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새 옷 입은 박물관이 다시 문을 열기까지 [영화]

글 입력 2022.01.1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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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규모 장기 프로젝트 팀플에서 일에 차질을 준 사람은 누구일까?

 

1. 참신한 아이디어로 계획서를 제출해 프로젝트 건축가로 채택되었지만, 외부의 조건으로 기존 계획서를 구현할 수 없게 된 건축가 안토니오 크루즈(Antonio Cruz)와 안토니오 오르티즈(Antonio Ortiz)

 

2. 평소 자전거를 이용해 다니는 출퇴근 도로가 타의로 막히게 되자 이의 제기한 시민 겸 도로 보존 위원회 대표 마욜라나 더 랑어(Marjolein de Lange)

 

3. 소더비 경매를 통해 미술사적 가치를 지닌 작품을 구매하려 했으나 제한된 세금으로 미술품 구매를 포기한 17세기 담당 수석 큐레이터 타코 디비츠(Taco Dibbits)

 

4. 박물관 재개관 일정이 무기한 연기되어 수장고에 보관된 작품을 관람객에게 보여주지 못한 아시아관 큐레이터 멘노 피츠키(Menno Fitski)

 

5. 여러 가지 제약으로 기한 내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해 고심 끝에 사퇴한 레이크스 박물관 관장 로날드 더 레우(Ronald De Leeuw)

 

6. 계속해서 변경되고 수정되는 계획에 건축 관련 업무를 제때 진행할 수 없었던 박물관 관리인 레오 판 헤르멘(Leo Van Gerven)

 

7. 6년째 작업에 매달리며 각 층의 도면과 투사도는 거의 완성했으나 상부에서 내려오는 지시에 따라 업무를 계속 변경하는 수석 실내 건축가 마를린 호만(Marleen Homan)

 

8. 여전히 발에 걸리는 허가 문제 때문에 원했던 계획을 전혀 실현할 수 없었던 후임으로 들어온 새 박물관 관장 빔 페이베스(Wim Pijb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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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카 후겐데이크(Oeke HoogenDijk)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레이크스 박물관의 새 단장(The New Rijks Museum Years of Metamorphosis)〉은 2003년 재정비를 위해 문을 닫은 레이크스 박물관(=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이 재개관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더 다양하고 많은 방문객이 원활하게 문화유산을 접할 수 있도록 박물관 정비 계획을 세웠고 초기 예산으로 2억 2백만 유로, 한화로 약 2,748억에 달하는 금액을 책정했다. 레이크스 박물관 재정비 기간은 5년을 예상했으나 무려 10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가 되어 버리고 만다.

 

암스테르담 도시의 문화적인 얼굴로써 명실상부한 국립 박물관으로 거듭나려던 레이크스 박물관의 재정비 계획은 가지각색의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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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박물관 관장 빔 페이베스는 "이 나라가 가끔 민주주의 정신병동 같을 때가 있다."라는 언급을 한다. 이 대사의 내막에는 재개관이라는 하나의 동일한 목표를 두고 있음에도 사건과 진행에 있어 얽힌 개개인의 입장과 제안을 모두 고려하는 부분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관장의 뉘앙스가 담겨 있다. 일이 더디게 진행되거나 세워둔 계획이 무산되더라도 소수의 의견이 전부 수용되는 장면은 빨리빨리 일 처리가 몸에 배어 있는 한국인의 시각으로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이 글의 가장 위에서 나열한 것처럼 해당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레이크스 박물관과 다양한 이유로 얽혀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제 할 일을 하고자 노력했다. 특히 극 중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는 이야기 중 박물관 측과 자전거를 이용하는 시민 사이의 충돌이 흥미롭다.

 

레이크스 박물관의 경우 도보와 자전거 도로가 관통하는 독특한 건물 구조를 하고 있다. 재정비 초기 과정 중 이 도로의 중간을 끊어 지상과 지하를 연결해 박물관 내부의 넓은 광장을 짓고자 했을 때 자전거 이용자 조합의 반발로 이 계획은 무산되었다.

 

몇 년 후 박물관 내부 공사를 하며 도로를 임시 폐쇄했을 때에도 자전거를 이용하는 시민 사회는 또다시 이 도로를 막지 않고 공사하라며 도로 개방을 요구했다. 자전거 조합 이외에도 암스테르담 자치구 의회, 환경 미화 위원회, 환경청, 정부 소속 건축사 등 각종 단체가 제안하는 이견들은 박물관 측이 세웠던 재개장 날짜를 뒤로 미루는 요인이 되었다.

 

이처럼 박물관 재정비 과정에 연계된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자신의 의견을 어필하는 점이 매우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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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큐멘터리는 황량한 뼈대로 남은 박물관의 공간이 점차 과거의 웅장하고 화려했던 공간으로 회복하는 과정을 가감 없이 포착하려는 제작 의도가 담겨 있다. 그리고 재정비 과정에 열정과 헌신을 쏟아부은 사람들을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묘사하며 이들이 맞닥뜨린 재정적인 어려움이나 관료주의, 크고 작은 이슈들을 처리하는 방식을 매우 담백하게 보여준다.

 

촬영분 400시간에 달하는 분량을 1시간 30분의 러닝타임으로 압축하기 위해 다양한 이야기와 많은 장면을 걷어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나름의 기승전결을 갖추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특히 사람이 살아가는 일상을 담아내다 보니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각각의 장면에서 연출되는 사람 냄새 가득한 극사실적인 모습에 보는 내내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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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론적으로 2013년 암스테르담 레이크스 박물관은 재정비 끝에 다시 문을 열게 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이 떠오르면서 10여 년 간의 긴 대장정 끝에 레이크스 박물관 재개관 장면은 러닝 타임 내내 답답했던 묵은 체증을 증발시키며 묘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레이크스 박물관의 재개관 과정을 지켜보면서 다수의 인원이 모여 장기간의 팀플을 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대의를 위해 일면에서는 희생을 감안해야 한다는 맥락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음을 반성하게 했다.

 

이 영화는 작은 조각들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있음을 그리고 이러한 집단이 있기에 사회가 존재하며 굴러간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손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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