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과도기에 오른 히어로물이 모범적으로 작별하는 방법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영웅의 트라우마와 악당의 결핍을 해소하다
글 입력 2021.12.23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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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냉정하기로 유명한 미국 평론가 사이트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에선 신선도 90%를 달성했고, 이동진 평론가는 국내 영화 DB 사이트 왓챠피디아에 5점 만점 4점의 평점을 남겼다. 완성도 있는 예술영화가 아니고선 받기 힘들만한 점수를 프랜차이즈 상업 영화가 기록한 것이다.

 

한때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게 “마블 영화는 시네마가 아니”라는 혹평까지 받았던 마블표 히어로물, 대체 노 웨이 홈은 어떻게 이런 찬사를 받은 것일까.

 

 

※ 영화에 대한 강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 편의상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노 웨이 홈>으로 지칭합니다. ※

 

 

2년 전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의 결말은 충격적이었다. 악당 미스테리오가 스파이더맨의 정체를 대중에 공개해버린 것.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선 이후 일상생활이 어려워진 그의 모습을 담는다.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피터는 시민들의 과도한 관심과 비난에 시달리고, 그의 친구들은 스파이더맨의 지인이란 이유로 대학 입학을 거부당한다. 피터는 닥터 스트레인지를 찾아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 피터 파커를 기억하지 못하게 해주세요!’라는 마법 주문을 부탁하지만, 방해로 인해 주문은 틀어지고 피터의 세계관엔 균열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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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진 멀티버스 틈새로 그들이 등장한다. 오리지널 스파이더맨의 악당 ‘그린 고블린’과 ‘닥터 옥토퍼스’, 그리고 ‘샌드맨’.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악당 ‘리자드’와 ‘일렉트로’까지.


악당이 출몰한 곳엔 곧 영웅이 등장한다. 1대 스파이더맨 토비 맥과이어와 그 뒤를 이은 앤드류 가필드.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이렇게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모든 인물들이 <노 웨이 홈>에서 모였다.


(토비 맥과이어를 오리지널 피터, 앤드류 가필드를 어메이징 피터, 톰 홀랜드를 뉴 피터라 통칭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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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약해진 악당들


 

재등장, 혹은 부활한 악당들은 거의 힘이 없다. 독기어린 사악함은 어디 가고 그저 평범하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초대 악당 그린 고블린의 노먼 오스본 박사는 비루한 노숙자 행색으로 등장한다. 그는 정신이상자이며 몰래 테이블 위의 빵을 훔칠 정도로 굶주려 있다. 고가도로를 파괴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던 닥터 옥토퍼스 또한 마찬가지다. 그의 살벌한 무기(문어발)는 스파이더맨의 나노 수트(아이언맨이 선물했던)에 시스템을 해킹 당해 금세 굴복 당한다. 이후 등장하는 리자드, 샌드맨, 일렉트로 역시 비교적 쉽게 제압돼 지하 감옥에 갇힌다.


우리의 가장 어린 주인공 뉴 피터 파커는 다소 무모한 결심을 한다. 그들을 본능적인 악의 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그는 아이언맨이 남긴 첨단 과학기계를 이용해 악당들의 문제점을 연구한다. 예를 들면 닥터 옥토퍼스는 척수에 연결된 칩이 손상되었기 때문에 촉수를 제어할 수 없었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자연스레 성격이 괴팍해졌다는 것. 피터는 근사한 새 칩을 만들어 교체해주고 닥터 옥토퍼스는 간만에 머릿속 잡음이 사라졌다며 평온한 얼굴을 한다.


이 같은 피터의 노력으로 악당들은 하나 둘 갱생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대규모 전투가 있긴 했지만 심각한 부상이나 희생자는 없었다. 일렉트로는 스파이더맨에 대한 열등감으로, 샌드맨은 딸에 대한 절실한 부성애로, 그린 고블린은 통제되지 않는 악의 힘 때문에 모두 잠시 ‘빌런처럼’ 보였던 것뿐이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광기를 인정하고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몸을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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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를 번복할 기회


 

일그러진 마음에 대한 정화는 악당에게 뿐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건 ‘선배 스파이더맨’들이었다. <노 웨이 홈>은 그들에게 각자의 실수를 번복할 ‘기회’를 준다.


뉴 피터는 선배들이 처했던 위험을 똑같이 겪고 괴로워한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메이 큰엄마를 잃고 살의에 사로잡혔을 때, 이미 벤 숙부를 잃어봤던 오리지널 피터는 그의 폭력성을 온몸으로 막아 잠재운다. 뉴 피터가 높은 곳에서 떨어진 여자친구 MJ를 놓쳤을 땐 어메이징 피터가 활약한다. 그의 여자친구 그웬은 추락사했었지만 이번엔 MJ를 붙잡아 살린다.


소중한 사람을 ‘나 때문에’ 잃었다는 지독한 죄책감. 긴 시간 괴로워했던 그들에게 스스로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계제를 준 것이다.


<노 웨이 홈>의 목적은 사회를 위협하는 악당, 그것을 처단하는 영웅이 아니다. 모든 인물에게 정신적인 해방과 위로를 건네는 것이다. 스스로 옥좼던 속박과 억압으로부터 말이다. 무한한 애정, 혹은 애증이 깃들었던 인물들에게 자유를 선사하는 것이야 말로 수십 년을 함께 한 팬들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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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착한 영웅


 

한편 <노 웨이 홈>은 영웅의 존재 이유를 다시금 되짚어주기도 한다. 영화 속 뉴 피터는 지나치게 착하다. 굳이 악당들을 살리기 위해 위험을 감수한다. 그린 고블린의 비꼼처럼 그는 너무나 선하고 쓸데없이 도덕적이다.


무모하고 손해 보는 일을 감수하는 것, 누군갈 위해 기꺼이 내 삶을 바치는 것, 좌절된 상황에서도 일말의 희망을 가지는 것. 답답할 정도로 이타적인 뉴 피터의 행실은 ‘그럼에도’ 우리가 지향해야 할 올곧은 선의 기준을 보여준다.


이타심은 모든 히어로들의 기본이다. 다만 개인의 이익과 신념을 위해 흔들렸던 히어로들이 다수 있었고, 우리는 그런 것을 인간적이라 느끼곤 했다. 성인 히어로들 사이 유일한 10대 청소년 히어로인 뉴 피터는 어리숙하지만 순진하다. 가끔 철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이타심은 가장 흔들림 없다.


이에 대한 증거로 뉴 피터는 마지막 결정을 내린다. 자신의 존재 사실을 포기하는 것. 이젠 누구도 그를 알지 못한다. 대학에 입학한 친구들의 행복에 낄 수도 없다. 뉴 피터의 씁쓸한 웃음을 영화는 끝이 난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불행을 ‘선택’하는 것.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이란 야유를 받는다 하더라도 이게 바로 히어로 영화의 본질일 것이다. 아둔할지언정 올곧고 선한 사람이 한 명 쯤은 이 세상에 남아있다는 희망 말이다. 아마 아이들은 그런 가치를 안고 자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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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을 만족할만한 작별인사


 

팬들에겐 영화의 모든 순간이 살아있다. 수십 년이 지나도 영웅의 상처와 악당의 비참한 최후는 가슴 속에 남아있다. 코믹스(만화) 스파이더맨이 세 명의 청년배우들을 거쳐 수차례 실사화 될 동안, 세련된 마블 세계관 속 그 가능성이 무한히 확장될 동안, 누군가는 분명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노 웨이 홈>은 ‘아픈 손가락’이었던 그들을 충분히 보듬어주고 예우해줬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말할 수 있다.


분명 영화의 단점도 존재할 것이다. 이제 마블은 ‘아는 놈만 데려 간다’는 전략을 사용하며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한 이를 배척하고, 과격한 세계관 확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았던 시리즈물을 적절한 방식으로 재통합했다는 것. 팬들이 다시금 이 영화를 애정 할 수 있게 해줬다는 점에서 프랜차이즈 히어로물의 모범적인 작별 방식이 아닐까 싶다. 팬의 입장에선 그 어느 때보다 고마운 영화였음이 틀림없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Spider-Man: No Way Home), 존 왓츠, 2021,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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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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