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꿈의 세계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도서]

글 입력 2021.12.28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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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꿈을 꾸었다. 새벽 5시에 잠깐 눈을 떴을 때는 꿈 내용이 어렴풋이 기억났는데,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이제는 완전히 기억나지 않는다. 굉장한 꿈이었던 것 같은데.. (아쉽다) 꿈은 신기하다. 며칠 전에 꾼 꿈은 메모장에 적어두지 않았는데도 생생히 기억난다. 한국과는 동떨어진 동남아의 이국적인 장소와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 어쩐 일인지 흑인 친구들이 많이 보였다. 우리는 아주 오래된 친구인 것처럼 서로를 대했다. 온 집안을 뛰어다니고, 침대에서 배게 싸움을 벌이고, 사방을 돌아다녔다.


배경은 여름이었다. 땀이 끈적하게 흐를 정도의 더위까지는 아니어서 (아니 맞았나?) 선선히 불어오던 바람 내음도 기억한다. 나는 붉은 색(보다는 진한 빨강에 가까운) 짧은 트렁크 바지를 입고 있었다. 좁디좁은 새하얀 싱글 침대에서 – 이때 침대는 베개 싸움의 여파로 이미 엉망이 되어있었다 – 친구 옆에 몸을 뉘어 낮잠을 청할 찰나, 잠이 깨버렸다. 이렇게 갑작스레 끝나버린 것이 못내 아쉬웠다. 꿈에서 낮잠만 자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끈질기게 머릿속을 따라다녔다. 근래 들어 이렇게나 생생하고 재미있게 꾼 꿈은 오랜만이라 그 여운이 길었다. 온종일 꿈속에서 보았던 동남아의 눅진한 풍경과 (얼굴도 모르는) 친구들의 잔상이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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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꿈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내가 꿈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아침이 되면 꿈 대부분이 손에 쥔 모래알처럼 멀리 사라져가므로, 기억에 머무르는 꿈들은 특히나 각별하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하는 꿈들이 있다. 마법사가 되어 주문을 외고 하늘을 날아다니던 꿈은 정말이지 환상적이기 그지없었다. 아마도 그 시기에는 (이미 몇십 번은 돌려본) 해리포터 시리즈를 열심히 정주행하고 있었나 보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장소 ‘다이애건 앨리’(마법사들의 거리)처럼 엄청난 인파와 상점들이 꿈속 세계에 들어서 있었으니 말이다. 가장 좋아하는 예술인과 놀이공원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던 때도 잊지 못한다. 둘이서 손을 꼭 맞잡고 지하철에서 오랜 수다를 떨기도 했는데. 행복과 활기만이 들어찬 이런 환상 겨운 꿈들이 있었는가 하면, 반대로 무시무시한 꿈을 꾼 적도 적지 않다.


좀비 세상에 내던져져 필사적으로 뛰어다니고 고군분투하는 꿈은 말 그대로 공포 그 자체다. 아마도 이 시기에는 한창 좀비 영화를 즐겨보았던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좀비 영화를 즐겨보긴 해도 꿈속에서 좀비를 맞닥뜨리는 일은 절대 사절이다. 좀비가 나오는 꿈을 꾼 지는 벌써 수차례가 되었는데, 내가 생존에 젬병인 까닭인지 이쪽 세상은 영 적응하기가 힘들다. 별안간 환상의 세계에서는 경험하지 못할 극한의 스릴감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은 확실하지만! 생각해보면 온갖 스트레스로 가위를 자주 눌리던 시기에는 꿈속에서도 곧잘 어두운 분위기가 유지되었던 것 같다. 잔인한 영화를 보고 난 뒤, 꿈속에서 무언가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되거나 되려 누군가를 해치는 사람으로 변모한 것은 두말할 것 없다. 꿈은 우리의 무의식을 얼마나 투영하고 있는 것일까?


어쨌거나 그것이 무서운 꿈이든 재밌는 꿈이든 꿈을 꾸지 않은 날에는 아침부터 못내 아쉬움이 남곤 한다. 최근에는 거의 매일같이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있어 상당히 만족스럽게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몇 달간은 아예 꿈을 꾸지 않은 적도 있던지라 (혹은 기억을 못 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요즈음의 변화가 새삼 놀랍고 반가울 따름이다. 꿈에 대한 여운이 커지고, 소설책에 관심이 생기자 자연스레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 눈길이 갔다. 그리고 작가의 말을 읽자마자 나는 이 책을 좋아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궁리해봐야 도무지 알 수 없는 어제와 오늘 사이의 그 신비로운 틈새를, 기분 좋은 상상으로 채워 넣는 작업을 반복했다.


잠들어야만 입장할 수 있는 상점가 마을. 그리고 잠든 이들을 사로잡는 흥미로운 장소들. (..) 그중에서도 잠든 손님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다는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담았다.


-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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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잠들어야만 입장할 수 있는 상점가 마을을 배경으로 책의 서문을 연다. 상점가 주변에는 옷을 훌렁훌렁 벗고 자는 손님들에게 정신없이 가운을 입혀주는 녹틸루카들이 돌아다닌다. 거리 한가운데 자리한 5층짜리 목조건물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은 층마다 특별한 장르의 꿈들을 제공하고 있다. 유서 깊은 이곳 상점에서 일하게 된 주인공 페니는 단잠에 빠진 외부 손님들을 맞이하며 하루하루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서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언뜻 해리포터 세계관을 떠올리게 하는 상점가 마을의 존재였다. 현실과 꿈의 중간다리에 놓인 아늑한 상점가 마을.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활기찬 세계였다. 이곳에서 꿈 백화점은 마을에 사는 시민들과 외부 손님인 ‘우리’에게 다양한 양질의 꿈을 판매하고 있다.

 

 

1층에는 아주 고가의 인기상품, 또는 한정판, 예약상품들만을 소량 취급하는 데 반해 2층은 좀 더 보편적인 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2층은 일명 ‘평범한 일상’ 코너로, 소소한 여행이나 친구를 만나는 꿈, 또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꿈 등을 판매하는 곳이었다.


페니가 서 있는 계단 바로 앞쪽에는 ‘추억 코너’라는 팻말이 붙은 진열장이 있었다.


- 「1.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 중에서

 

 

페니가 서 있던 2층의 추억 코너에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라는 꿈을 판매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추억 중의 하나가 꿈에 나온다는 이것을 사 간다면 나는 아마도 반려견과 숨바꼭질을 하고 뛰놀던 추억, 초등학교 시절 동네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친구들과 함께한 추억이 떠오를 것이다. 혹은 집 앞 비디오 가게에서 책장 가득 들어찬 DVD 앞을 서성이며 몇 시간이고 시간을 보내던 때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지금으로부터 조금 더 가까운 시절의 추억 속으로 떠난다면, 가는 곳마다 거리에 야자수가 가득하던 미국여행을 다시 한번 경험하고 싶다. 일주일간 디즈니월드와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마음껏 누비던 때도 잊지 못한다. 또 필리핀에서의 아름다운 추억과 겨울에 떠났던 친구와의 해외여행은 어떠한가.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미소가 지어지는 오랜 추억들을 떠올리고 있자면, 꿈에서라도 이런 환상의 순간들을 다시금 맛보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오래 적부터 기억에 남는 꿈들을 차례로 톺아보자면, 나는 2층에서 판매하는 ‘평범한 일상’ 코너의 꿈들을 사지 않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앞서 언급한 꿈들만 하더라도 마법사니 연예인이니 좀비니 귀신이니 오로지 상상의 세계에서만 마주할 수 있는 존재들이 잇따라 튀어나오니 말이다. 나는 주로 3층에서 꿈을 사가는 듯했다.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의 3층 코너에는 현실과 이상을 넘나드는 여러 획기적이고 활동적인 꿈들이 판매되고 있다. ‘레프라혼 요정만의 기술이 집약된 하늘을 나는 꿈’부터 ‘SF 시리즈’ ‘옛 친구를 만나는 꿈’ ‘오감이 번쩍 야릇한 꿈’까지. 3층의 매니저인 모그베리는 언젠가 ‘키스 그루어’의 꿈을 통해 운이 좋으면 좋아하는 사람과 근사한 곳에서 데이트하는 꿈을 꿀지도 모른다고 페니에게 말했다. 내가 보기에 좋아하는 사람과 이전 꿈속에서 근사한 시간을 보낸 것은 운 좋게도 이 꿈이 얻어걸린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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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꿈값 정산 시스템 역시 인상적인 대목 중 하나였다. 상점가 마을에 사는 시민들을 제외하고 꿈 백화점은 외부 손님들로부터 후불 형식으로 대금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원하는 꿈을 냉큼 가서 집어온 다음, 값을 치르러 가지 않으면 그만 아니냐고? 이것이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에 즐비한 양질의 꿈들을 놓쳐버리는 어리석은 실수임을 차치하고서라도 꿈 백화점은 외부 손님으로부터 통상적인 거래에 사용되는 화폐로 대금을 수납받지 않는다. 대신 손님들이 꿈으로부터 느낀 ‘감정’을 꿈값으로 받는다.


‘설렘’ ‘성취감’ ‘자신감’과 같은 감정들은 높은 시세로 책정되어 상점의 주요 자산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꿈 백화점에는 감정이 풍부한 이들이 곧 단골손님으로 거듭난다. 돈으로 환전이 가능한 이 감정들은 상점가의 은행에서 주로 거래된다. 은행 뒤쪽의 전광판에는 마치 증권시장의 상품들처럼 다양한 종류의 감정들의 시세가 실시간으로 나타난다. 꿈속에서 곧잘 설렘의 감정을 느끼는 나는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의 단골손님이 틀림없으리라. 안 그래도 작품 속 ‘설렘’의 시세가 최고치로 치솟는 마당이라 이곳 상점에 적지 않은 이익을 가져다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선뜻 웃음이 나왔다.


 

”소고기 햄버거 세트가 1고든인데 성취감 한 병이 200고든까지 치솟다니! 대체 누가 남의 성취감을 큰돈 주고 사서 대리만족하는 거야? 작년에 사재기해놨으면 지금 시원하게 퇴사하는 건데!”


- 「1.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 중에서

 

 

페니가 꿈 백화점의 면접을 준비할 당시 풀었던 문제지에는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범고래가 되는 꿈’ ‘부모님으로 일주일간 살아보는 꿈’ ‘우주를 유영하며 지구를 바라보는 꿈’ ‘역사 속 인물과 티타임을 가지는 꿈’ 등이 언급된다. 책 속에 등장하는 모든 유형의 꿈들을 시시각각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놀랍도록 새로운 꿈들 사이에서 책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 더욱 빛을 발하는 이유는, 꿈의 도움을 받아 현실에서 지혜롭게 삶을 헤쳐가는 인물이 곳곳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비밀스러운 이들의 이야기는 종국에 가슴 뭉클한 감동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혹자는 이와 같은 이야기가 다소 뻔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쩌면 그토록 뻔한 사랑 이야기, 가족 이야기가 끊임없이 세상을 맴돌며 우리 곁을 위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별거 아닌 것 같은 이야기에도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던지! 따뜻한 코코아와 초콜릿 박힌 쿠키가 생각나는 몽글몽글한 책. 겨울에 읽기 무척이나 잘했다는 생각이 든 <달러구트 꿈 백화점>.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더욱 따뜻한 연말을 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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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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