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도망치지 않고 나아가는,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

글 입력 2022.01.1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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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과 죽음.

 

인간의 몸은 예기치 못한 것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불안감'이라는 이름으로 편도체가 활성화되면서 언제든 기민한 대처를 할 수 있게끔 몸이 저절로 긴장 상태를 유지한다. 다른 말로 하면 집중, 엄청난 몰입이다. 이 점을 미디어가 모를 리 없다. 살고자 하는 생물체의 근본적인 욕구를 자극하면서 나온 영화, 책, 드라마, 예능이 얼마나 많던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한 채널의 메인을 이루기까지 하면서.

 

1999년은 몰라도, 2012년 지구 멸망론은 대부분 기억할 거다. 마야 달력, 노스트라무스의 그림, 웹봇 등 몇몇 근거를 들어 2012년 12월 21일에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고 여기저기서 비중 있게 다뤘다. 물론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터무니없는 일이지만,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친구들과 꽤 진지한 고민을 했다.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뭘 할 거야?"

 

그때 내가 했던 답이 기억난다. 살면서 안 해본 것들을 왕창 몰아서 할 거라고. 그리고 마지막엔 가족들이랑 있어야 할 것 같다고. 교복에서 벗어난 후로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왠지 모를 불안감과 믿음을 지녔던 게 허무맹랑한 일임을 깨달아서였다. 교통사고나 질병이 아닌, 지구의 범위 밖 변수로 세상이 끝나진 않겠다는 확신. 지금도 이 마음은 변함없다.

 

종종 그런 생각은 한다. 모두가 같은 시간에 끝을 맞이한다면,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공평한 결론이 아닌가 하고. 책 속에 나오는 4명의 주인공도 비슷하게 생각할 것 같다. 끝이 안 보이는 자신의 삶을 누군가 끝내주길 바랐을 테니까.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한 번쯤은 바랐을 것이다. 전 직원이 회사에 갈 수 없는 정체불명의 일이 생기거나 학교가 통째로 사라지거나 지구 전체가 아예 없어지거나.

 

언젠가 보았던 마블 영화가 떠오른다. 가벼운 손짓 하나로 인류 절반을 날릴 수 있는 존재가 등장한 대목. 처음 느낀 건 공포였지만, 영화를 돌이켜 볼수록 의구심이 들었다. 이게 그렇게 나쁜 일인가. 물론 남는 사람들은 고통스러울 것이다. 소중한 사람들이 눈앞에서 증발하는 건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사람을 잃었다는 감각보다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무력감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기한이 정해진다면 어떨까. 한 달 정도. 책은 그렇게 시작한다.

 

한 달 뒤,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한다.

 

공룡을 멸종시킨 천체와 엇비슷한 위력으로. 반응은 다양했다. 자신의 일을 내팽개치고 가족에게 달려가기도 하고, 평소와 다름없이 정해진 출근시간을 지키기도 하고, 한 번뿐인 인생이 끝난다는 생각에 당당하게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주인공 네 명은 방향성이 조금 달랐다. 삶을 포기하고 싶어 했는데 막상 끝난다고 하니까 이전에 하지 못했던 일을 하고자 한다. 세상을 뒤바꿀 일은 아니다. 소행성 충돌을 막기 위한 노력도 아니다. 자기 자신이 하고 싶었던, 순수하게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을 세상 끝에서 하고자 했다.

 

멸망.

 

‘멸’에 담긴 사라짐은 모든 생물체에게 필연적이다. 살아가지만 동시에 죽어가는 우리들은 결국 소멸의 순간을 맞이한다. 모든 움직임과 연결이 끊기는데 겁을 먹을 이유는 없다고 느낀다.


하지만 겁, 그러니까 두려움이나 공포심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죽음의 순간까지 함께해야 한다면, 차라리 관점을 바꿔 원동력으로 쓰는 게 좋아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하이데거가 말한 죽음을 좋아한다. 죽음과 멀찍이 떨어지려고 발버둥 치는 게 아니라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로부터 현존재의 의미가 생겨난다.

 

자신이 영영 사라지는 날을 목전에 두고,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는 인물들과 닮았다. 희망은 절망에서 피어난다고 하던가. 원하는 일을 하든 말든 결과는 똑같다. 그러나 그들에게 삶의 끝은 중요치 않다. 이미 수십 번 죽음을 갈망하면서 살았으니까. 그렇기에 죽음 앞에서 의연할 수 있고, 공포에 잠식하지 않는다.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발 빠르게 준비하는 게 당연한 일인 이 시점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대리 만족을 불러온다.

 

*

 

끝으로 내용 외적으로 아쉬운 점을 적어본다.

 

일본 문학 특유의 느낌인 건지, 이 책 고유의 특징인 건지, 혹은 번역체 때문인지, 설정이 과했다. 담백하고 덤덤한 서술을 좋아해서인지 특히 첫 장의 고등학생은 인물에 이입하기 힘들었다. 주인공의 생각이 너무 노골적으로 보인 게 독인지도 모른다. 끝없는 자기 비하와 현실을 합리화하려는 상상. 위험한 상황도 잘 풀리는, 막힘없는 이야기. 물론 이건 취향 문제겠다.


그래도 편집자의 말을 동봉해 마음을 나누려 했던 노력이 신선하고 좋았다. 일본 문학과 정서를 선호하는 사람들에겐 한 번쯤 열어볼 만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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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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