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샤워하기 좋은 시간 [사람]

글 입력 2022.01.28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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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했던 거짓말과

어제했던 bad decision

do you know how to keep myself clear

다 비누로 씻어내는거지

비누 비누 let's be new

비누 비누 let's be new

비누 비누 let's be new

비누 비누 let's be new

 

- 비비, '비누' 중

 

 

돌이킬 수 없는 선택들에 대한 후회는 때때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진다. 지나온 과거에 대한 미련은 후련하게 버리라지만, 오히려 과거의 결정들을 번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했을 때 미련이란 것은 더욱 커져버리고 만다.

 

조금 개인적인 고백을 하자면, 나는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 헤맨 지 어느덧 6년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한 확신을 얻지 못해 나라는 사람의 가치와 필요성에 대한 의문을 안고 있다. 수많은 순간과 기회, 그리고 관계의 상실 속에서 나는 부디 내 스스로가 단단해지길 바랐지만 오히려 오랜 시간이 지난 탓에 물러 터지기 직전의 상태가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싱그러운 마음을 되찾으려다가 지친 나머지 시들어버린 꽃처럼 몸을 축 늘어뜨린 채 살아갔다. 좋은 딸,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사람. 슬럼프가 절정에 치달으면서 되고 싶었으나 되지 못했던 '나'의 모습들을 다시금 떠올리는 순간이 많아졌다. 그럴 때면 이제 와 구멍 난 과거를 덧대려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듯이 추레한 현실이 그 민낯을 살벌하게 드러내며 나를 겁박하기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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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잠재우기 가장 좋은 방법은 샤워를 하는 것이다. 날씨가 추워진 탓인지 아니면 생각이 많아진 탓인지 최근 들어 샤워 시간이 길어져 한 시간을 훌쩍 넘긴다. 얼굴 위로 쏟아지는 뜨거운 물줄기와 온 사방에 퍼지는 샴푸 향기, 퐁신한 거품의 촉감. 그런 것들에 취할 때면 엉킬 대로 엉켜버린 기억들이 잠시나마 몽롱해진다.

 

김 서린 공간에서 과거의 순간들이 남긴 흔적을 씻어내는 시간. 오랜 무기력 속 찌든 몸을 씻어내면 비로소 새것처럼 반짝이는 마음이 보인다. 자기 혐오감 뒤에 숨겨졌던 자기애, 타인을 향한 원망과 불만 뒤에 숨겨졌던 기대와 사랑, 가식 뒤에 숨겨졌던 완벽을 향한 욕심. 겉으로 보이는 것들에 속아 차마 보지 못한 진심을 보기 위해 오랫동안 씻고 또 씻는다. 스스로와 타인을 향한 오해와 편견으로 얼룩지고 때 탄 내면을 정화하며 다시 새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다 벗지 않아도 부끄럼 없이

솔직했던 나

언젠가부터 샤워를 해야

깨끗해졌나

거울 대신 돌아보는 어제가 많을수록

음- 씻고 싶어지는 마음

 

- 김뜻돌, '샤워를 해야해' 중

 

 

샤워가 끝날 때 즈음이면 물기 어렸던 눈이 다시 생기로 가득 차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웃기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나는 참 단순하면서도 나를 참 모른다. 스스로에게만큼은 솔직하다고 생각했건만, 그것마저도 하나의 오해였나 보다.

 

하루 한 시간 따뜻한 물로 샤워하기. 엎질러진 인생을 되돌릴 수는 없더라도 어지럽혀진 생각들을 가지런히 정리하며 다시 한번 새사람이 되기 위한 일상 속 작은 일탈이다. 그러고 보니 우울은 수용성이라는 말이 있던데, 직접 경험해 보니 어느 정도 신뢰해도 괜찮을 법한 말이 아닐까 싶다.

 

아주 오랫동안 극심한 슬럼프를 겪고 있지만, 이젠 적어도 예고 없이 쏟아지는 비에 태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에 그 의의를 두고 있다. 마땅한 방법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굳이 없는 우산을 구하려 애쓰지 말고 그냥 비를 맞아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온몸이 젖어 질척거리더라도 다시 깨끗이 씻어내면 그만일 테니까.

 

 

 

정예은.jpg

 

 

[정예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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