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변하지 않을 밴드의 향방, 보수동쿨러 - 모래 [음반]

보수동쿨러 정규 1집 《모래》
글 입력 2022.01.0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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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sudong Cooler Profile.jpg

 

 

좋은 음반은 언제나 귀하지만 특히 밴드의 음반은 더욱 그렇다. 풀렝스 앨범을 내는 데 필요한 노력은 애써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에 더해 변화하는 환경에서 목표를 향해 키를 쥐고 있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밴드 음악을 하기 어려운 시대라고들 한다. 시간에 따라 사람들의 취향은 변하고 음악으로 성공하는 방법은 불확실하다. 게다가 특수한 시국에 무대와 공연장은 줄줄이 닫아 라이브의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나의 앨범을 내는 일은 단순히 곡을 써 내려가는 것 이상의, 세상 속에서 키를 잡고 항해하는 것 만큼의 험난함이다.

 

보수동쿨러는 2017년 부산에서 결성된 인디록 밴드다. 기타의 구슬한, 보컬의 김민지, 베이스의 이상원과 드럼의 최운규까지 모여 밴드를 꾸리고 있다. 보수동쿨러는 2018년 4월 싱글 <죽여줘>로 데뷔해 <목화>와 EP 《yeah, I don’t want it》을 발매하며 단숨에 인디씬에서 주목받는 신인이 되었다. 멜랑콜리한 음악과 아이코닉한 프론트는 온스테이지를 비롯한 다양한 무대에서 보수동쿨러의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보컬의 갑작스러운 탈퇴는 밴드의 방향성에 대한 외부의 불안을 동반했지만, 첫 정규 앨범 《모래》를 발매하며 길을 잃지 않았음을 보기 좋게 증명했다.

 

 

1st Full-Length 'Sand' Cover.jpg

 

 

“살아가며 만나는 분노와 상실 그리고 무기력함. 하지만 그 속에서 드문드문 보이는 희망들과 작은 기쁨들에 대하여. 포크와 로큰롤 그리고 아름다운 멜로디와 4명이 서로에게 집중하는 에너지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모래》는 보수동쿨러의 새로운 방향성이다. 이전 작품인 <죽여줘>, <목화>로부터 변화가 있다면, 듣기 좋은 인디팝에서 구성원의 호흡이 강조된 밴드 음악으로 향했다는 점이다. 사운드는 단순하고 명료하게, 곡의 구성은 좀 더 섬세하고 복잡하게 짜인 형태로 변했다. 보수동쿨러는 몽환적인 분위기의 색감을 칠하는 화가에서 멤버 간 연주를 직조하는 공예가가 되었다.

 

사운드의 변화는 첫 트랙 <귤>에서부터 시작된다. 쓸쓸히 등장한 일렉기타는 오랜 시간 동안 인트로를 연주한다. 보통 싱글 컷 단위의 음악은 곡을 빠르게 보여주기 위해 도입부부터 최대의 볼륨을 제시하지만, 앨범이라는 긴 호흡을 확보한 《모래》는 급한 모습 없이 여유롭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앨범의 변화는 톤에서도 드러난다. <죽여줘>와 <목화>에서 모듈레이션을 잔뜩 머금었던 일렉기타는 좀 더 담백하고 약간의 디스토션이 걸린 형태로 변화했다. 또한, 일렉기타의 밴딩을 활용한 플레이는 현대적인 색깔보다 좀 더 원형에 가까운 록 음악에 지향점이 있음을 보여준다. 《모래》의 톤은 좀 더 민낯의 소리라고 할 수 있는데, 어쩌면 화려한 장식을 치워낸 의도라고 이해할 수 있다.

 

보수동쿨러는 특정 장르나 분위기의 ‘연출’이 아닌 곡의 구성을 천천히 쌓아나가는 데에 집중한다. 《모래》는 정해진 문법이나 규칙을 따라가려는 시도보다 곡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시도가 돋보이는 앨범이다.

 

보수동쿨러는 때로 가사와 테마를 위해 곡을 유연하게 구성한다. 동명의 타이틀 <모래>는 자유로운 마디의 변형이 특징인 곡이다. 보통의 작곡은 정해진 수와 규칙에서 안정감을 연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모래>는 3박과 4박을 자유롭게 오가지만 튀는 구석 없이 자연스럽게 곡을 흘려보낸다. 박자의 자유로운 사용은 가사의 연결성을 위한 연출이다. “흐르는 눈물의 이유를 애써”와 “물을 필요는 없지”의 가사를 잇기 위해 반듯한 형태보다 음절에 맞춘 속도감을 선택한다.

 

<계절> 역시 박자의 자유로운 변형이 돋보인다. <계잘>은 테마로 사용한 기타 리프와 벌스의 마디를 짧게 다듬었다. 구성 간의 좁아진 간격은 어쩌면 실용적인 편곡이라고도 느껴진다. 빠른 속도감으로 배치된 마디들은 구성 사이의 빈틈을 붙여 흐트러질 수 있는 곡의 집중력을 강하게 붙잡아둔다.

 

섬세한 설계 속에서도 보수동쿨러는 소기의 목적을 잃지 않는다. 좋은 곡을 추구하는 팝의 미학과 구성원의 호흡이 살아있는 그룹사운드의 미학은 《모래》에 분명히 존재한다.

 

타이틀 <대니>는 이전 EP의 타이틀 <목화>와 같이 인트로와 본 곡의 구성으로 배치됐다. <대니 INTRO>의 마지막은 치닫는 속도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하지만 이어지는 접합부이자 <대니>의 첫 부분은 허무하게도 소리를 꺼버린다. <대니>는 격렬함과 정적인 분위기를 오가며 끝으로 가서야 록 사운드를 거침없이 보여준다. 거대한 클라이막스는 사람들이 기대하던 록 음악의 격동과 일치한다. 보수동쿨러는 두 곡이 영화 <택시드라이버>와 <미드소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전했다.

 

<구름이>는 격동하던 《모래》의 서정성을 완성하는 트랙이다. 느긋한 속도로 “하늘엔 구름이 무너지네”라고 절망하는데, 구슬한과 함께 지냈던 반려견 ‘구름이’의 죽음에 대한 담담한 슬픔을 노래했다. 이어지는 <오랑대>는 밴드 멤버들의 목소리를 전부 담아 소박하게 앨범을 마무리한다. 《모래》는 차분하고 정적인 모습으로 30분가량 이어진 러닝타임을 이완한다.

 

*

 

음악은 시간에 따라 계속 변화하며 외부 혹은 내부로 향한다. 외부의 레퍼런스나 대중성을 따라가 신선함을 연출하는 방법, 또는 지금 보유한 내부의 자원으로 가장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방법이다. 보수동쿨러는 외부로 향하던 에너지를 덜고 탄탄한 밴드의 앙상블에 집중했다. 제한된 악기와 소리를 이용해 완성한 《모래》는 어쩌면 이미 충분했을지도 모르는 밴드의 호흡을 담았다. 어떤 모습으로 찾아오든 보수동쿨러의 향방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물에 젖은 모래는 성이 되기에 충분히 단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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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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