁자가 있다면 그건 우리 자신일 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위해 노력하고, 우리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계속 도전하면 된다. 내 여력이 향하는 곳은 나 자신인 걸로 충분하다. 승부를 낸다면 그 대상 역시 나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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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다메 칸타빌레 최종악장, 2010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고 인간관계는 제법 좁으니, 노다메와 치아키와 닮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노다메와 치아키는 하나뿐이다. 아는 이야기지만, 때론 다른 이의 입을 빌려 듣고 싶은 말을 노다메 칸타빌레가 전해준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음악도 그랬다. 베토벤의 비창 2악장이 얼마나 따뜻한 위로가 되는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 자기혐오와 우울의 덫을 빠져나왔을 때 얼마나 환한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지 느끼게 해 주었다.


계속 생각하고 실천하면서 실패하고 다시 시작한다. 다시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을 땐 아마 다시 <노다메 칸타빌레>를 꺼내고, 그 안에 담긴 음악과 사람들의 이야기로 조급함과 불안함을 잠재우는 과정을 반복할 것이다. 작심삼일이면 어떻고, 마음이 예측할 수없이 변덕스러우면 어떤가. 매일 결심하고 실패하더라도, 놓지 않으면 결국은 익숙해지는 날이 올 것이다. 그 과정에서 외롭지 않고,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외로움과 불안과 친구가 된 사람과 친구가 되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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