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서로에게 서로가 - 키스마요

이 시대의 초상을 그린 소설
글 입력 2021.12.06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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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년이다. 잠깐 따끔하고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 상황이 이어진지. 2년 전, 나는 포스기 앞에 서 있었다. 전쟁 같았지만, 평화롭기도 했다. 손님이 주문한 음료를 재확인하고, 계산하고, 다음 손님을 받는다. 내 할 일은 단순했다. 하지만 친절함을 보이는 것은 어려웠다. 아무리 입꼬리를 올려봐도, 마음을 다해봐도 전해지지 않는 손님들이 있었다. 그리고 코로나가 시작됐다.

 

직원들은 마스크를 의무 착용했다. ‘위생’을 신경 쓰며, 니트릴 장갑도 필수로 착용해야 했다. 접촉에서 오는 오염을 최소화한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좋기도 했다. 억지로 항상 웃고 있지 않아도 되니까.

 

우리는 입 대신 서로의 눈에 의지해야 했다. 손님들이 주문하기 위해선 바닥에 붙어있는 안내 스티커만큼 앞사람과 거리를 유지하고, 본인의 차례가 왔을 땐 마스크를 올바르게 착용하고, 아크릴판 너머 포스기 앞에 있는 나에게 소리쳐야 했다. 서로에게 눈보다는 귀를 가져다 댔다. 귀로는 볼 수 없는데도 말이다.

 


“그것이 외계에서 왔다는 걸 인정할수록 지구는 알 수 없는 곳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전의 지구가 아님은 분명했다. 이전 같을 수 없게 되었으니까. 그것이 와서 지구는 수정되었다. 인간도 수정해야 할까. 인간 아닌 무엇을 앞에 두고.” - 24p
   


키스마요 평면표지.jpg

 

 

김성대 시인의 소설 <키스마요>는 어쩌면 독특하고, 어쩌면 단순한 이야기다. 전등 끄기 캠페인으로 어둠이 짙게 깔린 날, 곳곳에 미확인 물체가 나타난다. 그리고 ‘너’도 사라진다. ‘나’는 외계의 신호가 지구에 퍼지고,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상황 속에서 ‘너’와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우리는 아무것도 안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하고 싶은 게 없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없었다. 생각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 47p
   

 

가진 건 시간뿐이었던 ‘나’와 ‘너’는 누워서 내 것인지 네 것인지 알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 잠을 자고, 대화를 하고, 섹스를 했다. 반지하 방에 처음 이사 올 때는 오히려 이사라는 말이 거창했다. 가진 것이 없었고, 그렇기에 잃을 것이 없었다. 하지만 ‘너’를 잃었다. 너의 부재와 그로 인한 슬픔에 휩싸였다. ‘나는 달라지고 싶지 않았는데. 달라질 수 없었는데(63p)’ 달라져야 했다. ‘너’는 사라졌고 세상은 변했으니.

 

무의미가 깊숙한 곳을 찔러올 때, 나는 하릴없이 무력해지곤 했다. 죽기는 싫은데 살고 싶지 않았고,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키스마요>의 상황에서, ‘나’에게서 과거의 나를 봤다. 소설 속에서는 더 이상 ‘버틸 이유가’ 없어 자살이 유행으로 번진다. 종말을 눈앞에 두고도 ‘나’는 별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 모든 것이 우주의 실험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소설 <키스마요>는 이 시대의 초상이다. 코로나가 무자비하게 휩쓸고 간 흔적에서 남아있는 잔해를 줍는 듯하다. 소설은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잔해들의 원래 모습을 기억하는 증인으로서 발언하고, 또 기억한다. 달라진 것이 없지만, 많은 것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통제가 불가능한 절망의 수렁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잘못은 ‘우울’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사람들 등 위에 올라타 있다.

 

모든 것의 의미를 찾다 보면, 돌연 무의미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우주 속의 먼지’ 혹은 ‘신의 게임판 속 말’이라 칭하며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깎아내리기도 한다. 작가가 그려낸 현실은 실제보다 더 고통스럽다. 젠가가 무너지듯 속수무책으로 세상이 무너진다. 외계의 힘까지 개입해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줄기 희망이 빛난다. ‘너’라는 존재다. ‘나’는 ‘너’와 나눈 대화를 곱씹고 ‘너’가 돌아오기만을 바라고 또 바란다. ‘너’는 ‘나’에게 이정표가 되어준다. 삶의 방향을 되잡아 준다.

 

*

 

우리는 각자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행성 안에만 갇혀 있는 폐쇄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이야기는 서로 섞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우리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전염병이 쓰인 부분은 한 챕터일 뿐이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그렇다면 조금은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 아직 펼쳐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그 이야기들의 가능성이 밝게 빛나고 있으니까.


 

[임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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