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언어 해체쇼' : 초현실주의 거장들 展 [전시]

언어를 무력하게 만드는 그림들
글 입력 2021.12.23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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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 포스터_1108.jpg

 

 

최근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인간의 언어는 자의적 약속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깰 수 있다.


 

백번 맞는 말이다. ‘활자가 인쇄된 종잇장을 묶어 펴낸 정보전달 매체’를 꼭 ‘책’이라고 불러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당장 영어만 봐도 ‘책’을 ‘book’이라고 부른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너무나 쉽게 망각한다. 내가 알고 있는 언어가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이 웬만해서는 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공유하는 언어를 진리처럼 여기고, 체화하며, 안주한다.

 

하지만 만약 언어가 통하지 않는 세계로 들어간다면? 단순히 '책'이 'book'이어서 못 알아듣는 차원을 넘어 '바나나'가 '사랑'이고, '소세지'가 '책'이고, '책상'이 '물방울'로 불리는 이상한 세계에 들어간다면 당신은 기분이 어떨 것 같은가? 이 기괴한 일이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화폭에서는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다.

 

 

 

'언어 해체쇼'


  

이미지12_살바도르 달리-아프리카의 인상.jpg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

아프리카의 인상(Impressions d'Afrique), 1938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91,5 x 117,5 cm

ⓒ Salvador Dalí, Fundació Gala-Salvador Dalí, SACK,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가령 위 작품을 보자. 살바도르 달리는 이 작품에 '아프리카의 인상'이라는 제목을 붙여 주었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면 뭔가 이상하다. 아프리카의 인상이라면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프리카의 인상'을 떠올릴 때 반드시 필요한 '흑인'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백인에 가까운 모습을 가진 인물들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희생을 상징하는 십자가라든가 전쟁을 상징하는 총처럼 딱히 우리가 '해석'할 수 있을 만한 전형적 상징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이미지15_르네 마그리트-붉은모델III.jpg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

붉은 모델 III(Le modèle rouge III), 1937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83 x 136 cm

© René Magritte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이 작품은 또 어떤가? 필자가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마주친 작품이기도 한데, 제목이 무려 '붉은 모델 III'다. 필자는 이 작품의 제목을 보고 순간적으로 내게 숨겨진 색맹 기질이 있었는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만 했다. 작품 어디에도 내가 아는 '붉은' 기운이 없었기 때문이다. 함께 전시를 보던 동행인의 입으로 나의 눈이 정상적으로 기능한다는 것을 확인받고 나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시장 내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작품의 생김새를 소개하지는 못하지만, 뒤샹의 '산토끼로부터 보호받는 어린 벚나무' 표지 디자인 역시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이쯤 되면 누구라도 예상 가능하겠지만 이 작품에 산토끼 혹은 벚나무는 단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자유의 여신상과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얼굴을 합성해 놓은 기괴한 이미지가 표지를 가득 채우고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세간의 단어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따라야 할 기존 약속을 모두 뒤엎음으로써 언어의 권위를 조롱한다. 그들은 자신의 그림으로써 '언어 해체쇼'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관람객들은 초현실주의 작품들을 통해 속세의 모든 언어적 약속이 통하지 않는 화폭 속에서 언어의 권위가 어떻게 분해되는가를 목격할 수 있다. 이들의 그림 앞에서, 언어는 힘을 잃는다.

 

 

 

너무나도 현실적이라 초현실이다



이미지10_살바도르 달리-태양열 테이블.jpg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 

태양열 테이블(Table solaire), 1936

판넬에 유채, 60 x 46 cm

ⓒ Salvador Dalí, Fundació Gala-Salvador Dalí, SACK,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그리고 필자는 본 전시를 통해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현실의 논리를 사용한다고 해서 초현실주의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너무 현실적이라서 초현실이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살바도르 달리의 '태양열 테이블'이 좋은 예다.

 

이상하고 기괴한 형체들이 화폭을 가득 메워 마치 그림책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여타 초현실주의 작품들과 달리, 이 작품은 사진같이 선명한 색감과 현실적인 빛 표현을 자랑한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현실의 논리에 순응하지 않고 있다. 까까머리 소년의 발은 부자연스러우리만치 선명한 윤곽선을 가지고 있다. 현실이라면 마땅히 존재했을 그림자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미지21_르네 마그리트-금지된 재현.jpg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 

금지된 재현(La reproduction interdite), 1937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81 × 65,5 × 2 cm

© René Magritte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전시 메인 포스터를 꿰찬 '금지된 재현' 역시 현실성을 높이는 표현 기법을 사용했다. 대리석의 무늬와 사람의 머릿결은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선명하다. 하지만 우리 모두 이것이 현실을 넘어선 차원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광경임을 알고 있다. 현실에서는 절대 존재할 수 없는ㅡ금지된ㅡ재현이 거울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논리를 따른다면 거울은 사람의 뒤통수를 재현해서는 안 된다.

 

 

 

에필로그: 언어와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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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

유리 집(La maison de verre), 1939

종이에 과슈 gouache on paper, 114 x 146 cm 

© René Magritte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사실 '언어'가 가장 중요하게 기능하는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예술이다. 시나 소설처럼 언어 그 자체가 예술이 되는 경우도 있거니와, 예술 작품들은 창작 의도를 얼마나 잘 (언어로) 표현하는가에 따라 수천 억 원의 가치를 호가하기도, 그저 그런 작품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예술가들이 입을 모아 '실력도 실력이지만 글을 잘 써야 성공한다'고 증언하는 이유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보여준 과감한 일탈은 매우 큰 의의를 지닌다. 그들은 예술 작품의 가장 중요한 언어라고 볼 수 있는 '제목'과 '상징'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다. 작품 사이의 공간이 부족해 두 개 이상의 작품 제목이 서로 붙어 있기라도 하면 이것이 어느 작품의 제목인지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다. 그들은 원래대로라면 '미'를 상징했을 비너스 동상을 가져다가 대뜸 서랍으로 변형해버리는 등살바도르 달리,  <서랍이 있는 밀로의 비너스> 일반적으로 쓰이는 상징 체계도 모두 파괴했다. 또한 그들은 '회화'라는 표현법에 갇히지 않고 조각상, 책, 그림, 공예품, 영상, 사진, 콜라주 등 매우 다양한 표현법을 동원해 인간의 언어에 맞서 싸웠다.

 

다만 이처럼 언어와의 연결고리를 끊어 버린 작품들은 나와 같이 제목에 기대어 작품 감상의 실마리를 겨우겨우 찾아가는 예술 초심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쥐약이라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벽지가 뜯겨진 벽면을 살갗이 찢긴 피부에 빗댄 르네 마그리트의 '출혈'과 같이 기존 언어로 어느 정도 해석이 가능한 작품도 일부 존재하니 전국의 예술 초심자들은 절망하지 말고, 언어의 무중력 상태에 발을 들여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길 바란다. 어쩌면 작품들은 인간 보편의 언어 대신, 당신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특수 언어로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컬쳐리스트 프로필.jpg

 

 

[백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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