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올해를 정리하기

가까이에서 보니 어쩌면 희극
글 입력 2022.01.01 00:2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매년 한 해가 갈 때마다 주변사람들과 연말 느낌 안 난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올해는 유난히 그 얘기가 많이 하고 또 들었다. 예전엔 나이가 들어가는 증거인가 했는데 이번에는 연령대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서 같은 소리를 하니 올해는 뭔가 다른가보다 싶다. 바이러스에서 벗어나지 못한지 2년째라는 건 이런 느낌일까.

 

하지만 분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도 몸은 착실하게 정해진 대로 연말 기념 1년 되돌아보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사진을 보면서 올해를 더듬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잊어버린 기억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2021_main.jpg

 

 

 

변할 듯 변하지 않는 관심사



12월 31일이 되면 블로그에 ‘올해의 것들’을 정리해서 올린다. 매년 조금씩 달라지는데 기본적으로 올해의 전시, 공연, 노래, 책, 디저트, 음식 그리고 올해의 순간 등을 정리해서 사진과 함께 기록을 남긴다. 몇 년간의 기록을 보면 점점 의미를 잃거나 시간에 쫓겨서 종류가 적어지는 걸 발견하게 된다. 체감도 못하고 무언갈 잃어가는 걸 아쉽게 생각하기도 하고 새롭게 마음을 다 잡기도 한다. 외부 자극에 무뎌지는 현실을 아쉬워하면서 내년은 올해보다 잘 살아야지 다짐한다.


돌이켜보면 그렇다. 내가 말이 많아지는 분야는 공연, 전시, 책, 노래처럼 예전부터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는 것들이다.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고 관심이 전보다 줄었다고 해도 일상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까 1년을 돌아보고 나서 ‘관심이 없어졌다’는 표현하는 것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올해 읽은 책이 얼마 없다고 해도 나는 새해 다짐에 독서를 또 다시 올려놓을테고, 노래에 관심 없다고 해도 주기만 늦어질 뿐 플레이 리스트는 업데이트 된다. 이러나 저러나 결국 어떤 형태로는 내 삶을 벗어나지 않는다.

 

책을 적게 읽든 많이 읽든, 노래를 적게 듣든 많이 듣든. 내 취향은 밝고 명랑하지 않아서 마른 수건 쥐어짜니 취향의 덩어리가 나왔다.




작은데서 시작되는 변화


 

2016년에 친구들과 앤서니 브라운 전을 보고 쉐이프 게임을 따라했었다. 친구들과 그런 식으로 놀았던 적이 없어서 그 해에 ‘올해의 크리에이티브’를 만들어서 남겼다. 작년에 디자이너 친구가 생일에 그림을 그려줘서 답례로 나도 친구를 그려주기로 했다. 중간 결과를 본 친구가 엎을 뻔했지만 가까스로 아는 기술을 총 동원해서 낙서 같은 그림을 완성했다. 그래서 작년을 정리할 때 그 낙서로 몇 년 만에 ‘크리에이티브’가 부활했다.

 

올해 그림 그리는 지인들 사이에서 나홀로 감상만 하다가 한 번 그려보라는 얘기가 나와서 나는 정말 이런 거 못한다며 겨우 낙서를 해서 보여줬다. 좋은 말만 해주는 사람들이라서 더 그려보는 건 어떠냐고 했고 나는 집에 굴러다니던 판 타블렛을 꺼내서 남들 그림 그릴 때 혼자 낙서를 했다.

 

그렇게 채찍질 같은 칭찬 감옥에 갇혀있었더니 봄부터 지금까지 10장 가량의 낙서가 나왔다. 작년의 내가 그림이 되지 못한 낙서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더라면 올해의 낙서는 쌓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사진을 모으던 핀터레스트에 그림 자료가 쌓이고 인스타 추천 피드에 작법 자료가 뜬다. 변화는 정말 사소한 데서 시작된다.


*

 

막연히 1년을 돌아보면 큼직큼직한 사건과 그에 따른 감정만 떠오른다. 나는 작년부터 주변에 위로와 격려를 받을 일이 이어졌는데 따지고보면 내 일상 구석구석엔 제법 괜찮은 일들이 있었다.

 

해외는 아니더라도 여행을 다녀왔고 평일에 친구와 핫플레이스도 가보고 이 시국이지만 틈틈이 문화생활도 챙겼다. 뜻하지 않은 선물도 받았고 좋은 사람들이랑 맛있는 식사자리도 몇 번 있었다. 큰 틀에서 작년과 비슷한 건 올해도 내가 틈틈이 취향을 놓치지 않고 살았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삶은 어쩌면 멀리서 보면 비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희극인지도 모르겠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