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난 언제나 네 안에 있었어 - 게르니카의 황소 [도서]

글 입력 2021.12.27 09:1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한창 독서에 빠져 살던 시기가 있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라는 소설 속 그가 쓰는 소재의 괴이함, 독특함 그리고 그걸 드러내는 직관적인 표현법에 반해버렸고, 한동안 그가 쓴 소설을 손에 달고 살았다.

 

본인만의 세계를 흡입력 있게 표현하는 소설은 내 머릿속에 장면을 휘갈기듯 엄청난 강렬함을 남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을 접한 이후로 그만큼의 강렬함과 쾌감을 선사하는 작품을 만나보지 못했다.

 

하지만 <게르니카의 황소>의 첫장을 읽어내렸을 때, 이미 난 예감했다.


"이 책, 진짜 미친 책이다!"

 

마치 <개미>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문장 한 줄 한 줄이 탄력성 있게 내 눈을 휘감았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 다음 스토리가 궁금해 심장이 두근거렸다. 대체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 어떤 상황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이렇게나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책을 읽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책은 나를 집어 삼킬 듯이 그 안의 세계를 토해냈고, 난 그 안에서 바쁘게 헤엄쳤다. 이곳이 꿈인지, 현실인지 반복되는 상황의 전환 속에서 신나게 눈을 굴리는 짜릿함은 마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변주곡, 그것도 아주 독특하고 웅장한 변주곡에 빠져드는 듯 했다.

 

그렇다. 이 책은 변주곡과 같다. 중첩된 구조를 가지고 독자를 뒤흔드는 변주곡.

 

 

게르니카의황소_표1_띠지유.jpg

 

 

< 게르니카의 황소 Keyword >

 

- 이야기는 성난 황소와 같고

- 책장은 투우사가 휘날리는 빨간 천과 같다

- 꿈과 현실의 경계

- 난 언제나 네 안에, 내 안에 있었어

 

 

 

내가 빚어낸 나의, 너의 모습


 

<게르니카의 황소>는 전체적으로 존재에 대한 자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주인공 '케이트'는 어렸을 적의 기억을 잃은 채로 번햄가에 입양된다. 기억에는 없지만 아버지가 말하는 대로 "미치광이 살인마인 친엄마가 가족 모두를 살해하고 자살했다, 케이트 본인은 운 좋게 살아남은 것"이라고 믿는다.

 

케이트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려고 노력하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에게 좋은 모습만을 보이며, 살인마인 어머니와 전혀 다른 존재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케이트. 하지만 <게르니카의 황소> 그림을 보게 되면서 케이트의 삶은 파도치듯 울렁이기 시작한다.

 

케이트의 삶이 요동치기 시작한 지점은 자신에게 숨겨져 있을지 모르는 살인마의 DNA가 들통나지 않게, 아버지가 바라는 나의 모습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를 보이면 케이트를 추궁하는 아버지는 케이트의 본질을 갉아먹고, 케이트가 또 다른 자신을 꾸며내게 만들었다.

 

그렇게 케이트는 자신이 원하는, 주변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하기 위해 현실과 꿈을 넘나들며 피폐한 삶을 이어간다. 꿈 속 세계와 인물을 이용하며 현실을 고치기에 여념이 없는 케이트는 결국 꿈과 현실의 경계를 잃어간다.

  

결말을 통해 결국 이 모든 일은 자신의 그릇된 욕망을 채우기 위해 타인의 삶을 빚어내려고 한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남이 만들어낸 내 모습은 결국 스스로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지고, 본연의 성질과 존재에 대한 자각 능력을 잃게 만든다. 꿈 속에서 자신이 이용하던 인물이 결국 케이트의 또 다른 자아로 등장했을 때, 케이트는 자신의 본질에 대해, 또 진정한 자아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하고 지난 삶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이 이야기의 모든 근원은 자아의 성립, 존재에 대한 자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 안에 남아있던 또 다른 나와 함께 삶에 대한 실마리를 찾고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결국 모든 해답은 스스로에게 있다는 답을 전한다.

 

황소라는 매개체를 시작으로 분열의 과정을 그리는 <게르니카의 황소>.

 

이 소설을 읽고 나서는 <게르니카의 황소>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피카소의 그림보다 소설이 주는 빨갛고, 얼룩진 세상이 더 뚜렷하게 기억난다. 그만큼 서늘한 긴장감을 자아내는 심리 스릴러 안에 자아의 분열과 정립의 과정은 독특하고 강렬했다.

 

소설의 매력을 느끼고 싶은, 특히 스릴러/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이에게 이 책은 분명 큰 울림이 될 것이다.

 


 

에디터_정다은.jpg

 

 

[정다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