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평범한 것은 없다 - 초현실주의 거장들 [전시]

초현실주의 거장들-로테르담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 걸작전에 가다
글 입력 2021.12.1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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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산업화로 사회의 기틀이 흔들리고 있을 무렵 태동한 초현실주의. 20세기 초 등장한 이 사조는 꿈과 현실, 즉 무의식과 실제 세계의 관계를 기묘하게 비틀고 우리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현대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기이한 것은 언제나 아름답고, 기이한 것은 모두 아름다우며, 사실 기이한 것만이 아름답다.”

 

앙드레 브르통, 1924

 

 

앙드레 브르통이 1924년 초현실주의 선언문을 발표하며 시작된 초현실주의는 이후 마르셀 뒤샹,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만 레이, 막스 에른스트, 이브 탕가 등 다양한 작가들이 등장하며 더욱 풍성해졌다.


이번 전시는 총 6가지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섹션 1과 2에선 초현실주의의 등장과 일상 오브제를 이용해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시킨 다다이즘에 대한 내용을 다뤘다. 섹션 3과 4에선 꿈과 무의식에 대한 초현실주의 거장들의 표현 방식, 특히 자동기술법(오토마티즘)이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만나볼 수 있다. 섹션 5는 초현실주의자들이 생각한 사랑과 욕망에 대해서, 섹션 6은 익숙한 이미지와 사물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모아둔 작품들이 전시된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세 작품은 각각 달리와 벨머 그리고 마그리트의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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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구름이 가득한 커플 (Couple aux têtes pleines de nuages), 1936

판넬에 유채

98,5 x 77 x 4,5cm(L), 87,5 x 72,4 x 4,5cm(R)

ⓒ Salvador Dalí, Fundació Gala-Salvador Dalí, SACK,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먼저 살바도르 달리의 <머리에 구름이 가득한 커플>이다.


연인으로 추정되는 이 두 형상은, 그 내부가 구름과 외부 풍경으로 가득 차 있다. 커플이 함께 여행을 떠났다고 상상해보자(아니면 함께 여행을 가는 자신들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카페, 멀리엔 섬이 보이고 구름은 어지러이 날린다. 커플은 여행지에서의 낯선 경치를 눈에 담는다. 달리는 커플의 그 순간을 마치 CT나 MRI를 찍듯 포착해낸다.


마음에도 온통 그것이 들어온 순간. 생소한 장소, 온갖 감각이 곤두선다는 느낌을 받을 때 과연 우리 마음의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외부의 모습 그대로 우리의 마음속에 복사되지는 않을 거다. 내 마음의 모양에 맞게 외부의 시각적 자극은 다르게 형상화될 테니까 말이다.


달리가 평생을 사랑했던 그의 뮤즈 갈라. 둘의 사랑은 뜨거웠으나, 불륜 문제 등 갈등도 많았다. <머리에 구름이 가득한 커플>이라는 제목처럼, 갈라와의 장밋빛 미래를 꿈꾸면서도 동시에 엄습하는 불안감을, 달리는 하늘에 걸려있는 먹구름 한 조각으로 표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관계의 결말을 알고 있으면서도 둘의 행복을 빌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무슨 연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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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그림은 한스 벨머의 <인형>이다.


섹션 5의 한구석에는 한스 벨머의 사진만이 따로 전시되어 있다. 그의 대표작 <인형> 시리즈가 쭉 나열되어 있었는데, 그 이미지의 기묘한 뒤틀림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절단된 신체를 연상케 하는 인형의 기이한 모습에 불쾌감까지 밀려든다.


이런 불쾌감은 그의 작품이 나치가 주창했던 ‘아리아인의 완벽한 신체’에 대한 비판의 연장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일부나마 해소된다. 비록 그의 작품이 여성의 신체에 대한 노골적인 관음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도 있지만, 오히려 그 관음적 시선마저 거부감이 들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게 다가온다.


이처럼 작품을 보며 느끼는 섬뜩함과 오싹함마저 모두 예술로 승화하는 한스 벨머의 사진은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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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려진 젊음 (La jeunesse illustrée), 1937

캔버스에 유채

184 x 136 cm

© René Magritte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마지막은 르네 마그리트의 <젊음>이다.

 

젊음이라는 제목이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 굽이치는 도로에 다양한 사물들이 펼쳐져 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술이 들어있을 거라 짐작되는 오크통이다. 그 뒤를 이어 토르소, 사자, 당구대, 금관악기, 자전거 등이 펼쳐져 있다.


작품을 감상하면 자연스레 술에 취하고, 육체미에 빠지고, 도박/게임에 몰두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마그리트는 작품을 통해 취향과 욕망을 좇는 청춘의 모습을, 마치 인생길을 걸어가며 마주하게 될 하나의 시기일 뿐이라고 눙쳐버린다.


자신의 지난날을 회고하는 그의 애수 어린 시선이 초록 평원과 푸른 하늘을 관통하는 순간, 우리 역시 인생의 이정표 어디쯤 와있는 걸까 생각해보게 된다.

 

 

"세상은 바뀌었다. 이제 더는 평범한 것은 없다."

 

폴 누제, 1931

 


이처럼 ‘초현실주의 거장들’ 전시에선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것이 평범한 이유는 그것을 향한 당신의 시선이 평범하기 때문이라는, 초현실주의 거장들의 도발적인 말에 귀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

 

이번 전시는 내년 3월 6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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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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