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어른들이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보면 괜히 멋있어 보였다. 한창 키가 클 나이에 커피를 마시면 안 된다고 하시던 말 때문인지 커피는 어른의 음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부모님이 다 마시고 남은 커피의 마지막 몇 방울을 먹어보겠다고 커피잔을 기울여 혓바닥을 날름거리던 기억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맛본 달콤 쌉싸름한 믹스커피의 맛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혼자 마시는 커피는 생각을 곁들이고 여럿이서 마시는 커피는 대화가 함께 한다. 커피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거나 프루스트 효과처럼 과거의 기억을 상기시켜주는 매개체가 된다. 서울대학교 권영민 명예교수는 그의 도서 ‘커피 한잔’에서 커피의 역사를 시작으로 커피와 한국 문학, 그리고 그가 여러 공간, 여러 사람과 함께 했던 커피의 추억을 공유한다.
역사 속 커피
1895년 발행된 유길준의 <서유견문>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숭늉과 냉수를 마시듯 서양 사람들이 차와 커피를 마신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때 ‘커피’가 ‘가비(茄非)’라는 말로 소개된다. 이후로 우리나라에서도 커피는 ‘가배’나 ‘가비’ 등으로 알려지게 된다. 을사조약으로 경성이 제국주의적 근대화가 되면서 다방, 커피숍 등이 하나둘 서울에 들어서고 그 가운데 가배는 인기 메뉴로 놓인다. 해방 직후에도 커피는 자연스럽게 한국 대중들의 기호품으로 자리매김한다.
20세기 초 한국 문학에서 커피는 본격적인 소재로 쓰인다. 김기림의 <커피 잔을 들고>, <도시 풍경>이 그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은 조선총독부 건축기사를 사직한 후 종로 2가에 ‘다방 제비’의 문을 여는데 이곳은 문학인들의 교류의 장이 된다. 호기로운 시작과 달리 다방 운영에 실패한 이상은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게 되지만 다방 제비는 그가 박태원, 이태준, 정지용 등의 당대 문인들과 만나는 기회가 되면서 그의 문학적 산실이 된다. 이상의 <실화>, 주영섭의 <바‧노바>, 정지용의 <카페‧프란스> 등의 작품에서 카페가 잘 묘사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시절 예술가들에게 카페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짐작케 한다.
한국보다 커피를 2, 3세기 먼저 접한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로 카페는 예술가들에게 중요한 공간이다. 1652년 영국 런던에서 커피하우스가 처음 생겨난 뒤로 1672년 무렵 프랑스 파리에서도 커피 전문점이 생겼고 이는 유럽 전역으로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그리고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그레코는 250년이 넘도록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카페 그레코는 괴테가 로마 여행 동안 자주 들렀던 곳으로 유명하며 그는 이탈리아 여행 이후로 <파우스트>를 집필하였다. 괴테뿐만 아니라 찰스 디킨스, 안데르센 등의 세계적인 문인들이 카페 그레코를 찾아와 담소를 즐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오랜 기간 동안 카페 그레코는 음악가, 작가, 지식인 등의 예술가들이 즐겨 찾는 만남의 장소였다. 카페는 동서양을 막론해 생각과 담론의 장이며 예술가들이 새로운 영감을 찾아가곤 했던 공간이다.
![[크기변환]IMG_2496.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201/20220127230940_prfaxsiq.jpg)
‘커피 한잔’은 커피를 소재로 20세기 한국문학의 이야기가 주로 다루어진다. 제1장 <커피의 문화>와 제3장 <커피의 공간, 카페>에 책의 무게가 실렸으면 했지만 제2장 <문학 속의 커피>에 좀 더 중심이 실린 느낌이다. 이는 한국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로서의 면모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커피의 문화나 커피와 카페와 얽힌 필자의 경험이 더 궁금했기에 아쉬운 부분이다.
그렇지만 그 비중이 적었을 뿐 커피를 사랑하는 필자만의 여러 경험들이 이 책의 묘미다. 커피를 전문적으로 알아가고 싶은 사람보다는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이 읽기 좋은 도서다. 따뜻하고 진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곁들여 읽는다면 금상첨화다.
커피의 다양한 향과 맛만큼이나 사람에겐 셀 수 없을 만큼 다채로운 생각들이 있다. 그렇기에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누군가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행위는 그 무엇보다도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커피로부터 위로를 받기도 행복을 얻기도 하는 우리가 커피를 사랑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