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하이틴의 껍질을 깨고 나온 '유포리아' [드라마]

HBO 미드 <유포리아> 감상기
글 입력 2021.12.10 13:5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소설 <데미안> 中

 

 

방황하고 고뇌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지침서, <데미안>. 이젠 너무 많이 인용되어 식상하지만, 청춘이 겪는 성장통의 의미를 저 구절만큼 잘 표현한 문장은 아마 없지 않을까. 작중 언급되는 선과 악의 모습을 동시에 가진 신, 아브락사스는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가 추구해야 할 이상적 표상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어쩜 아브락사스는 선한 세상을 지향한다면서도, 온갖 유혹과 악이 판치는 우리네 사회와 더 닮아있는지도 모르겠다. 모호한 선과 분명한 악이 공존하는 우리 사회에 짓눌린 청춘들은 싱클레어처럼 어디로 갈지, 그 키를 잡지 못하고 있다.

 

 

[꾸미기][크기변환]ㅇㅇ.jpg

<유포리아>의 출연진들


 

그렇다면 2020년을 사는 싱클레어와 데미안은 어떤 모습일까. HBO 미드 <유포리아>는 지금 현재, 10대 청소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이다. ‘약물과 성, 트라우마, 범죄 그리고 소셜 미디어가 가득한 세상 속에서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10대 청소년들의 이야기’라는 시놉시스에서 알 수 있듯, Z세대가 겪고 있는 여러 사회 문제들이 스크린에 곧잘 녹아든다. 위태로울 정도로 선과 악 사이 주춤하는 <유포리아> 캐릭터들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지나왔던 그 시기의 불안함과 처연함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구원이었듯 서로가 서로의 구원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유포리아>의 중요한 순간들을 함께 되짚어보자.

 

 

*
내용 중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프닝의 매직과 재해석



한 캐릭터의 삶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유포리아>의 오프닝 시퀀스

 

 

<유포리아>의 오프닝은 한 인물의 삶을 요약해 보여준다. 주인공 루(젠데이아 콜먼)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이 오프닝은 캐릭터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지나온 발자취에 대해 탐구한다. 불법 성관계 영상 유출로 인해 현실 세계의 자아보다 온라인 세계의 ‘나’를 더 인정받는 캣(바비 페레이라)-3화, 사랑과 폭력이 뒤섞인 네이트와의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는 매디(알렉사 데미)-5화, 늘 촉망받는 미식축구 유망주였지만, 대학에 가서 입지가 흔들리며 방황하는 맥케이(알지 스미스)-6화, 부모 관계의 파국으로 인해 건전하지 못한 연애를 지속해온 캐시(시드니 스위니)-7화까지.

 


[꾸미기][포맷변환][크기변환]사진3.jpg

<유포리아>의 등장인물, '네이트'와 그의 아버지 '칼'

 

 

각 등장인물의 전사(前史)를 설명하며 <유포리아>는 입체적인 캐릭터를 구축해낸다. 특히, 미식 축구부 주장이자 잘생긴 외모를 가진 전형적인 하이틴 주인공 캐릭터 네이트를 색다른 방식으로 조명하는 점이 흥미롭다(2화).

 

대표작 <키싱 부스>의 ‘노아’로 하이틴 스타의 입지를 다진 제이콥 엘로디는 비슷한 캐릭터를 맡았으면서도, <유포리아> 속 네이트가 지닌 양면성을 제대로 살려 연기한다. 남성성을 지나치게 강요하고, 유약한 형과 항상 비교해 자신을 평가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네이트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소위 잘 나가는 학생이 된다.

 

그렇지만 강압적인 교육과 어렸을 적 아버지의 책상 서랍에서 발견한 아버지의 섹스 영상(게이와 트랜스젠더를 만나 관계를 맺고 그걸 영상으로 남긴다)을 본 경험 탓인지 자신의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다. 여자친구인 매디와의 관계 역시 폭력을 동반하고, 자신이 곤궁에 처해있을 때도 폭력과 협박, 회유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하이틴의 재해석이라고도 볼 수 있는, 작품의 빌런 네이트는 위험하지만 그래서 더 매혹적이다.

 

 

 

세상에서 너 빼고, 나머지는 다 싫어



[꾸미기][크기변환]euphoria-review-hbo.jpg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인 '루'와 '줄스'

 

 

<유포리아>의 주인공 루는 마약 중독자다. 재활원에서 여름방학을 보낸 루는 집으로 돌아와도 마약을 계속한다. 그러다 동네에 새로 이사 온 줄스(헌터 샤퍼)를 만나 둘도 없는 친구가 된 이후, 약을 끊기 위해 노력한다.

 

줄스는 트랜스 여성으로 루가 금단 증상에 힘들어할 때마다 옆에서 힘이 되어주지만, 그 자신도 혼란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어머니가 자신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일 때문에 알코올 중독 치료를 끝낸 어머니가 찾아와도 만나보지 않으며(자신의 성전환을 지지해준 아버지와 살고 있었다) 데이팅 어플로 끊임없이 새로운 남자를 만난다.

 

어플을 통해 대화한 타일러라는 남자와 진지한 관계를 맺으려는 줄스의 모습에 루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

 


마음을 확인하는 '루'와 '줄스'

 

 

타일러와 한밤중 호수에서 첫 만남을 가지기로 했다며 설레하는 줄스를 보며, 루는 낯선 남자를 위험한 장소에서 만나지 말라고 경고한다. 소중한 친구에게 지지받고 싶었던 마음을 몰라준 루에게, 줄스는 기분이 상해 집으로 돌아가 버린다. 루는 안절부절하며 줄스의 집으로 찾아가, 자신의 행동을 사과한다.

 

앞선 일에 대해 화해하며 “세상에서 너 빼고, 나머지는 다 싫어”라는 줄스의 고백에 루는 사랑을 느끼고 줄스에게 키스한다. 자신도 모르게 입을 맞추고 당황하며 황급히 떠나는 루와 그의 키스에 복잡한 감정이 드는 줄스의 모습에서 어느새 친구 이상의 관계로 발전한 그들의 애틋함이 드러난다.

 

너무나 사랑하는 이 관계가 서로의 깊은 심연을 마주하고서도 유지될 수 있을까. 부디 서로가 힘이 되어 앞에 있을 험난한 암초를 무사히 피해 가길 간절히 빌어 본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


 

<유포리아> 시즌 1의 엔딩

 

 

친구도 연인도 아닌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줄스와 루.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고향으로 간 줄스는 거기서 새로운 인물 애나를 만나게 되고, 그의 자유분방함에 끌리게 된다. 루는 줄스가 애나에게 빠졌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둘이 함께 이 마을을 떠나자 제안한다.

 

둘은 짐을 챙겨 기차역으로 향하지만, 두고 온 어머니와 동생이 생각난 루는 결국 떠나기를 포기하고 줄스를 보내준다. 홀로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운 루는 자신이 주저해 줄스를 떠나보낸 슬픔에 오랫동안 멀리했던 약에 다시 손대고 만다.

 

루가 약에 취해 비틀거리며 Euphoria(극도의 행복감)를 느끼는 모습이 뮤지컬처럼 연출되며 <유포리아> 시즌 1의 막이 내린다.

 

 

[꾸미기][포맷변환][크기변환]사진5.jpg

<유포리아> 특별판 속 '루'의 모습
 

 

엔딩 장면에서 알 수 있듯, <유포리아>는 약물 중독의 심각성을 보여주며 루와 줄스의 미래가 험난할 것을 예고한다. 연말과 연초에 공개된 두 편의 특별편 <유포리아: 트러블 돈 라스트 얼웨이즈>와 <유포리아: 퍽 애니원 후스 낫 어 씨 블롭>에선 루와 줄스가 시즌 1 이후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두 편의 특별편 모두, 루와 줄스가 각각 자신의 내밀한 속마음을 털어놓고 있어 시즌 1의 서사에 표현되지 않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나른한 표정으로 담담히 읊조리듯 이야기하며 약을 끊고자 다짐하는 루와 격앙된 목소리로 이것은 꿈꿔온 여성의 모습이 아니었다고 자기혐오의 감정을 내비치는 줄스. 이렇게 다른 둘이지만, ‘함께 뉴욕에 사는 소소한 일상’이라는 같은 꿈(잠)을 꾸는 것만은 같다.

 

<유포리아> 시즌 1은 특히 뛰어난 연출(<인셉션>을 연상케 하는 1화의 회전하는 방 장면이라든가 <부기 나이트>가 떠오르는 4화의 롱테이크 장면은 입이 떡 벌어진다)과 미국 10대들이 노출되어 있는 사이버 범죄 등의 사회문제를 현실적으로 담아냈다는 메시지의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영국 출신 음악가 라브린스가 완성한 <유포리아> 특유의 몽환적인 음악, 10대들 사이에서 신드롬을 만들어냈던 ‘유포리아 메이크업’ 역시 호평 일색이다.

 

  


<유포리아> 시즌 2 티저 영상

 

 

시즌 1의 연기로 최연소 에미상 수상의 영광을 안은 젠데이아의 다음 <유포리아>는 오는 1월 공개를 앞두고 있다. <유포리아> 시즌 2가 지난 시즌에서 마무리되지 않은 이야기를 어떻게 매듭 지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정주엽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