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생은 이상하게 흐르지, 포스트락 음악들처럼 [음악]

시규어 로스, 모임별, 이상의 날개의 음악들을 통해 본 포스트락 장르
글 입력 2021.12.06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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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생각해보면 나는 늘 '어떤 스타일'의 음악이 좋았다. 그 '어떤 스타일'의 음악을 알음알음 찾아 들어왔다. 하지만 음악의 제목이나 가수의 이름까지 부러 기억하지는 않았다. 누군가 어떤 가수를 좋아하느냐 물었을 때 그들을 소환하지도 않았다. 여러 예술 작품 중 영화와 책을 향유하는 데 그 에너지를 다 소진해 버려, 음악에 쏟을 열정이 남아 있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음악에 관한 기본적인 소양을 쌓는 일을 게을리했고, 그래서 오랫동안 내가 좋아하는 음악의 장르조차 설명할 수 없었다. 단어를 고르고 골라 '몽환적인 음악'이라 표현할 뿐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스타일'의 음악 장르에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된 건 한 밴드를 만나고 난 이후 부터다.

 

 

 


시규어 로스의 음악들은 내가 좋아하는 '어떤 스타일'을 응축해놓은 것 같았다. 그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내가 모르는 세계, 우주나 바다 깊은 곳을 유영하는 듯했다. 시규어 로스의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내 작은 자취방 침대에 누우면 나는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이런 감각은 음악이 나에게 미친 최초의 영향력이었다.

 

시규어 로스의 음악을 찾아 들으면서, 나는 시규어 로스가 만드는 음악 장르가 '포스트락'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포스트락 장르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포스트락은 뭔가. 장르에 딱 떨어지는 설명은 찾지 못했다. 그래도 분석 해보자면 '포스트' 자체에 '이후'라는 뜻이 있으니 포스트락은 '락 이후의 락' 같은 의미가 된다.

 

 

 

 

본격적인 포스트락 시작은 90년대 초중반 즈음이다. 포스트 하드코어 씬에서 출발해 우울하고 긴 기타 연주를 들려준 슬린트(Slint)의 [Spiderland], 뉴웨이브 신스 팝 밴드로 시작해 앰비언트, 재즈와 클래식의 요소를 전면적으로 활용한 토크 토크(Talk Talk)의 [Spirit Of Eden]이 있었다. 이 두 음반과 밴드는 포스트락의 선구자나 조상님 같은 느낌으로 평가받는다.

 

그 뒤 90년대 중반 바크 사이코시스(Bark Psychosis)뿐만 아니라 디스코 인페르노(Disco Inferno), 스테레오랩(Stereolab), 토터스(Tortoise), 쿨 데 삭(Cul de Sac) 같은 밴드들이 각자 다른 느낌으로 포스트락을 추구했다. [Soundtracks For The Blind], [Millions Now Living Will Never Die], [D.I. Go Pop], [Hex] 등의 초기 포스트락의 명작들이 이 때에 등장했다.

 

사실 이 밴드들 사이에서 어떠한 공통점을 찾기는 매우 힘들지만, 결국 락 이후의 락, 혹은 락이 아닌 것을 위한 락 연주라는 미묘한 공통점이 있다.

 

 


 

90년대 후반부터 00년대 시기에 우리가 현재 쉽게 접하는 유명한 포스트락 음악이 많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웅장하고 멜로디컬한 기타, 꿈꾸는 듯 중얼거리거나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보컬, 10분 남짓의 긴 곡, 일종의 소설처럼도 느껴지는 서사적인 구조 같은 포스트록의 장르적 특징이 뚜렷이 보인다.

 

나열한 요소들이 모두 합쳐 기나긴 인스트루멘탈 기타 연주를 중심으로 점점 쌓아 올라가는 구조와 감정적인 고조와 폭발이 담긴,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스타일이 만들어진다. 이 시기에 필자가 언급했던 시규어 로스도 포스트락 음악을 만들었다.

 

 

  

모국어가 담긴 음악


 

포스트락 장르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한국 포스트락 밴드 노래도 찾아 듣게 되었다. 가장 처음 만난 밴드는 모임별이다. 밴드 모임별은 포스트락이라는 장르로 규정되는 것을 반기지는 않는 모양이지만 나는 이들의 음악에서 포스트락 장르의 특징을 많이 찾을 수 있었다.

 

이들의 음악이 좋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흥얼거리는, 속삭이듯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음악 속 언어가 모두 한국어였다는 점이다. 다른 포스트락 음악에 스며 있는 언어가 이국의 말이었기 때문에 음악의 환상성이 필자에게 잘 와닿기도 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는 한국어 가사도 그 표현이 모호하여 환상적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이중적 비독해의 상태가 더 매력적이었다.

 

 

 

 

네덜란드산 초록맥주병

오늘 밤도 난 또 길을 잃었지

넌 언제나 말했었지

유모차를 끌고 싶어

비굴하게 웃기 싫어

레논처럼 죽고 싶어

난 모든걸 갖고 싶어

이 아픔을 넘고 싶어

희말라야 구름위로

우린 아직 널 사랑해

아직도 우린 너를 기다려

이 밤의 잔디 위로 날아간

반짝이던 검은 눈들

밤하늘을 가득 메운

잔디 위의 반딧불빛

아픔들은 없어지고

 

- <진정한 후렌치후라이의 시대는 갔는가>, 모임별

 


다음 가사는 모임별 음악의 가사 일부다.

 

'네덜란드산 초록맥주병', '유모차', '레논' 등의 단어가 낯설게 배치되어 낯선 이미지를 남발하는 한편, 명료한 감정을 전달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모호한 동시에 '날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두가지 느낌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모임별의 노래에 취해 있을 무렵, 회기동으로 이사를 하게 되어 여러 친구들을 불러 집들이를 했었다. 그때 필자는 늘 집에 모임별의 노래를 틀어두었다. 친구들이 필자의 집에 들어오는 순간, 바깥과는 단절된 어떤 세계에 잠시라도 정착해 있는 기분을 느끼기를 바랐다. 어느새 필자의 집 구석구석에는 모임별의 음악들이 뿌리 내리게 되었다. 필자의 몸 구석구석에서는 모임별 음악의 냄새가 났다.

 

어떤 공간에,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 접착제처럼 딱 달라붙어 끈질기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음악은 흔하지 않다. 나는 이제 회기동을 떠나왔는데, 회기동 옛날 집을 생각하면 모임별의 노래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절망과 허무의 아련함


 

 

 

다음으로 푹 빠졌던 한국 포스트락 밴드는 이상의 날개다.

 

밴드 이상의 날개의 음악은 뼛속까지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이상의 날개는 그림 그리듯 섬세하게 자신들의 내면을 그리면서도 과감하게 내면을 보여준다. 그렇게 철학적 본론을 끌어내 청자들이 그 뜻의 깊이에 침잠할 기회를 준다.

 

하지만 날개의 음악에 절망의 관념, 허무의 초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절망과 허무의 아련함도 함께 뒤섞여 있다. 이르테면 다시 만날 수 없는 그저 아름다운 순간으로 기억되는 20대 청춘의 자아처럼.

 

포스트락 음악은 말 많은 연주보다 묵언에 치중한다. 혹자는 포스트락 음악이 지루하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포스트락 장르는 집중의 장르다. 집중해야만 비로소 본질에 가닿을 수 있다.  포스트락 음악 안에는 환희와 절망, 분노와 소멸이 공존한다. 놀랍고, 특별한 장르가 아닐 수 없다.

 

포스트락 음악은 겨울에 듣기 좋다. 포스트락 음악을 들으며 이 겨울을 나면 2021년의 겨울 사이사이에 포스트락 음악이 덕지덕지 붙어 청자를 낯선 시간, 공간으로 보내줄 것이다. 우리는 음악을 타고, 날개를 달고 날아가 중력을 거스를 수 있다. 비로소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음악 철새들에게 포스트락 장르를 추천해본다.

 

 

[최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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