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멸망 앞에서 가장 의연한 삶 -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

글 입력 2022.01.18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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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묵묵히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주위를 둘러보면 어째 멸망을 앞두고 일말의 인간성마저 파멸시키는 자극적인 이야기만 가득하다. 갑자기 운석이 떨어지거나 하는 큰 자연 재해가 닥치면 대체로 사회 규범은 무너지고 혼란에 빠진 사람들은 자포자기한 심정에 몸을 맡겨 폭력적인 행동을 일삼는다. 오직 힘에 의한 원초적인 권력이 지배하는 세계. 인류는 동물이나 곤충과 저 스스로의 존재는 다르다며 선을 그어왔지만 막상 문명이 무너지고 나서 생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단순한 힘 뿐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자극은 더 큰 자극을 필요로 한다. 이런 이야기들에 노출된, 감각을 만족시킬 더 자극적인 것들을 추구하게 된 우리 사회의 모습은 때때로 피로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발발하고 영화 속에서나 보던 장면이 실제로 펼쳐졌다. 손쓸 새 없이 퍼져나가는 감염병의 공포에 숨통이 조인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 시기를 이겨내려 애썼다. 지금이야 방역 시스템이 안정화되었다지만 사실 초반에 나타났던 혼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갑작스런 국경 폐쇄, 나아가 확진자 급증 지역에 대한 이동 제한, 확진자에 대한 차별 등 예상치 못한 감염병의 재난 속에서 모두가 우왕좌왕했다. 시간이 흐르고 코로나력 약 3년째에 이른 지금. 사회의 많은 부분이 정상화되었으나 코로나 전과 후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많은 이들이 지향하는 삶의 가치가 달라진 것이다. 고된 재난 상황이 장기전으로 이어지자 사람들은 더욱 '개인적'이고 '작은' 일상의 가치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재난 상황을 맞닥뜨려보니 오히려 자극적이고 고통스러운 이야기에 질린 것일까, 수많은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가 큰 힘을 갖게 됐다. 한편으로는 코로나로 인해 죽음에 대해 새로이 생각해보게 된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당연하고 평범한 삶이 이토록 소중한 줄 누가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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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소설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를 읽었고, 바로 이 당연하고 평범한 삶, 그리고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게 하는 이유와 가치에 대해 돌이켜보게 됐다. 책은 소혹성이 지구에 충돌해 멸망하기 직전의 상황을 설명한다. 소위 '인생의 실패자'라고 일컬어지는 이들이 멸망을 계기로 오히려 혐오했던 자신의 삶과 새로이 마주하는 이야기다. 현실적이지만 은근한 따스함과 희망이 있다. 최근에야 이런 방향성의 이야기가 많이 나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 법 싶지만 유독 이 책에 끌린 이유는 작가 나기라 유 때문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유로, 일본에서 작년 진행된 서브컬처 장르의 <아름다운 그>라는 드라마 소식을 접한 적이 있는데 원작 소설 작가가 나기라 유였다. 소설이 나왔을 당시에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고 했다. 원작 자체는 살짝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 지금의 감성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스쳐지나가듯 접했음에도 인물 설정과 대사를 전개하는 방식, 문장이 담백하면서도 낭만 있게 다가왔었다.

 

음지에서 활동하던 나기라 유 작가는 10년차인 2017년부터 일반 문예소설을 출간하며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 바 있다. 2019년 출간한 <유랑의 달>은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 최종 후보에 오르기까지 했으며 2020년에는 서점대상을 수상해 문학 작가로서도 인정받게 됐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성을 심도 있게 다루어온 장르 작가답게 섬세한 감정 묘사가 두드러지며, '당사자들만이 관계의 진실을 쥐고 있다'는 방향성을 토대로 인간사의 본질을 캐내려고 하는 작가 의식이 매력적이다. 신작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는 일본 최대 서점 키노쿠니야 직원들이 선정한 최고의 작품 1위에도 올랐다. 문학계에 정식 데뷔한 시점을 생각하면 말도 안될 정도로 엄청난 호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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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소혹성이 지구에 충돌해 곧 이 세계가 멸망한다는 이야기를 갑자기 전달받은 4명의 이야기를 4장으로 구성해 이어간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가는 1장의 주인공은 학교 폭력 피해자로, 세계가 멸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끔찍하게 슬프지만은 않다.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비로소 가해자들과 동등한 위치가 되었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향해 극단적인 복수심과 폭력성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다. 갑작스레 닥친 생의 마지막 시점, 오히려 자기 자신을 사랑해보고자 한다. 그저 짝사랑해오던 소녀를 위해 아주 작은 용기를 내보기로 한 것이다. 죽기 전 도쿄를 가보고 싶어하는 그녀를 지키려 조심히 따라가본다. 소심한 성정이 드라마틱하게 바뀐 것은 아니기에 그저 따라갈 뿐이지만 그 과정을 거쳐 주인공은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독립적인 개체로 거듭난다. 멸망을 앞두고 한 단계 성장한 것이다.

 

이 외에도 살인 청부를 받아들인 깡패, 후회감에 몸서리치는 미혼모, 거식증에 걸려버린 유명 가수의 이야기가 함께 엮여나간다. 그리고 접점이 없을 것 같은 이들의 인연이 멸망 앞에서 맞물리며 삶의 마지막을 함께 나눈다. 이미 스스로 멸망한 삶을 살고 있었던 이들의 예상치 못한 자아 극복기, 그리고 성장기다. 어쩌면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세상의 끝에서 그 누구보다 편한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자신의 삶을 증오하고 절망하는 데 무뎌진 이들이어서였다. 하지만 오히려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던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세계의 끝을 목도하고 무너진 것과는 달리, 자기혐오로 점철돼 미래란 절망일 뿐이었던 이들은 멸망에 빠르게 적응한다. 역설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소소한 시간에서 행복을 누리고자 한 것이다.

 

끝을 앞두고 자신을 보듬으며 성장하는 모습이 잔잔한 감동을 주면서도 사실 이런 모습이 마냥 기쁘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마음 아픈 일이다. 어쩌면 단순히 지금까지의 생에 지쳐 있었기 때문에 삶에 대한 미련이 없다는 것, 어쩌면 그저 이 힘든 삶이 끝나기만을 바라왔다는 것. 멸망 앞에서 의연할 수 있는 힘이 이 생을 통틀어 절망에 무뎌진 것에 대한 보상이라면 난 차라리 끔찍한 슬픔에 사로잡혀 생을 마무리하는 쪽을 택하겠다. 물론 이런 생각 역시 굉장히 교만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생은 선택할 수 없다. 이들은 지금까지 이어진 자신의 삶에서 무엇 하나 제대로 선택할 수 없었다. 주어진 절망에 너무 깊이 침몰하지 않기만을 바라며 수면 아래에서 코만 내어놓고 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세계가 멸망하는 정도의 계기가 주어지고서야 실패한 과거를 뒤로 하고 성장할 수 있었으며 자신을 조금쯤 사랑할 수 있었다. 이들에게 끝은 시작이었다.

 

삶을 사랑하게 되는 책이었다. 주인공들의 무지막지한 절망을 보고 지금 나의 행복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과 동일시하는 마음으로 이입하며 나의 마지막 역시 의연하고 뜻깊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읽게 된다. 삶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어 좋았다. 물론 일본 소설 특유의 감성이 있긴 있지만 담백하고 부드럽게 흘러간다. 책을 고르는 운이 없었는지 일본 소설 몇몇을 읽을 때마다 낭만을 조장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는데,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는 탄탄한 감정선과 현실적인 전개로 인해 그런 부분이 상쇄되는 듯했다. 한편 전작 <유랑의 달>은 설정상 다소 범죄 미화의 여지가 있지 않나 싶었는데,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는 전작보다 그러한 뉘앙스는 적었으나 힘겨운 현실적 배경이 나타나기에 조심히 읽는 편이 좋겠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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