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결국 다른 방식의 삶이 있음을

김초엽, 《행성어 서점》을 읽고
글 입력 2022.01.13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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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김초엽 저자, 《행성어 서점》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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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 출간된 김초엽의 《행성어 서점》은 “산뜻한 이야기의 마을”에서 수집해온 열네 편의 짧은 이야기들이 담긴 소설집이다. 이야기는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첫 번째, “서로에게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와 두 번째 “다른 방식의 삶이 있음을”.

 

김초엽의 이야기는 낯설지만 마냥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SF 소설이라는 장르적 특성상 기본적인 세계관과 설정 자체가 우주적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고, 동시에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장애와 혐오, 이종(異種) 간의 갈등과 공존, 환경 파괴 같은 우리가 서 있는 현실과도 맞닿아 있는 동시대적인 문제의식을 불러와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그의 이야기는 나와 다른 타자, 나아가 소수자의 삶을 직접 마주 보게 한다. 이때 저자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에는 특정한 구조의 서사가 존재한다. 첫째로 다양한 존재들을 <인식>하고, 둘째로 그 존재들에게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음을 <인정>하고 <긍정>한다. 그리고 끝으로 자연스럽게 공생과 공존에 대한 담론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구조는 두 번째 파트로 분류된 “다른 방식의 삶이 있음을”에 담긴 에피소드에서 더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다른 방식의 삶이 있음을



 

「늪지의 소년」

<인식> 늪에는 기이한 생물체가 산다. 놀랍게도 이들은 지구의 균류와 유사한 구조를 지닌 동시에 그 연결망으로 일종의 집단 지능을 구축하고 있었다.

<인정/긍정> 우리는 균사체를 뻗어 소년에게 말을 건다. 이대로 먹어버리면 안돼? 우리 중 일부가 묻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는다. (중략) 우리는 소년의 개체성에 대해, 고유한 신체로 살아가기 위한 이해할 수 없는 투지에 대해 생각한다.(p.126)

 

 

「시몬을 떠나며」

<인식> 시몬인들은 기하학적인 무늬가 새겨진, 사실은 외계에서 온 기생 생물이 들러붙어 만들어진 ‘가면’을 쓴 채로 살아간다. 그들은 미소를 잃고, 눈물이 없는 슬픔을 잃고, 비명이 없는 분노를 잃었다.

<인정/긍정> 가면을 분리하는 실험에 성공했지만 시몬인들은 가면을 쓴 채로 살아간다. “가면은 거짓 표정을 만들어내는 대신 서로에게 진짜 다정함을 베풀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게 시몬 사람들이 여전히 가면을 쓰는 이유랍니다.” (p.136)

 

 

「우리 집 코코」

<인식> 불의의 사고로 3년간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 깨어나니 ‘코코’라는 이름의 외계에서 온 식물이 반려동물이 되어 있었다.

<인정/긍정> 코코는 희망을 주니까. 삶을 포기하지 않게 해주니까. 오래 살아남아서 그것들을 널리 퍼뜨리도록 하니까.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이 괴이한 동반자들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어. (p.149-150)

 

 

「오염구역」

<인식> 외계 식물들의 ‘대침투’ 이후 오염된 운무림 마을. 이곳 사람들의 피부에는 기이한 버섯이 자란다. 그들은 버섯에게 양분을 뺏기면서도 그것을 없애기를 거부한다. 오히려 몸에서 자라는 버섯을 먹는다.

<인정/긍정> 버섯이 지구에서 나타난 것인지, 외계에서 온 것인지 우리는 구분할 방법이 없다. 버섯은 그냥 표면 위로 드러난 그것들의 자실체일 뿐이에요. 그걸 그대로 내버려 두세요. (p.170)

 

 

「지구의 다른 거주자들」

<인식> 가게 사장은 월등한 미각 기능을 보유했지만 그만큼 맛에 훨씬 예민해서, 다현은 맛있다는 감각을 느끼지 못한다. 서로 이유는 다르지만 이 두 ‘초미각자’와 ‘미맹’은 “맛을 느끼기 힘들다"라는 공통분모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긍정> 사장은 지구인과 함께 먹었을 때도 꽤 나쁘지 않은 요리를 개발한다. 그래도 가끔은 함께 공유할 맛이 필요하기 때문에. 다현은 사장의 말에 싱긋 웃는다. (p.203)

 

 

각각의 에피소드에는 공통적으로 세 가지 요소가 등장한다. 어떤 외계 물질의 침투가 배경으로 주어지며, 이미 낯선 세계에 속해있는 적응자들이 있으며, 여기에 여행자, 부적응자, 관찰자처럼 낯선 세계를 처음 마주하는 제3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죽어가는 클론 '소년', 시몬 가이드북 집필을 위해 떠나온 ‘소은’, 불의의 사고로 혼수상태에서 3년 만에 깨어난 ‘나(27세)’, 오염된 운무림 마을로 파견 나온 ‘라트나’, 연구소로 가는 길에 우연히 휴게소에 들른 ‘다현’까지.

 

이들 모두 처음에는 낯선 존재와 환경에 대해 묘한 경계심을 가진다. 낯선 감정을 긍정한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다. 그러나 외계 물질과 제3의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적응자들과 부적응자들의 대화를 통해 결국은 ‘다른 방식의 삶이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다른 존재의 삶을 인정하게 되는 이유도 과정도 모두 다 다르다. 그러나 그 안에는 공통적으로 김초엽만의 ‘기묘하고 감각적인 따스함’이 스며들어있다.

 

늪의 일부이자 완전한 일부가 되지 않으려는 소년을 떠나보내고(「늪지의 소년」), 가면을 쓴 채로 살아가는 시몬인들의 표정이 아닌 진짜 마음을 상상하고(「시몬을 떠나며」), 우리를 살게 하는 코코를 쓰다듬고(「우리 집 코코」), 온몸에 돋아난 버섯과 함께 살아가며 (「오염구역」), 혀끝에 남은 약간의 알싸한 단맛으로부터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 사장과 나누었던 기묘한 점심을 기억한다.(「지구의 다른 거주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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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 Dion Choi

 

 

그래, 나는 상관없어. 그것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으니까. 그 오염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니까.

 

「우리 집 코코」 (p.151)

 

 

 

'너'와 '내'가 외롭지 않으면 좋겠어

- 「가장자리 너머」로 마무리하며



 

분명한 건 우리가 이대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거예요. 우리는 이미 변형되었고, 처음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어요.

 

(p.215)

 

 

낯선 존재의 등장은 분명 이전과는 다른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익숙함에서 벗어난 낯선 감정은 불편하고 이질감을 선사한다. 한편으로는 긍정적인 의미로 또다시 새로운 형태로 살아갈 삶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혹시 그 사람들의 삶이 하나의 답일지도 모르죠.

 

(p.215)

 

 

적어도 김초엽이 펼쳐내는 산뜻한 이야기의 마을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그렇다. 낯선 세계와 낯선 존재의 등장에 ‘긍정’과 ‘인정’과 같은 ‘따뜻한 마음’이 더해져 기묘한 감정을 선사한다. 그리고선 우리는 이 낯선 존재들간의 기묘한 만남의 끝에 남은 여운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삶을 상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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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 Dion Choi

 

 

어쩌면 이 생물들도 그들 자신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늪이라는 환경과 운무림이라는 환경. 그게 있어야만 이 생물들은 정말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일지도요. 우리가, 인간이 그런 것처럼 말이에요.


(p.215-216)

 

  

결국 다른 방식의 삶이 있음을 인정하는 과정에서 ‘너’와 ‘내’가 함께 연결되고 살아갈 수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다양하고 많은 ‘너’와 ‘나’의 개체들이 모여 ‘함께 살아가는 삶’을 꿈꿀 수 있을지, 과연 있는 그대로의 낯선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각자의 다른 방식의 삶 속에서 아무도 외롭지 않고 따뜻하기를 바란다.

 

 

 

전문 필진_신송희.jpg

 

 

[신송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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