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끝이라서 찾게 된 희망 -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

글 입력 2022.01.1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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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구 종말. 영화와 같은 미디어에서 상당히 자주 쓰이는 소재. 살아있는 현 인류가 겪어본 적이 없기에 미지의 영역인 종말에 대한 사람들의 상상이 참 다양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이야기는 멸망의 순간에 인류를 구하러 와주는 히어로 이야기, 또는 이미 망한 지구에서 일어나는 상당히 암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을 그려낸다.


그런데 이와는 다르게 진행되는 이야기가 있다.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는 모두가 평등한 종말을 맞이한다. 결말에 가서 우연히 소행성이 지구를 빗겨나가게 된다든지, 갑작스런 영웅의 출현으로 인류가 모두 살게 된다든지 그런 내용은 없다. 그렇다고 암울하거나 우울하지는 않다.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절망 속에서 작은 희망 하나로 오히려 위안을 받는다.

  

다만 일본의 흔한 클리셰라고 해야할까? 그다지 잘나지 않은 주인공이 미녀를 얻게 된다거나 하는 내용은 조금 진부했지만 말이다.

 

 


2


 

그저 살집이 조금 붙어 있고, 운동을 조금 못할 뿐인 평범하기 그지 없는 학생인 유키 에나. 하지만 참 아이러니하게도 약육강식 사회 축소판 학교에서는 평범함이란 약자의 특성에 해당된다.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에나는 속으로 '지구 멸망'을 조심스럽게 꿈꾼다.


이 이야기를 처음으로 시작하여 가정 폭력으로 밑바닥 시궁창 인생을 살아온 메지카라 신지, 홀몸으로 에나를 키운 시즈카, 그리고 최정점에서 추락하는 일만 남은 가수 Loco까지. 서로를 둘러싼 인물들의 시점으로 각각의 챕터가 진행된다.


다들 기구한 삶이었고, 싫었다. 괴롭힘 당하고, 어렸을 때 학대를 당하고,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해주지 못해 그저 후회만 가득하고, 돈은 많지만 마음이 공허했다. 직접적으로 '지구야 멸망해라' 라고 언급한 사람은 에나 유키 뿐이었지만, 사실상 무의식으로 이러한 삶이 끝나기를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란 참으로 모순된 존재다. 멸망하기를 바라고 있었으면서 막상 그러한 시간이 다가오게 되면 다시 살고 싶어지고, 하고 싶어진게 생기게 된다. 꼭 청개구리 마냥.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각자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한데 모이게 되고, 신기하게도 그렇게 모인 사람들끼리 서로의 공허함을 채워주게 된다. 이런걸 동병상련이라고 하는 걸까. 그렇게 그들은 종말의 바로 앞에서 소중함을 느끼게 되고, 안도하게 된다.



올바르고 평화로운 세상에서 가장 원했고 가장 증오했던 꿈이 모든 것이 미쳐버린 세상 속에서 겨우 뒤섞여서 하나가 되었다. 신이 창조한 세상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꿈이 신이 망가뜨리려는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말았다. 신이라고 했나, 당신 정말 모순 덩어리야. - p.286
 


 

3


 

지구 종말, 인류 멸망. 나 혼자만이 아니라 그냥 아예 모든 사람이 다 같이 사라지는 것을 종종 생각한 적이 있다. 괴롭힘을 당했을 때나, 시험 성적이 나쁘게 나올 것임이 예상될 때라든지, 뭔가 억울하고 슬픈 일이 있는 순간에. 그럴때 나 혼자 사라지면 왠지 억울하지만, 나를 포함한 모든 인류가 함께 그러한다면 조금은 위안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말은 SNS에서도 농담반 진담반 수준으로 꽤나 자주 보인다. 그렇다고 그런 말을 한 사람의 정신이 이상하다고 쉽사리 판단하거나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지금의 힘든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는 말을 돌려 말하는 것일 뿐이니까.

 

책을 완독하고 마지막에 담긴 옮긴이의 말까지 모두 읽고나니 코 끝이 찡해졌다. 멸망이라는 단어와 상황에 부정적인 생각들로만 가득차 있었는데, 책 속의 인물들은 끝이라고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끝을 기회로 삼아 하고 싶은 걸 찾아 나섰다. 다만 이 행동력을 세상의 끝에서 발휘하게 된게 조금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비록 현 지구는 소설과 다르게 당장 한 달 뒤에 멸망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절박한 이 현실에서 우리에게 소중한게 무엇인지 새삼스럽게 다시 생각을 되뇌였다. 우울함 속에서 작은 위로와 위안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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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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