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초록색과 사랑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을 떠올릴 때
글 입력 2022.01.28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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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을 떠올리면 '초록색'을 바라보는 때이다.

 

아침 9시. 화상영어 수업을 마친 후 물을 한 모금 마신 뒤에는 어항으로 어슬렁 다가가 조명을 켜준다. 약 30마리의 구피들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우렁이들이 있는 그곳은 하루 8시간 정도 빛을 주는 것이 적당하댔다. 빛이 들어온 순간부터 넓은 초록색의 스펙트럼을 가진 수초들은 빛나기 시작한다. 알록달록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어항을 유유히 헤엄치는 구피들. 그리고 그들 사이를 포근히 감싸안는 싱그러운 수초들을 지긋이 응시한다. 마음 속 기쁨의 얼굴이 고개를 서서히 든다. 수초들은 물 안에서 별처럼 푸르게 반짝인다.

  

언제부턴가 자연을 키움으로써 세상의 이치를 조금씩 알 것만 같았다. 그건 바로 사랑이다. 자연에서 태어나 이 땅 위에 살아가는 우리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떠올려본 적이 있는가? 추측할 수 있는 수많은 예상 답안이 머릿속을 답답하게 채우는 경험을 수많은 밤 속에서 해왔다. 돈, 명예, 지위, 그리고 이 밖에 우리의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수많은 외부의 것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쟁취하기 위해 이 땅에 온 것은 아니라는건 분명했다. 그것들은 지속가능하지도, 본질적이지도 않다고 느껴졌으니까. 헌데 자연을 키우는 것만큼은 분명 지속가능하고, 본질적이고, 더 나아가 가슴이 벅찰 정도로 미래지향적인 일이었다.

 

구피들에게 사랑을 주는 나는 '신'이다. (놀랍게도 나의 성은 '신'씨다) 그들에게 나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부재 시 즉시 생존이 위험해지는 그런 필연적인 자다. 그들에게 매일 고단백질로 구성된 고품질의 천연 영양 사료를 두 번씩 주는 것도, 어항 물냄새가 조금이라도 나빠지면 곧장 환수를 하는 것도 이 세상에는 나밖에 없다. 물론 우리 가족 중 한 명이 내가 없을 때를 대신해서 돌봐주겠지만, 나만큼은 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 생명체들을 사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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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쌀밥에 멸치볶음 한 가득 올려먹는걸 좋아하면서 비슷한 크기의 구피들은 애지중지 키우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가소로움을 느낀 적도 있다. 참 모순적이지 않나? 등 뒤에 구피들이 뽈뽈거리며 헤엄치는 어항을 두고, 저녁 밥상에 멸치볶음이 올라온 날에는 '맛있다'를 연발하며 한 그릇을 다 비운다. 이렇게 인간이 모순적이다. 하지만 멸치라는 반찬, 애완동물인 구피와 나의 관계는 단순히 사람과 동물로 한정지을 수는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사랑과 애정'의 차이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먹는 멸치는 불특정 다수에 의해 그저 밥상 위에 올리기 위해 어획한 것이지만, 구피는 나의 어항 속에서 온전히 건강하고 평온하게 자라기 위해 존재한다.

 

밖에서 오래 있는 날에 귀가하는 길이면 '구피 밥부터 줘야지'를 되뇌인다. 통통하게 튀어나와야 하는 구피들의 배가 홀쭉해지면 밥을 굶었다고 말했을 때의 엄마의 반응이 빛의 속도로 이해된다. "엄마, 구피 새끼들 먹이 안 줄 때도 이렇게 조마조마한데 자식들이 밥 안 먹으면 마음이 정말 안 좋겠다." 엄마는 '말해 뭐하냐'는 어투로 당연한 걸 묻냐고 하셨다. 다행히 내가 키우는 구피들은 똥뙈지 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로 배가 불룩 나오다못해 터지기 직전일만큼 사랑스럽다.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신'이 된 것처럼 구피들에게 모든 것을 다 주었던 결과 어항에서는 새로운 미래가 끊임없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10마리로 시작한 어항이 어느덧 5-60마리의 구피로 채워짐을 바라본다. 1cm도 안 되는 작은 치어들이 갓 태어나면 세상 이치를 모르는 성체 구피들은 그것들을 먹이로 착각하고 먹으려 한다. 자기 몸보다 몇십 배는 더 큰 성체들이 불쑥 나타나면, 치어들은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지만 빛처럼 빠른 속도로 피신한다. 치어들 또한 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면 어느새 어엿한 어린이, 청소년의 몸을 지나 건장한 성체로 성장한다.

 

아마 구피들은 모를 것이다. 깨끗한 물에서 마음껏 숨을 쉬고, 매일 고품질의 먹이를 먹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이유를. 그리고 나 또한 꽤 긴시간 알지 못했다. 이 땅에서 지금까지 온전히 살아올 수 있었던 이유를. 구피들에게 나는 한 차원 너머의 존재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를, 당신을, 우리를 숨쉬게하고 살려왔던 것은 현재의 차원에서 설명하거나 예측하기 힘든 그 무엇 덕분임이 확실하다.

 

구피와 인간은 사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동등한 존재나 다름없다. 모두가 엉겹의 시간 속에서 설명이 불가능한 기적을 뚫고 탄생한 '완벽하게 불완벽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수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좌절하고, 아파할 때조차도 '사랑'이라는 저 너머의 차원이 없었더라면 존재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을 떠올리면 '사랑'을 생각하는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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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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