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처방전 [사람]

야매의 처방전이니 주의 바람.
글 입력 2022.01.0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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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방전*

  

기억이나 할까? 그 옛날 얘기들 말이다.

 

이 얘기가 누구에게 하는 말이냐고 묻는다면, 나도 모른다.

 

 

 

생활의 발견


 

과거 일을 꺼낼 때면 어른들은 꺼림직한 감정을 내비친다. 마치 내가 꺼내면 안 되는 이야기를 꺼낸 것처럼. 그리곤 말한다. 그 얘기를 왜 지금 여기서 하느냐고. 그러면 나는 “그럼 언제 해야 맞는 얘긴데? 그게 따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라고 맞받아친다. 결말은 늘 동일하다. 그곳이 어디든 세상에 이보다 더 빠르게 공기가 싸늘해지는 곳은 없을 것이다.

  

웃긴 건 ‘그 얘기를 왜 지금 여기서 하냐’는 대사를 들을 때마다 예전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헤어지는 연인을 주제로 상황극을 했던 개그 코너가 생각나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웃기지 않은 상황에 웃긴 생각을 떠올리기. 그게 내가 순간순간을 버텨온 방식이었다.

 

 

 

처방전


 

시간이 약이다. 그 말이 맞다. 완벽한 치료제가 되지는 못해도 통증을 상쇄시켜 주기는 한다. 다만 만성적인 병에는 답이 없다. 잊고 사는 게 건강에 좋다. 가끔 약효가 다 될 때면 머리를 비우려고 노력하지만 감은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은 내 소관이 아니다. 이건 악어의 눈물이며 어렸던 내가 흘리는 눈물이다.

 

 

  

너지 4885


  

죽음을 깨달은 건 6살 무렵이었다. 당시 우리 집은 콘텐츠 시청에 대단히 자유로웠는데 그 덕에 나는 안 봐도 될 여러 영화들을 이미 수차례 관람한 상태였다. 예를 들면 영화 <추격자>같은 범죄 스릴러 영화들 말이다. 어찌나 강렬했는지 십 년이 지나도 영화 줄거리를 읊으라면 읊을 수 있을 정도였다.

 

유치원 버스를 앞에 두고 나는 매일 아침 울었다. 버스를 타면서도 울고 버스에 타서도 울고 유치원에 도착해서도 나는 끊임없이 울었다. 어느 날 수업 중에도 울고 있는 나를 발견한 선생님이 계단에 앉히고 물었다. “왜 우는 거야?” 눈물에 가로막혀 대답은 못해드렸지만 대충 내가 하고자 했던 말은 이러했다. “집에 엄마가 혼자 있는데 강도라도 들어서 엄마를 죽이면 어떡해요.” 참, 당사자가 듣고도 어이없어 한 말이었다.

 

 

 

금빛 페인트로 베란다 난간을 물들이는 시간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면서 하교 후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하루는 거실 창가에 앉아있었다. 베란다 난간에 몸을 걸치고 아파트 9층 높이를 헤아려봤다. 왜 태어났을까. 난 바란 적이 없는데.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행복했던 적이 없는데. 아, 놀이동산은 즐거웠지. 그래도 그것뿐인걸.

 

어느새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창밖 너머 동산 위로 빨간 해가 보였다. 곧 나는 금빛 노을을 온몸에 뒤집어썼다. 눈이 부셔서 눈물이 났다. 노을이 너무 예뻐서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

 

 

 

딱 서른까지만 살고 싶었다. 깔끔하게


  

고등학생 때는 웃음이 많아졌다. 그걸 유지하는 게 참 힘들었다. 장점이자 단점으로 여기는 게 하나 있다. 슬프거나 힘든 기억은 뇌가 자동으로 지워준다. 그 일이 반복되지 않는 이상 슬픔과 절망이 남아있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그런지 고등 시절의 기억은 거의 없다.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가 언제까지 살고 싶은지에 대한 주제가 나왔다. 내가 말했다. “난 서른까지만 살 거야.” 옆에서 듣던 친구가 서른 살에 살아있으면 죽여버릴 거라고 했다. 다 같이 엄청 웃었다. 웃겼다. 그럴 일은 없는데. 다른 친구가 물어봤다. “근데 어떻게 서른에 딱 죽어?” 딱히 대답은 안 했다. 바보. 그것도 모르냐. 사실은 나도 몰랐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냥 그때가 되면 어떻게든 이룰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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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니핑크>에서 주인공 파니핑크는 죽음에 관한 수업을 듣는다. 자기 몸에 딱 맞는 관을 직접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 잠을 잔다. 수면제를 먹고 비닐봉지를 얼굴에 쓰고 잠들면 죽음은 저절로 그녀를 찾아올 것이다. 물론 영화는 그녀가 슬픔을 극복하고 사랑을 깨달으며 끝이 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저 여자는 뭘까 싶었다. 관을 만들어? 저런 미친 실행력이라니. 나보다 더한 여자 군. 참 잔잔하고 어이없지만 많은 공감과 위로가 되는 영화였다.

 

서른을 몇 해 남겨둔 지금은 혹여나 나를 죽이겠다던 친구가 진짜 찾아올까 걱정스럽지만 알게 뭐람. 내가 조금 더 살겠다는데.

 

 

 

시지프스


 

인간은 왜 살아야 하는가. 한 스님이 강의에서 하신 말씀이 있다.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면 그 결론은 자살이다. '사르트르'의 말마따나 인간 실존 역시 본질에 선행하기에 그 해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실존하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이다.

  

알베르 카뮈의 에세이 <시지프스 신화>에 나오는 내용이다. 별로 소용되지 않는 고통에 대한 취미로 신이 내린 벌을 받는 시지프스는 산 정상에 거대한 바위를 옮긴다. 하지만 애써 바위를 정상에 옮기고 나면 바위는 다시금 산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이 무한하고 무의미한 형벌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계속해야 하는가 혹은 끝내야만 하는가. 이건 삶에 대해 던지는 질문이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행을 끝내고 싶다면 죽음을 맞이하면 된다. 그러나 시지프스는 그의 운명보다도 우월하다. 그는 불만과 무용한 고통에 대한 취미를 가지고 들어온 신을 이 세계로부터 추방한다. 적어도 그는 인생의 부조리함을 안다. 그는 바위를 정상에 올리고 나면 또다시 산 밑으로 떨어질 것임을 안다.

 

우리는 언젠가 삶이 끝나고 죽음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어느 날 갑자기 존재하지 않을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끝없는 노동을 계속하고 있는 인간인 우리가 곧 영웅임을 모르고 살아서는 안된다. 살만한 가치는 살아가며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람을 너무 많이 증오하지는 말자. 그 사람을 닮아버리게 되니까.


 

15년이다. 15년 동안 누군가를 끔찍이 싫어했다. 그런 내게 제일 충격이었던 말은 “너 그럴 때마다 그 사람이랑 똑같아.”였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과 똑같다니 세상 그보다 더 한 말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사실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싫어한다는 이유로 나는 그 사람을 누구보다도 세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저런 행동은 정말 별로다.’ ‘꼭 말을 저런 식으로 해야 하나.’ 이런 관심과 집중이 모여 나를 구축하고 그를 초 단위로 관찰했던 나로 하여금 무의식적으로 행동을 모방하도록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를 증오하고 있다면 한숨 내쉬고 시선을 돌려라. 상대에 대한 무관심이 가장 큰 무기이다.

 

 

 

애증


 

내가 그로 하여금 용서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를 너무 많이 사랑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로 하여금 미워했던 이유는 그를 너무 많이 사랑했기 때문이다. 사랑받고 싶었다. 당신을 잔인한 말로 무참히 난도질 했던 이유는 끝끝내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당신이 미워서였다. 이토록 어른스럽지 않은 모습을 내게 내비친 탓이었다. 그런 당신을 너무 오래 짝사랑한 내 탓이었다.

 

 

 

지겹던 애증의 관계를 끊어내고 싶었던 건 재작년이었다.


 

우연히 학교를 통해 상담을 시작했다. 중요한 건 앞서 말했듯 이 또한 그리 좋은 기억은 못 되었는지 현재 기억나는 얘기는 거의 없다. 그 당시 난 변환점에 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상담에 큰 기대는 없었다. 정말 말 그대로 계획 없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11주에 걸쳐 이루어진 상담이 끝나고 난 뒤에도 달리 변한 건 없었다. 그 직후엔 말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십몇 년 동안 묵혀 있던 감정이 11주 만에 소멸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상담을 받고 난 후부터 1여 년 남짓한 기간 동안 차차 감정의 환기가 가능할 수 있었다.

 

 

 

처방전2


 

꺼낼 이야기들은 많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말씀 중 하나를 전하고자 한다.

 

상담을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선생님께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내가 증오하던 대상을 이해하고 있다고. 분명 그랬다. 하지만 이해와 용서는 별개의 문제였다.

 

누군가를 용서해 본 적이 있는가? 그게 참 어렵다. 나는 용서를 하려고 애써 마음먹는데 그 마음을 또 ‘내가’ 애써 막았다. 무엇이 문제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내 안에는 두 명이 살고 있었다.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 눈을 감고 겪어왔던 상처를 떠올릴 때면 늘 어린 내가 보였다. 이제 나는 어른이 되어서 용서하려고 하는데 막상 그러려니 상처받은 네가 눈에 밟혀 쉽지가 않구나. 죄책감이 들었다. 나 혼자 편해지자고 그 어린아이를 잊으려고 했던가.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그 사람을 용서하려니 어릴 적 슬퍼하던 제 어린 모습이 보여요. 그때의 저에게 미안해서라도 그 사람을 미워해야 해요. 안 그러면 아무도 그 아이를 기억해 주지 않을 거예요.”

 

우리는 늘 나란히 마주 보고 있었다. 그 아이는 나보다 키가 조금 작고 머리가 길고 마르고 울고 있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 아이에게 현지 씨가 말해줘요. 수고했다고. 그동안 힘들었을 텐데 버텨줘서 고맙다고. 우리 세 번씩 말해 볼까요?”

 

수고했다 고맙다 내가 내게 건네는 동안 내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었다. 그제야 그 긴 상담 기간 중 처음으로 소리 내 울었다. 그전까지 난 슬플 때면 울지 않고 늘 웃으려 했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

 

이 얘기가 누구에게 하는 말이냐고 묻는다면, 나도 모른다.

그냥 상처받은 어린 시절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근데 사실 이 말은 스스로 내뱉어야 효험이 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울지 않는다. 그 옛날 울보는 없다. 이렇게 만들어졌고 익숙해졌다.

그래도 가끔은 운다.

 

슬픈 걸 유쾌한 걸로 둔갑하려는 재주는 진작에 갖다 버렸다.

그러니 글이 조금 우울해 보여도... 같이 우울해 지지는 말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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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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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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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의 글을 받고 위로 받은 어떤 한 사람
    • 고등학교 때 상담을 받은 적 있어요. 언니가 집을 나갔었고, 스트레스도 받았고, 예민했고. 근데 그 상담이 잘못되었어요. 저보도 폭탄이라고 하면서도 너가 힘든 게 뭐가 있냐고 저를 다그쳤죠. 최근에서야 이 상담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한동안 무척 힘들었어요. 지금도 그 상담사의 말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여전히 제 무의식 속에 존재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현재를 살려고 노력 중이에요. 저도 여전히 과거의 저를, 어린 시절의 저를 놓아주지 못하고 있어요. 여전히 깊은 내면의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근데 저는 노력할 거예요. 그리고 꼭 꼭 살아갈 거예요. 저로 살아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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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매의 처방전이라는 말에 웃었던 게 무색하게도 글을 읽다보니 어느새 울고 있네요. 눈물이 날 만큼 슬펐지만, 우울한 글은 아니었어요. 감히 말씀 드리면, 작성자님이 긴 시간동안 스스로를 잘 지켜오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저도 덩달아 위로 받았네요. 고맙습니다. 아, 그리고 이런 야매라면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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