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와인에 스며든 인생까지 음미해볼래 - 인생 와인 [도서]

한 병의 와인에는 세상 어떤 책보다도 많은 철학이 담겨 있다.
글 입력 2022.01.25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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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진정으로 술 마시기에 진심인 애주가이다. 소주, 맥주, 막걸리, 와인, 위스키 등등 딱히 가리는 술 종류도 없다. 다만 술 종류에 따라 마시는 방법은 조금씩 다르다. 요컨대, 소주는 단 세 손가락으로 잡히는 작은 잔을 한 번에 들이키는 맛이 있고, 탄산을 꺼리기에 맥주는 아주 조금씩 쪼개 마시며, 막걸리는 사발 그릇에 가득 담아 한 모금 훅 들이킨다.

 

반면 와인과 위스키는 조금 다르다. 이들의 첫 모금은 바로 삼키지 않고 잠시 입에 머금는 습관이 있다. 혀끝에 술이 스며들어 그것의 맛과 향이 올라오기를 잠시 기다린다. 술 자체가 가진 특유의 향과 씁쓸한 맛을 진득하게 느껴보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목뒤로 넘긴다. 시간이 지날수록 술의 기운이 차곡차곡 쌓이고 어느새 몸 전체에 따스운 기운이 스멀스멀 차오른다. 그래서 좋아한다. 술의 맛과 향을 아주 진득하게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술이기 때문에.

 

맛과 향, 거기에 ‘술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더하면 어떨까? 더 맛있을까?

 

그냥 와인을 마셔도 좋지만, 와인을 마시며 그와 연관된 이야기들과 그 이야기들을 통해 얻은 삶의 통찰을 함께 풀어나간다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으로 세상에 나온 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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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 많고 사람도 많았던 부자에서 한순간 큰 실패에 좌절하고 있을 때 와인을 만났다. 삶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와인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와인이 탄생하는 순간부터 최고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인내의 시간을 견뎌내는 사람들, 그리고 오롯이 와인이 전해주는 이야기까지. 그런 와인을 즐기며 어느 때는 유쾌한 즐거움을 느끼고, 어느 때는 감미로운 아름다움을, 또 어느 때는 진한 감동을 받았다.


- 프롤로그 중에서

 

 

돈으로 울고 웃다 운명적으로 와인을 만나며 느낀 진득한 감동과 함께 삶의 통찰을 담아낸 책, 크리스 배의 <인생 와인>이다. 보통 와인의 맛과 향을 느끼고 그 와인과 잘 어울리는 음식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술을 마시는 행위 자체를 즐기던 나에게 와인을 만든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또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했다.

 

*

 

책 <인생 와인>은 ‘돈’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총 5가지 챕터로 구성되었다.

 

 

Chapter 1. 돈을 벌고 싶을 때 마시는 와인

Chapter 2. 돈을 벌 때 마시는 와인

Chapter 3. 돈이 궁할 때 마시는 와인

Chapter 4. 돈을 벌고 나서 마시는 와인

Chapter 5. 돈이 되는 와인

 

 

각 챕터마다 주제가 있고, 그 주제에 맞는 와인 4~5병이 소개가 된다.

 

처음에는 ‘움브리아 지역’ ‘토스카나 지역’ ‘메를로 품종’ ‘카베르네 프랑 품종’ ‘산지오베제 품종’ ‘블렌딩’ ‘병입’ 와인 이름도 어려운데 와인을 만드는 포도의 품종까지 새롭게 접하려니 다소 낯설고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이런 단어들 때문에 책을 읽다가도 멈칫하게 되는 순간들도 꽤 있었다.

 

그러나 낯선 느낌도 잠시, 어색한 용어에서 느껴지는 어색함을 풀어준 것은 다름 아닌 저마다 다양한 환경과 포도를 가지고 만든 사람들의 사연이었다. 포도에도 이렇게나 다양한 품종이 있구나 인식하고, 와인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설명이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걸 보면 ‘와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참 쉽지 않구나, 정성스러운 과정이구나’라는 점을 느끼는 것이다.

 

이때 이야기 전개 구조가 특이하다. 두 번째 챕터에서 이탈리아 와인 <산 지오반니>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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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2020년 올림픽(실제로는 작년에 열린)에서 이탈리아 육상 대표팀의 선전소식으로 시작된다. 그러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서로 다르거나 이질적인 존재들 간의 협업을 통해 성과를 만들어낸 이탈리아 육상협회를 볼 때마다 저는 꼭 마시고 싶은 와인이 한 병 있습니다.” (p.140)
 

 

그러고는 ‘산 지오바니’ 와인 제조에 얽힌 역사가 펼쳐진다. 각각의 포도 품종의 개성을 살리면서 서로 간의 장점을 살리고 함께 조화를 이뤄 더 나은 맛을 위해 정성을 기울였는지, 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 쏟은 정성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끝에서, 저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산 지오반니’ 와인을 마시면 좋을지 추천의 말도 잊지 않는다.

 

 

“각자 최상의 맛으로 익어간 뒤 병에서 만나 다시 조화를 이뤄낸 각각의 품종 포도송이들처럼 우리도 잘 협조해 산 지오바니 같은 걸작 한번 만들어보자”고 손을 내밀어보는 겁니다. 괜찮겠죠? (p.147)

 

 

그럼 정말 저자의 말대로 그런 순간에 '산 지오바니' 와인을 마시고 싶어진다.

 

해당 책에는 이러한 구조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이어진다. 어떤 상황에서든 저자는 그 상황에 맞닿아 있는 사연을 가진 와인을 떠올린다.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누군가의 인생 이야기가 위대한 와인의 탄생과도 연관되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에게 관련된 삶의 통찰을 전해준다. 조금은 뜬금없어 보이는 이 연결고리가 결국은 '사람 사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와인과 인생은 다르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게 만든다.


 
“와인과 인생은 다르지 않다. 좋은 땅을 일구고, 정성껏 포도나무를 키워내고, 최적의 순간에 포도를 수확하여, 발효와 숙성의 시간을 거쳐 완성되는 와인. 인생도 와인처럼 일순간에 모든 것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나를 알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인내의 시간을 거쳐야 우리도 실패하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와인과 인생 이야기를 엮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와인이 우리 눈앞 책상 위에 오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의 노력과 정성, 그리고 복잡한 제작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마치 인생이 그렇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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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책은 와인 애호가가 와인에 대한 지식을 얻기에는 아쉬울 수 있다. 어떻게 와인이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정보 전달에 집중한다기보다는 ‘어떤 사람이 어쩌다 와인을 만들게 되었는지’, 즉 누군가의 인생 안에 ‘와인’이 스며들게 된 사연을 하나둘씩 들려주는 느낌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 사람이 정성으로 빚어 일구어낸 와인의 맛은 어떨지 자연스럽게 궁금해진다. 반대로 소개하는 와인을 마실 때는 자연스럽게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이제부터 와인을 마실 때 그에 스며든 인생까지 음미하면 더 깊고 풍성하게 감각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애주가로서 와인을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하나 생긴 것 같아 반갑다. 아무래도 와인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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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송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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