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일이 된 문화예술은 어땠는가(1) : 길을 잃은 인턴의 이야기

글 입력 2021.12.2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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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올해 나를 가장 사로잡았던 키워드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봤다. 역시 취업이었다. 오늘은 올 한 해 동안 나의 취업 고군분투기를 글로 남겨보려 한다.

 

미리 이야기해두기지만, 이것은 성공 수기도 아니고, 결말이 뚜렷한 글도 아니며, 심지어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원하는 결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글을 굳이 왜 적느냐고 묻는다면, 나와 비슷한 길을 가는 사람들이 느끼게 될 비슷한 감정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글로 적어 띄우는 것의 장점이 이런 거 아닌가. 평생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비슷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취업을 준비하고 일하면서 어떤 일들이 있었고,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정리하기 위해서 시간 순서대로 글을 정리할 예정이다. 처음 중요한 결심이 있었던 3월부터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3월~8월: 졸업 준비와 대외활동. 확신에 찬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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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월부터 앞으로의 취업 준비 분야를 문화예술로 한정시켜 잡았다. 그동안 대학생활동안 내가 관심을 가지던 분야는 크게 문화예술과 마케팅 두 가지였다. 그러나 나는 마케터가 다소 원칙주의적이고 시시한 나에게 별로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왔다. 게다가 문화예술, 예술작품, 예술가들과 일하는 것에 대해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로망을 버리지 못했다.

 

나의 직업 선택의 기준은 스스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지금 생각하면 더없이 모호한 기준이지만, 내가 일하면서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일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단정 지었다. 또는 ‘하고 싶은 일’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바로 문화예술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돌이켜보면 이에 대한 고민이 너무나도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일 순위를 문화예술 관련 공공기관으로 잡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안정적인 직장을 가질 수 있고, 공적인 사업을 맡아서 하다 보면 보람이 있을 거라고 느꼈다. 나는 상반기에 졸업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이곳에 취업하기 위해 당장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점검했다. 우선은 관련 인턴이나 계약직 경험이 필요했고, 기획이나 홍보 관련 활동도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막무가내로 졸업 준비와 동시에 대외활동 서너 개를 병행했다. 놀랍게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신났고, 1, 2학년 때 열정적이고 활기찬 모습을 되찾은 것 같아서 기뻤다. 매일 미술관과 축제 현장을 왔다 갔다 하면서 막 학기 학생답지 않은 행복한 학교생활을 했다. 활동할수록, 내가 바쁠수록, 내가 선택한 일에 대한 확신이 커졌다. 물론 취업은 약간 다른 영역이었다. 자기소개서로 내가 해온 활동들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건 조금 괴로운 일이었지만, 그 또한 그런대로 해 나갔다. 그렇게 마지막 학기와 졸업 요건을 무사히 마치고 졸업 유예생이 되었다.

 

 

 

9월~11월: 공공극장 인턴 시작. 좋아하는 마음을 의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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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운이 좋게도 학기를 마치고 방학을 보내던 도중 한 공공극장에서 마케팅 인턴 기회를 얻게 되었다. 내가 얻어 낸 자리에 대해 나는 솔직하게 두 가지 마음이 들었다. 하나는 당연히, 더없이 좋은 마음이었다. 내가 원하던 기관, 원하던 분야에서 일한다는 기대감이 컸다. 기대감이 하도 큰 나머지 첫 출근 때는 다른 때보다 유독 긴장해서 눈에 띄게 삐걱거리기도 했다.

 

다른 하나는 약간은 아쉬운 마음이었다. 내가 일하게 된 직무는 마케팅이었다. 나는 사실 마케팅보다는 다른 기관에서 더 범용적으로 필요로 하는 직무인 홍보나 기획 쪽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맡게 된 일이 원하던 것과 약간은 방향이 다른 일이었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일해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으니까 기대감이 꺾이지 않도록 조심했다.

 

처음 한 두 달은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아침 출근마다 설레고, 든든한 기분이었다. 솔직하게 인스타그램에 회사가 나오도록 찍어 게시물을 작성한 적도 있다. 고작 인턴이지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문화예술 문화예술 그렇게 부르짖더니 결국 그런 일을 하는구나 하는 친구들 말들도 좋았다. 일이 끝나고 회사에서 보는 공연이 좋았다.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설레는 마음은 그 고작 몇 달을 채 가지 못했다. 일이 되어버린 문화예술 앞에서 내가 느낀 벽은 ‘의심’이었다. 여기에 들어와 보니 정말 문화예술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다. 온종일 공연 이야기하고도 끝나고 공연을 보러 가고, 주말에도 공연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내 마음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도 일이 끝나고 공연과 전시를 시간 내어 가고 싶은 사람인가? 아니면 고작 그만큼도 좋아하지 않으면서 이 일을 하는 사람인가?

 

나의 줄어든 한가한 시간을 문화예술에 쏟아붓는 게 조금씩 짐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나는 회의감이 들었다. 그토록 ‘좋아하는 일‘을 찾아왔지만, 정작 내가 무엇을 좋아해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 것인지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 여기서 드러났다. 나는 공연을 좋아하는 건가? 아니면 음악을? 책을? 전시를? 영화를? 아니면 예술가들과 함께하는 일을 좋아하는 건가? 아니면 사람들에게 예술을 알리는 일을 좋아하는 건가? 좋아하는 것과 좋아해야 할 것 같은 것들이 뒤섞여서 혼란스러운 마음이었다.

 

>> 이 뒤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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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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