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위대한 이야기는 영원한 가려움 -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도서]

글 입력 2021.12.22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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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로 소설을 처음 배운 사람에게 단편소설이란 줬다 뺏은 장난감 같은 존재였다. 특히나 어렸을 땐, 뭉텅한 이야기 사이의 여백과 생략된 묘사가 불친절하다며 단편소설이라면 펼쳐 보지도 않고 멀리하기도 했다.

 

단편의 묘한 매력을 알게 된 건 스무 살이 지나고 책 읽기를 의무가 아닌 취미로 느끼기 시작한 후였다. 자투리 시간에도 흐름이 끊기지 않고 읽을 만한 책을 찾다 최은영 작가님의 <쇼코의 미소>를 만났다. 넘긴 페이지는 짧았지만 긴 여운이 오래도록 따라왔다. 불친절하다고 여겼던 여백에 대해 한참을 궁금해하다가 내 나름의 이야기를 덧붙이는 과정이 재밌어졌다.

 

이런 단편소설의 매력을 처음 알게 해 준 최은영 작가님께서 이 책의 추천사를 쓰셨다니 안 봐도 벌써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의 첫 장을 넘겼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문학잡지, <파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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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리히텐슈타인이 작업한 <파리 리뷰>

 

 

<타임>으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문학잡지"라고 평가받은 파리 리뷰는 1953년 파리에서 처음 창간된 후, 다양한 작가와 그들의 작품들을 소개해왔다.

 

오늘날, 우리가 익히 아는 하루키와 밀란 쿤데라, 헤밍웨이까지 다양한 작가들이 파리 리뷰를 통해 그들의 작품과 자신의 이야기를 선보일 수 있었다.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는 파리 리뷰가 발표한 단편 중에서도 열다섯 명의 작가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라고 꼽은 작품들을 엮어 낸 책이다.

  

그렇다 보니 저마다 색채와 개성이 뚜렷하고 작품과 작품 사이의 거리감이 있는 편이다. 한없이 우울해지는 묘사에 물먹은 솜처럼 내려앉는 기분을 느끼다가 그다음 소설로 넘어가선 예리한 묘사에 대뜸 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다. 열다섯 개의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하니 다소 정신없기도 했지만 그만큼 지루할 틈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단언한다.

 

작품뿐 아니라 책의 형식도 조금 독특하다. 소설을 쓴 작가에 대한 소개만 있는 여느 책들과는 달리 이 책엔 소설을 꼽은 작가에 대한 소개와 그들의 해제도 함께 실려 있다. 단편 소설의 여백에 살을 붙이고 온전히 소화해 내기까지 여전히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인데 작품 끝에 달린 작가들의 해제가 그 과정을 한결 편하게 해줬다. 어떻게 소설을 바라볼지에 대한 좋은 본보기가 있다는 게 얼마나 반가운 일이었던지!

 

 

 

위대한 이야기는 영원한 가려움



여러 작가들이 달아 둔 해제 중에서도 소설 <춤추지 않을래>를 추천한 데이비드 민스가 쓴 해제는 소설 작품만큼이나 큰 여운과 공감을 주었다.

 

 

"위대한 이야기는 영원히 긁어야 하는 가려움과 같다. 이런 이야기는 전형적이면서 특별한 감정을 영원히 안겨준다. 우리에겐 대답보다 더 많은 질문이, 질문보다 더 많은 대답이 주어진다."

 

107p.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그가 소개한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춤추지 않을래>는 고작 다섯 장 분량으로 온갖 가구를 팔기 위해 마당에 내놓은 젊은 남자와 길을 지나다 그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는 소년, 소녀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독자는 그 이상의 감정과 이야기를 수용하게 된다.

 

소설은 "여자애는 계속 말했다. 모두에게 말했다. 뭔가 더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다 말로 할 수는 없었다. 얼마 후 여자애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로 끝을 맺지만, 독자는 그 이후를 상상하는 걸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백으로 남겨둔 그들 사이의 이야기가 손톱 옆 거스러미처럼 계속 신경 쓰이고 오래도록 독자의 마음에 잔류한다.

 

"위대한 이야기는 영원한 가려움"이라는 데이비드 민스의 표현은 비단 <춤추지 않을래> 뿐 아니라 모든 단편 소설을 관통하는 설명이지 않을까 싶다.  다른 열네 개의 소설 중에는 <춤추지 않을래>보다 더 긴 소설도, 그와 비슷한 분량의 소설도 있었지만 마지막 장까지 읽은 후에도 마음속에 몇 가지 물음표를 남긴다는 점에서 모든 소설이 똑같았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이야기가 시작하는 <어렴풋한 시간>을 읽고는 이제껏 누군가의 온기를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던 '멜이 달리고 달린 끝엔 무엇이 있을까? 멜이 살아가는 동안 안정과 행복을 맛볼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이야기의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방콕>에서 헤어진 두 남녀 사이의 대화를 따라가면서는 '안정적인 삶을 선택한 대신 발생한 기회비용으로 무엇이 있었을까?'라는 물음에 대해 고민했다.

 

자신의 실체 일부를 대가로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남기기 위해 거래하는 주인공의 이야기 <스톡홀름행 야간비행>은 다소 충격적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흥미로웠다. 글을 읽는 내내 혹시 나도 '별 효과 없는 세부 묘사'로 글을 채우고 '아주', '진정', '순전히', '정말로' 같은 의미 없는 단어로 강조하는 글을 쓰고 있지는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되묻게 되었고 탐욕과 덜어냄에 대한 생각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같은 이야기를 읽더라도 저마다 마음에 품게 될 물음과 그에 대한 답은 다를 것이다. 간결한 묘사와 짧은 문장, 함축된 줄거리 사이에서 저자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읽어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빈 공간을 오롯이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어떤 해석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단편 소설은 시와 비슷한 매력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형식과 내용, 모든 부분에서 톡톡 튀는 개성이 돋보이는 열다섯 편의 뛰어난 단편을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는 책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을 통해 단편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단편의 매력을 익히 알던 사람도 그 매력에 흠뻑 빠져볼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한다.

 



[이영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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