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당신에게 커피란 무엇인가? - 커피 한잔 [도서]

글 입력 2022.01.26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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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살 적, 좋아했던 카페가 하나 있다. 시드니 중심에서 멀지 않은 작은 동네 리드컴에 있는 한인 카페.

 

카페 내부의 정겨운 원목 인테리어를 지나 큰 철문을 열면 자갈이 깔린 정원이 나온다. 뒤쪽에는 주인이 사용하다 만 부서진 조각상들과 각종 화분들이 질서 없이 늘어서 있었다.

 

어딘가 을씨년스러우면서도 넝쿨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거기에 특별할 것 없는 커피 한 잔과 담배 한 갑이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우리는 커피의 신맛이 어떻고 쓴맛이 어떻고 구별하기 보다 사실은 그저 '카페인' 이면 된다. 커피를 수혈한다는 말처럼 카페인은 사람들에게 활력을 준다.

 

커피 한 잔의 유무란 그날 하루의 기분을 기쁘게도 슬프게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에겐 절대적인 기호식품이 되어버린 커피. 작가는 이제 그것을 '문화'라고 불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고는 묻는다.

 

'나에게 커피란 무엇인가?'

 

1890년 대 고종 황제가 '가피차'를 즐겨 마셨던 시절부터, 서울의 명동 일대에 생긴 '끽다점'이라는 커피숍,  1910년 대 문학 속에 나온 다방에서 일어난 일들, 에티오피아에서 시작된 커피의 일대기, 커피에 관한 노래, 커피의 맛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다양한 커피 종류에 대한 설명, 작가 본인이 직접 다녔던 역사를 가진 카페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작가는 잊힌 과거를 생생하게 그리고 실감 나게 커피와 함께 이야기해 준다. 커피를 마시던 그 때 그 시절의 예술가들. 그때 그 시절의 거리, 공간, 냄새, 소리. 그들에게 커피 한 잔이 주었던 의미. 그제야 책의 제목이 어째서 커피 한 잔이었는지를 깨닫는다.

 

아, 사람마다 가지는 커피 한 잔의 의미가 정말 다르구나.

 

 

 

세 잔의 커피: 첫 번째 잔, 문화


 

책은 그 커피 한 잔을 세 장으로 나뉘어 이야기했다. 커피의 문화, 문학 속의 커피, 그리고 커피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

 

커피에 관한 참 재미난 이야기들이 곳곳에 있어 읽는데 부담이 없었다. 글씨의 색깔이 커피 색인 점은 책의 분위기를 뜨듯하게 해준다.

 

작가가 처음에 커피의 맛을 본 건 중학생 시절 미군이 던지던 군용 박스 덕분이었다. 그 안에는 비스킷, 초콜릿, 껌 그리고 아무 글씨도 쓰여 있지 않은 작은 봉지가 하나 있었는데 그 시절엔 아무도 그것의 정체를 몰랐지만 작가가 어른이 되고 처음 커피를 마셨을 때 비로소 그것이 커피 인 줄 알았다고 한다.

 

중학생 시절, 한참 친구들이 카페에 빠질 때 아메리카노를 싫어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아직은 너무 쓰다면서. 나는 작가와 마찬가지로 그 한없이 쓴 음료 속에서 희미한 신맛과 단맛을 느꼈고 그게 참 좋았던 기억이 있다. 이제 주변 친구들은 커피를 물 마시듯 마시지만 나는 카페인 부작용이 심해 잘 마시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조금씩 그 맛을 음미하곤 한다.

 

 

 

세 잔의 커피: 두 번째 잔, 문학


 

책을 읽다가 <날개>로 익숙한 작가 이상이 다방을 운영했던 것을 처음 알았다. 그 이름하여 '다방 제비'. 흰 벽에 이상의 자화상만 걸린 다방은 잘되지 않았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 나오는 세 번의 다방 산책. 책은 틈틈이 그 다방의 삽화를 삽입하여 그때 그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었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명암이 공존할 때 살았던 문인들. 하필이면 커피가 막 유행했던 시기와 겹쳐 책에는 일제강점기 시절 혹은 일본에 대한 묘사가 많았다. 그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살았던 예술가들. 그들에게는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모인 다방이 따스히 위로받는 공간이었을 테다.

 

이상 또한 건축학과를 전공했다가 다방을 통해 만난 문인들의 영향을 받아 글을 쓰기 시작했고 어느 한 골목에 있던 '청동다방'에서는 공초 오상순이 만든 '낙서첩'에서 다양한 예술가들의 낙서들을 볼 수 있었다.

 

이러니 커피와 관련된 문학 얘기를 하면은 끝도 없는 것이다.

 

 

 

세 잔의 커피: 세 번째 잔, 공간


 

커피 한잔하실래요?가 단순히 커피를 함께 마시는 행위를 넘어 안부의 인사가 된 지금 카페라는 공간도 그저 잠깐 머물다 가는 곳은 아니다. 단순히 커피만 파는 카페부터 인테리어부터 메뉴까지 하나하나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카페도 있다.

 

나는 그런 카페를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아무 프랜차이즈 카페나 가는 것은 썩 즐기지 않는다. 프랜차이즈 카페를 갈 때의 목적은 공부를 한다거나, 지원서를 쓸 때 정도다. 한마디로 사색하지 않는 행위들을 할 때면 프랜차이즈 카페를 간다.

 

그런 곳에서는 사색할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시끄러운 음악소리는 좋아하지만 그곳엔 어떤 취향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 이야기도 없다. 그러나 손 떼 묻은 카페에는 이야기가 있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작가가 여행한 다양한 나라의 오래된 카페에 대해 묘사한다. 카페의 역사, 카페의 분위기, 카페를 가게 된 계기, 커피의 맛, 그리고 그 카페에 얽힌 이야기들.

 

긴자의 오래된 카페부터 로마의 250년 된 카페 그레코까지. 시국이 시국이지만 이 카페들을 보기 위해서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생생하고 자세한 묘사 덕분에 마치 직접 갔다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길을 걸으면 곳곳에 보이는 카페에서 사람들과 함께 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저곳은 함께 있으면 재밌는 친구와 갔었지', '저곳은 에스프레소가 정말 맛있었는데', '아, 저곳은 창가 자리가 참 좋아' 같은. 헤르만 헤세는 만년필 따위에 정을 주었었다. 사람이란 어차피 지나가는 것이기에. 그래서 카페라는 공간이 소중하다. 사람은 지나갔지만 그 공간에는 추억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커피는 사랑하는 사람과 카페에서 마주 보며 마실 때 가장 달콤하지만, 혼자 다방 구석에 앉아 마셔도 그리 씁쓸하지 않다.'
 

 

누군가와 커피를 마시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카페에 앉아 커피를 시켜 한 입 마시는 순간 마법 같은 대화가 펼쳐진다. 오로지 서로에게 집중하는 시간. 그날 시킨 커피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가끔은 들려오는 노래에 몸을 흔들기도, 무슨 노래가 흘러나오는지 모를 정도로 열띤 토론을 하기도 한다. 처음 뜨겁고 향긋했던 커피는 없는데도 식은 커피조차 맛있다.

 

나는 상념에 잠기고 싶을 때 혼자 커피를 마신다. 머릿속에 돌아다니는 여러 가지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 커피는 나에게 사색하는 공간을 준다.

 

커피 한 잔이란 이렇게 다른 의미를 가진다. 작가가 '커피는 문화다'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커피는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커피 한 잔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면 나 또한 기꺼이 비싼 가격을 지불할 것이다.

 

커피를 사랑한다면, 이 책을 통해 커피 한 잔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희망한다.

 

 

커피한잔_평면표지.jpg

 

 

[박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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