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때 그 시절 커피 이야기 - 커피 한잔

권영민 작가가 들려주는 커피 이야기
글 입력 2022.01.28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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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절친 P는 커피광이다.

 

커피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나중에 개인 카페 하나 차리는 게 꿈이라고 할 정도로 커피에 진심인 P는 서울 이곳 저곳의 카페를 돌아다니는 취미가 있다. 우리가 만날때마다 P는 항상 근처 분위기 좋은 카페에 날 데려가는데 카페 탐방 취미가 있는 P인지라 P가 데려간 카페가 좋지 않았던 적은 한번도 없다.

 

그에게는 커피 맛을 감별할 줄 아는 예리한 미각도 있다. 같은 아메리카노라도 어디는 쓰고 어디는 시고 어디는 괜찮고를 탁탁 짚어낸다. 놀랍도록 맛에 둔감한 나에게는 너무 신기한 광경이다. 난 다 똑같은 아메리카노인데 P는 분명 다 다르다고 한다. 이젠 어디 카페를 가면 P의 반응부터 궁금해진다. 지금 카페는 어떤 편이려나, 입에는 맞나? 실까, 쓸까, 아니면 잘 맞을까? 하는 궁금증부터 올라온다. 그가 한 모금 하길 기다렸다가 컵을 내려놓는 순간, 난 그새 궁금증을 못 참고 물어본다.

 

"여기는 어때, 써? 아님 셔?"

 

"...좀 신 것 같은데."

 

"그렇구나.. 이 정도가 좀 신편이라는 거, 기억하겠어."(물론 제대로 기억 못 한다)

 

P는 가끔 커피 관련 얘기도 해주는데, 그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난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의 이야기를 듣는걸 좋아하는데, 그에게서 커피 이야기를 듣는 건, 굉장히 재밌는 일이었다. 이것도 얘기해달라, 저것도 얘기해달라는 나의 부탁에 P가 곤란해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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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커피 한잔>을 읽으면서 그때 기억들이 떠올랐다. 더불어 인자하신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린 시절 겪은 재미난 이야기들을 해주는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친근한 이야기꾼이 커피 이야기를 한 보따리 들고와서 바로 옆에 앉은 다음 나에게 이것 저것 풀어내주는 것 같았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

 

"옛날 옛적 할아부지가 어린 아이였을 때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커피 한잔>은 몸에 힘을 쫙 빼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굳이 책 내용에 집중하려 하지 않아도, 책에 귀 기울이려는 시도를 하지 않아도 내용들이 술술 귀에 들어온다. 커피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그냥 곁에 있기만 하면 이런 저런 얘기들을 얻어갈 수 있다.

 

'커피는 왜 이름이 커피일까?', '커피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커피의 이름에는 어떤 유래가 있을까?', '커피는 언제부터 사람들이 마셨을까?', '옛날 사람들은 커피를 어떤 방식으로 마셨을까?' 하는 질문들을 굳이 하지 않아도 알아서 알려준다. 친절하고 따뜻한 이야기꾼이 말이다.

 

커피와 관련된 문학인과 예술인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는 것도 재밌는 일이다. 아직까지 기억 나는 이야기 하나가 있다.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이제 밀다원의 시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밀다원이라는 작은 다방은 소설 속의 공간으로만 남아 있다. 지금 어디에서 다시 밀다원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그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지 않다.

 

부산의 광복동 네거리에는 크리스마스를 장식하는 상가의 휘황한 불빛만이 가득하고, 다방 밀다원의 자취는 남아 있지도 않다.

 

국제시장에서 멀지 않은 이 거리는 가장 번화한 쇼핑가로 변모했다.

 

거리에 밀려드는 사람들 가운데 다방 밀다원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밀다원은 그렇게 시간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 #밀다원 시대 中


 

잠깐 이 글을 소개하는 이유를 적어보자면, 사실 우리에게는 사라지는 것을 기억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그저 '기억'에만 의존하기에는 너무 많은 정보들이 우리에게 주어져있다. 우리는 받아들인 것을 정제하는 것보다 새롭게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것에만 익숙하다. 하나의 유행이 지나면 그것이 언제 있었냐는 듯, 쉽게 잊고 만다는 것이다. 우린 휘발성이 빠른 시대를 살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 시대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이 아닌가 싶었다. 너무 빠른 속도로 모든 것들이 지나간다. 기억하며 남겨두는 것이 사치라 여겨질 정도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도태되는 시대다. 개인의 취향마저 시대 상황에 좌지우지 되어야 하는 현재 상황이, 오래된 것을 추구하면 뒤처진 사람으로 취급되어야 하는 지금 상황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과 예술은 기록의 역사가 아닐까 싶었다. 문학과 예술은 현재를 기록해 지금 이 순간을 남긴다.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져도 문학과 예술은 끝까지 남아 사라진 무언가를 기억한다. 과거를 기억하고 추억하며 남겨둔다.

 

반면 과학과 공학은 미래를 향한다. 현재를 넘어 미래를 기약하고자 한다. 더 나은 삶, 더 나은 미래를 바란다. 과학과 공학이 미래를 향한 의지라면, 문학과 예술은 과거를 위한 헌사다. 어쩌면 우리에겐 과거를 기억하려는 용기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조금 필요하지 않았나 싶었다.

 

그것이 이 책에 정이 가던 이유라면 이유겠다. 과거의 한 순간을 그 시대를 산 사람이 이야기 해주는 게, 내가 모르던 시대 상황을 누군가로부터 듣는 게, 이미 사라진 것을 누군가의 체험으로부터 조금씩 떠올려보는 게, 내겐 너무 만족스러운 일이었으니까. 그것이 특히 내가 완전히 몰랐던 커피와 관련된 것이라면 더더욱.

 

이 책은 에세이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작가의 시선으로 관찰한 커피 이야기들을 들어볼 수도 있다. 작가가 겪은 커피 관련 에피소드들, 작가의 취향이 묻어있는 카페, 작가가 아직까지 기억하는 장소 등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볼 수 있는 이야기들도 마련되어 있다.

 

나처럼 옛날 이야기, 내가 잘 모르는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커피를 잘 안다고 해서 이 책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의 시선은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만큼, 작가의 시선은 커피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여러분에게 큰 영감을 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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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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