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판소리 보여드립니다: 힙하게 잇다 조선 판소리

글 입력 2021.12.12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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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을 뛰어넘어 한국적인 것이 가장 힙스러운 것을 몸소 보여주는 이 표지를 보아라! 이 처자는 과연 어떤 음악을 듣고 있는 것일까? 헤드셋을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을 엿듣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요즘 유행하는 스우파의 <헤이 마마>를 듣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인기 차트 탑 100? 힙합을 듣는 걸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던 찰나 나는 보고 말았다. 이 책의 제목을! 아니, 판소리였어?

 

판소리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한복, 북, 부채,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추임새 등등. 이 모두의 공통점은 '예스럽다'일 것이다. 판소리하면 예스러운 것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다소 지루하다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 살면서 내가 굳이 판소리를 찾아 듣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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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힙하게 잇다 조선 판소리>는 대중이 미처 몰랐던 판소리의 진짜배기를 맛볼 수 있도록 실제 소리꾼인 저자가 판소리를 향한 애정을 담뿍 담아 엮어낸 책이다. 저자 본인조차 처음 판소리를 접했을 때보다 지금 더 그 매력을 물씬 느끼고 있다 말할 정도로, 무궁무진한 다이내믹을 가지고 있는 판소리의 진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이 판소리를 넘어 국악과 대중이 만나는 '다리'가 되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판소리는 사실 단순한 음악이 아니다. 이야기와 연기, 추임새 등이 한데 어우러진 종합 예술 장르이다. 따라서 저자는 '스토리텔링'의 방식으로 판소리를 설명한다. 판소리에 들어 있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 이야기의 시작은 《수궁가》이다. 별주부전으로 잘 알려져 있는, 토끼의 간을 구하기 위해 육지로 모험(?)을 떠나는 별주부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판소리이다.

 

저자는 먼저 《수궁가》의 제목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별주부가》, 《토끼가》도 아닌 《수궁가》라는 제목은 궁극적인 이야기의 발단이 수궁이라는 점 즉, 이 모든 일은 용왕이 아파서 발생하게 되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말한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토끼가 꾀를 써서 육지로 무사귀환한다는 결말이 본디 이야기의 끝이 아님을 알고 있었는가? 용궁에서 벗어난 토끼는 살아돌아오자마자 아이들이 쳐놓은 그물에 걸리고 독수리의 먹잇감이 될 뻔하는 등 또다시 목숨을 잃을 위기에 놓이게 된다. 토끼는 과연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수궁가》를 통해 확인해 보시길!

 

《흥보가》를 해석한 것도 흥미로웠는데, 저자는 《흥보가》를 통해 당대 가부장적인 유교 문화에 대한 반발심을 읽어내었다. 형인 놀부는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닌 그저 첫째라는 이유로 집안의 재산을 상속받아 부자가 되었다. 반면에 동생인 흥부는 단지 둘째라는 이유로 상속의 기회에서 박탈당하고 가난한 살림을 꾸려가야만 했다.

 

저자는 판소리의 해학적인 측면을 언급하며 《흥보가》는 대표적으로 이 같은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웃음으로 비꼬는 작품이라 소개한다. 흥겨운 판소리에 권선징악이라는 키워드를 더해, 당시의 부조리한 사회를 향한 비웃음을 날리고 있다는 것이다. 깊이 있는 판소리의 통찰이 너무 놀랍지 않는가?

 

이 밖에도 《춘향가》, 《심청가》 등 다양한 판소리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확실히 전문가의 입을 빌려 그런지 몰라도 굉장한 몰입감을 자아내는 이야기들이 술술 읽혀내려간다.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인 양, 나의 마음속 판소리가 언제나 즐거운 콘텐츠였던 것인 양 판소리에 빠져드는 나 자신이 나조차 새삼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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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다양한 콜라보레이션 및 예술가들의 활동으로 판소리, 그리고 국악이 전보다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동일한 클래식임에도 불구하고, 국악과 서양의 클래식을 대하는 태도에는 아직 차이가 있다. 벨소리를 판소리로 해놓은 사람을 본 적 있는가? 배경음악으로 클래식을 듣는 사람은 많아도 국악을 듣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스토리텔링으로서 판소리를 소개하는 저자의 행보가 무척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음악이라는 틀 안에서 설명할 수 있는 한계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판소리를 제대로 즐기고자 한다면, 그 속의 '이야기'를 충분히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소리의 코어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의 희로애락, 삶을 보는 예리한 통찰이 블랙코미디를 닮은 판소리 고유의 흥을 자아낸다고 생각한다.

 

책에서도 일부 소개하고 있긴 하지만, 각 판소리의 대목 대목이 무척 궁금해졌다. 대목마다의 이야기가 어떻게 판소리화되었을지 찾아 듣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그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하는 과정도 흥미로운 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친절하지만 깊이 있는 판소리 입문서, 책 <힙하게 잇다 조선 판소리>.

 

대중과 판소리, 나아가 국악 사이의 가교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땅! 땅! 땅!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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