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뜻밖의 터닝포인트 - 노트르담 드 파리 : 프렌치 오리지널 [공연]

글 입력 2021.12.23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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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빅토르 위고의 동명 고전소설을 바탕으로 1998년에 초연됐다. 초연 공연부터 최다 관객을 기록할 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지컬이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은데, ‘대성당의 시대’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넘버이다.


뮤지컬 한 편으로 종교가 중심인 대성당의 시대를 간접경험 할 수 있으며, 위선 그리고 선과 악이 대립하는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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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고 싶었던 뮤지컬인 만큼 서둘러 공연장으로 향했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봤던 극장 중 가장 큰 극장이었고, 자막을 볼 수 있는 스크린이 무대 옆 말고도 좌석마다 있었다. 극이 시작되고 색다른 형식에 내 눈이 반짝임을 느꼈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사가 없고 노래만 있는 형식이었다. 오페라의 레치타티보 창법도 있어서 뮤지컬이 아닌 오페라를 보는 것 같았다. 나중에서야 이 뮤지컬이 송 스루(Song Through) 형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 다른 점은 노래하는 배우와 춤을 추는 무용수가 분리되어 있었고, 다른 뮤지컬에 비해 무대 전환과 소품 등을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소품 위주로 사용하고, 다양한 조명으로 화려함을 더했다.


알고 보니 노래를 하는 배우와 무용수가 분리된 점, 단순하지만 특색 있는 무대는 프랑스 뮤지컬 특징이었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프랑스 뮤지컬의 특징을 매우 잘 녹여낸 작품이었으며, 왜 프랑스 대표 뮤지컬인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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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 오리지널 내한 공연으로 배우의 노래 실력과 무용수들의 빛나는 퍼포먼스, 시적인 대사, 그들만의 음색을 듣고, 볼 수 있었다. 그 덕에 프랑스 뮤지컬의 특징을 오롯이 경험할 수 있었다.


특히 무용수의 실력과 호흡은 매우 대단했다. 서커스처럼 고난도의 동작과 완벽한 호흡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춤의 소품이 무대 소품이 되는 과정을 보면서 영화 ‘기생충’의 명대사 ‘넌 계획이 다 있구나.’ 가 떠올랐다.


인간의 힘으로 종이 흔들리던 모습은 디지털 기술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생동감이 넘쳤다.


‘괴로워’ 넘버가 있는 씬에서는 페뷔스의 내적갈등을 춤과 조명으로 표현한 것을 보면서 이것이 진정한 몸짓의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하는 배우와 무용수는 분명 다른 사람인데도 그 두 사람이 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뮤지컬 관람 경험이 많은 건 아니지만, 인간의 내적갈등을 가장 세밀하게 그린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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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한 여자를 향한 세 남자의 사랑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신분부터 성격까지 모두 다른 클로드 프롤로 주교, 종지기 콰지모도, 근위대장 페뷔스 드 샤토페르는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에게 첫 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세 남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에스메랄다를 사랑했다. 각각 다른 사랑방식은 세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를 나타냈다. 그 중 프롤로는 세 남자 중 가장 악한 인물이었으며, 비극적이었다.


프롤로는 에스메랄다를 사랑하게 되면서 욕망을 마주하여 괴로워한다. 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릇된 방식으로 분출하려는 자신의 죄를 애써 외면했다. 그리고 에스메랄다 탓으로 돌렸다. 그는 에스메랄다를 사랑하면서 권력으로 그녀를 가두고, 소유하려했다.


신분으로 천한 사람과 천하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했다. 천한 사람은 ‘악’이라고 합리화하며 위선을 떨었다. 신의 뜻을 가장 잘 따라야 할 인물이 자신의 죄를 남에게 덮어씌우고, 평등을 어겼다. 그는 사랑에 빠지기 전부터 주교 자격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의 삶은 에스메랄다와 프로도의 삶보다 더 비극적으로 느껴졌다.


이야기는 결국 에스메랄다와 콰지모도의 희생과 사랑을 천한 신분을 가졌다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한 채로 끝났다. 속상하고 억울했다. 나라도 인정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다른 관객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종교의 시대였던 만큼 평화로울 것 같았던 그들의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허술한 부분도 군데군데 보였지만, 생각할 것들이 많은 좋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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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을 보고 나면, 유명한 작품을 늦게 봤다는 아쉬움이 더 커질 줄 알았다. 예상외로 아쉬움은 사라지고, 시기적으로 잘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장 무대는 한계가 있으며, 디지털 기술을 접목 시킨 무대가 더 화려하고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본 ‘노트르담 드 파리’의 무대는 생각을 전환시켜줬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내한 공연을 관람한 것은 터닝포인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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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득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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