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를 아는 사람, 너를 닮은 사람 [문화 전반]

MBTI와 가면의 상관관계
글 입력 2022.01.1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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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가 도대체 뭐길래 혈액형보다 더 신뢰해?(박문치 with 박문치 유니버스, [MBTI])” 동감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자신을 소개하며 언급하게 되는 그것은 어느새 우리네 문화가 되었다. 액면 그대로 제기한 물음에 대한 답은 그것의 이름에 있다.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는 마이어스(Myers)와 브릭스(Briggs)가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Carl Jung)의 연구를 토대로 개발한 성격 유형 검사 도구라고 한다. 유사과학인 혈액형 성격설보다 체계적이고 타당하다는 그것에 대한 평가는 나도 그렇고 너도 그러하냐며 같은 취향을 찾아 생동하는 이들에게 근거의 종착지가 된다.

 

 

 

 

“좋은 거(?) 나오게 눌러야지.” MBC <놀면 뭐하니?> 프로젝트 그룹 ‘싹쓰리’의 린다G(이효리 분)의 한 마디가 성격 유형 검사의 역기능을 시사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함께 살아가기 적합한 사람을 흔히 ‘좋은 성격의 소유자’라고 일컫는다. 상냥하고 활발하며 때론 융통성을 발휘하는 사람들은 어디에선가 볼 법하지만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선호의 기준은 상대적이고 모두가 과녁의 정중앙에 놓일 수 없음을 잊기 때문이 아닐는지. 구직 시장에서 MBTI를 묻는 현상이 나타났다. 업무에 따라 능률을 향상시킬 수 있는 군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인성검사가 매우 중요한 직업을 제외하고는 성격이 당락을 결정하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을 자신 있게 드러내기란 어렵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황동규, <즐거운 편지>).” 자신을 온전히 안다고 자신하지 못하므로 타인을 알아가는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닐까. 진실했다는 전제하에. 필자는 두 번의 MBTI 검사를 수개월을 간격으로 행했고 두 개의 결과를 마주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네 개의 문자로 통달할 수 없음에도 세 번째 검사를 목전에 두려 했기에 민망했다. 다른 이에게 뭐라 말할까 고민했다. 구구절절 설명하기를 반복하다 편의에 따라 J가 되고 싶은 날엔 그렇게, P로 살고 싶은 날엔 그렇게 대답했다. 타인도 성격의 가면을 쓸 수 있으므로 더는 개의치 않기로 했다.

   

 

- 이렇게 불을 끄고 앉아 있으니 밤이 좋군. 대낮은 얼굴이 너무 따가워서…… 누구나 결국은 그렇게 되는 거지만 사실 사람들이 얼굴 가득히 그 엄청난 대낮의 햇빛을 스스럼없이 견디어 낼 수 있도록 잘 단련이 되고 있는 건 다행한 일이지.

- 하지만 그건 다행스럽다고만은 할 수가 없다면…… 그런 식으로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의 가면을 든든하게 단련시켜 가고 있거든. 눈물을 흘릴 수가 없어…….

- 가면이 우는 걸 보았을까. 물론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지. 가면의 눈물은 속으로만 흐르게 마련이거든.

명식은 역시 취기가 좀 숨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혼잣말처럼 띄엄띄엄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앞뒤가 닿는 소리만 추려 보면 대강 그런 식이었다. 지연이 보아 온 대로였다. 대낮을 다니는 맨얼굴에서 가면을 느끼는 대신, 가발과 콧수염으로 변장을 하고 있는 당장의 자신에 대해서는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있는 기미였다. 그리고, 그래서 명식은 그러한 변장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고뇌를 가장 정직하게 안을 수 있는 듯한 태도였다.

 

-이청준, 『가면의 꿈』

 

 

전광석화처럼 짧은 기간 동안 생활상이 변했기 때문일까. 그저 우연일지도 모르겠지만 MBTI가 화제가 된 시기와 팬데믹은 맞물려 있다.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에 화장을 덧칠하지 않아 자못 내게도, 상대에게도 솔직해졌다고 느낄 만하다. 그러나 진심으로 정직할 수 있을까. 인터넷상의 익명이 악플을 쏟아내고 웃는 낯으로 실명의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해보자. 아무개의 진위를 밝히려 드는 일이 수고스럽지만 필요하기에 꽤 오래도록 우리는 번잡스럽게 살아왔다. 갈수록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과 감염병으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삶에 익숙해져 좀 더 빨리 상대를 알고 싶다는 순수한 동기와 마스크에 숨어 타인을 속일 수 있다는 잇속이 엉켜 혼란은 가중된다.

   

어느덧 장수 예능 프로그램이 된 MBC <복면가왕>을 향한 시청자의 수요는 이청준의 작품 속 명식처럼 일상에서 본모습을 내보이지 못해 일어난 염증을 치유하고 싶다는 욕구와 등가이다. 복면을 쓴 연예인이 소위 반전매력을 선사함으로써 받는 박수에 시청자는 자신의 진면목 또한 타인의 호감을 이끌어 낼 수 있으련만 하는 심사를 띄워 보낸다. 의의는 가면을 쓰는 것이 아닌 벗는 것에 있다. 2022년을 맞아 선보인 JTBC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가면토론회>의 패널 중 한 명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로 알려졌다. 발언을 토대로 인물을 유추한 시청자와 기자들의 물음에 그는 출연 사실을 부인하진 않았다. 다시금 돌이켜볼 것이다. 내가 보인 행동이 MBTI의 선입견을 깰 수 있을지, 그간 지나온 궤적들이 논리의 합당한 방점으로 작용할지.

 

*

 

‘우리’라는 대명사는 나를 아는 사람은 너이며 그런 너를 닮은 사람은 나일 것이라는 지각에서 사용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지각을 자각하는지 각자마다 다르겠다만 MBTI로 상대와의 관계를 예단하고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름을 느끼는 가운데에서도 불투명한 가면과 가공된 이야기들로 우리는 지속된다. 쉬지 않고 이어지기에 오늘의 소재는 당대를 상징하는 유행이라기보다는 불가피한 호소가 아닐까, 모두가 수긍하는 우리는 아득히 먼 곳에 있으므로. 내가 상대와 가깝고도 멀어진 이유를 과학에 비추고 진심 어린 토로는 가면으로 감추니 나는 어디에도 없다.

 

 

 

윤하정.jpg

 

 

[윤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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