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 옷소매 붉은 끝동 [드라마]

그 이름들의 옷소매 붉은 끝동
글 입력 2022.01.15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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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궁녀를 사랑했다. 궁녀는 왕을 사랑했을까?


 

조선시대의 역사에는, 훌륭한 군주, ‘정조’가 있다. 한평생 백성을 위하여 일한 군주인 정조는, 한평생 ‘덕임’이라는 궁녀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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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일에 종영한 MBC 금토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은 요즘 지상파 드라마에서 도저히 보기 힘든 높은 시청률인 17.4%로 마지막회를 장식하였다.

 

필자 또한, TV 앞에 앉아 매번 본방사수를 할 정도로 깊게 빠져서 보았던 드라마이다. 특히나, 이 드라마에서 드러나는 ‘덕임’의 감정들의 ‘선’에 정말 깊이 매료되었다.

 

그렇다면,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는 덕임의 어떠한 감정들이 드러날까. 어떠한 감정들이 우리에게 설명되고 있을까.

 

 

 

다음에는, 옷깃만 스치고 지나가기를.


 

덕임은 어린 시절의 일로 인해, 궁에서 궁녀로서 삶을 살아간다. 조선시대의 궁녀는 말 그대로 ‘왕의 여자’이다. 왕을 위하여 무엇이든 해야 하고, 평생 다른 남자와 사랑하지 못하며, 평생 궁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만약 왕이 한 궁녀를 마음에 두어 승은을 내린다면, 궁녀는 선택지가 없다. 승은을 입어야 하고, 후궁이 되는 수밖에 없다. 처소에 머물며 왕이 자신을 찾아오기만을 기다리고, 후사를 낳기 위하여 애써야 하는 후궁. 후사를 낳지 못하면 궁궐 안에서는 투명인간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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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임은 매우 자유로운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궁녀로서 궁궐 안에서 일하면서도, 오라버니를 다시 만나기 위하여 책을 필사하고, 책을 동무들에게 읽어주며 틈틈이 돈을 모은다. 친해진 동무들과 함께 웃고 떠들기를 좋아하며, 궁궐에서 맡은 자신의 일도 똑부러지게 잘 해낸다. 그래서 덕임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덕임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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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였을까. 덕임의 주변에 있었던 정조도 덕임을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덕임 또한, 정조를 사랑하게 된다. 이 때부터 덕임은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고뇌를 시작해야 했을 것이다.

 

덕임은 드라마 속에서 여러 번, “궁녀이더라도 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들을 하며 살 거야.” 라는 내용의 말을 한다. 궁녀이더라도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조선시대의 궁녀의 삶에서 절대 성립할 수 없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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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의 삶을 살아가는 덕임은 궁녀에게 허락되지 않은, “자신의” 삶을 살아갈 아주 작은 자유를 갈망한다. 그저 하루, 하루 자신이 하고 싶은 소소한 일들을 하며 궁궐에서 맡은 일을 해 나가는 궁녀로서 살아가고 싶은 것뿐이었다. 하지만 궁녀에게는, 그 작은 자유조차 허락되지 않았었다.

 

‘궁녀’인 자신의 삶에서 성립할 수 없는 것인, 작은 ‘자유’를 성립하게 하고 싶어하는 덕임은, 왕인 ‘정조’와의 사랑을 어떻게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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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너무나 확실하다. 왕과 예쁜 사랑을 나누는 예쁜 장면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왕의 승은은 자신의 그 작은 자유를 ‘더’ 제한하는 것일 뿐이다.

 

덕임은 후에 정조의 곁에서 눈을 감을 때 다음에 자신을 또 만나게 된다면, 옷깃만 스치고 지나가 달라 간청한다. 왕을 원망하여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덕임 또한 왕을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조와 덕임의 사랑은 ‘궁녀’와 ‘왕’의 사랑이었기 때문에, 덕임의 삶을 근본적인 데서부터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덕임의 삶의 근본적인 자리에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그리고 덕임을 행복하게 하는 작은 자유가 있다. 친구들과 소소하게 웃고, 떠들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 나가는 삶을 사는 '덕임'이 있다. 하지만 후궁이 된 덕임의 삶에서는,

 

덕임이 없다.

 

 

 

‘정조’가 아닌, ‘산’을 사랑한 덕임


 

드라마에서, 덕임은 정조에게 묻는다. 왕이나 세자가 아닌 당신의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있냐고. 자기는 있다고. 자신이 궁녀가 아니고, 전하가 왕이 아닌 일반 사내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곤 한다고.

 

정조가 왕이라는 사실과, 덕임이 궁녀라는 사실 자체가 덕임이 정조를 사랑하기 힘들게 만든다. 다름아닌, ‘사실’이. 그래서 덕임은 정조에게 ‘만약’이라는 질문을 던졌던 것일 것이다.

 

덕임은 얼마나 많은 ‘만약’을 생각했을까.

 

드라마에서, 덕임이 정조의 고백을 거절하다 마침내 받아들이는 장면은 정조가 ‘왕’으로서가 아닌, ‘산’으로서 덕임에게 자신의 마음을 말할 때였다. 왕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사내인 산으로서 덕임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얘기하였을 때, 덕임은 정조의 옷소매를 잡았다.

 

그렇다. 덕임은 왕인 정조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내인 산을 사랑한 것이다.

 

하지만 왕의 승은을 입은 승은상궁이 된 덕임은 더 이상 산을 사랑할 수 없다. 정조를 사랑해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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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이 드라마를 보며 제일 놀랐던 부분은, 덕임이 정조에게 "자신은 모든 것을 왕인 정조에게 내어 주어야 하지만, 왕인 정조는 자신에게 모든 것을 내어 줄 수 없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장면이었다. 지금까지 숱한 사극 드라마를 봐 왔지만, 궁녀와 왕의 사랑을 이렇게나 절실하게 그저 남자와 여자의 사랑으로 치환시켜 우리에게 보여주는 드라마는 처음이었다.

 

왕인 정조를 사랑하는 궁녀 덕임이기 이전에, 이 드라마는 우리에게 남자 '산'을 사랑하는 여자 '덕임'을 보여 주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 남자와 여자가 각각 왕과 궁녀에 대입되며 발생하는 그 모든 괴리를, 덕임의 목소리와 감정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그 옷소매 붉은 끝동


 

궁녀는 ‘역할’일 뿐이다. 덕임의 '정체성'이 아니다. 그렇기에 궁녀는 왕에게 모든 것을 내어 주고, 왕은 궁녀에게 아주 일부만 잠시 '허락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면 그것은, 한 사람의 정체성을 부정해야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덕임 또한 덕임의 삶을 살지 못하였다. 왕의 후궁으로서의 삶을, 끝내는 살아갔다. 하지만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을 통하여 우리는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궁녀이기 이전에 덕임은 ‘덕임’이었다.

조선시대의 궁녀들은 궁녀이기 이전에, 그들의 이름 석 자였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궁녀들’의 옷소매 붉은 끝동이 아니라,

 

그 ‘이름들’의 옷소매 붉은 끝동이었다.

 

 

필자는 이 드라마의 결말에 무척 감사하다.

 

드라마에서, 왕인 정조와 후궁 의빈 성씨의 결말은 역사대로 그리 행복하지 못하였지만, 더 이상 왕과 궁녀가 아닌 그저 산과 덕임으로서 서로를 사랑하는 그 순간들은 영원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드라마의 장면을 통하여, 영상으로 우리가 바라볼 수 있었다.

 

정조의 후궁 의빈 성씨가 아닌, 사람 덕임의 감정들을 한 올, 한 올 풀어낸 이 드라마에 필자는 여전히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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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흔한 말들로

견뎌왔던 외로움의 시간들

고이 안아주던 그대 품 속에서

터져오는 눈물을 꾹 참죠

내 세상을 온통 물들여버린

그대 손 놓아요

 

'옷소매 붉은 끝동' OST Part.8 이선희- '그대 손 놓아요'

 

 

[김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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