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상에서 가장 아껴야 할 사람은 너 자신이다 [도서/문학]

글 입력 2021.12.08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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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두고 꺼내 보고 싶은 책이 있다.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것이 아니라 구매해서 소장하고 싶은 책이 있다. 그리고 내 방에는 그런 책들을 모아놓은, 내가 사랑하는 공간이 있다. 한 번 읽고 좋았던 책은 눈에 띄는 책꽂이에 꽂아둔다. 다시 읽고 싶을 때 쉽게 꺼내 볼 수 있게. 그 책꽂이에 책이 하나둘씩 쌓일수록 왠지 모르게 나의 마음도 흐뭇해지고 든든해진다. 채워지는 건 책꽂이만이 아닌 것처럼, 내 마음도 그렇게 층층이 채워진다.

 

그곳의 터줏대감으로는 나와 어린 시절을 함께한 《리버보이》와 《어린왕자》가 있고, 나와 청소년 시기를 같이 보낸 《오만과 편견》과 《호밀밭의 파수꾼》도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 책'이 새로 들어와 그 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책 표지.jpg

 

 

사실 나는 심리학을 이야기하는 책을 그다지 선호하는 편이 아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심리학'이라는 단어가 보란 듯이 제목에 붙어있는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다른 무엇도 아닌 제목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모님의 딸로 20년하고도 훌쩍 넘는 시간을 감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딸'이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실제로 생각하기도 전에 책을 들어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완독한 후에는 그 반사 작용을 보였던 나 자신을 칭찬하고 싶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껴야 할 사람은 너 자신이다


 

누구나 그렇듯, 나도 어렸을 때는 나 자신이 굉장히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 속 등장하는 비범하고 매력적이며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주인공처럼.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키가 커지는 만큼 생각도 많아지면서 서서히 깨달아 갔다. 선장이 있으면 선원이 있고, 주연이 있으면 조연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선장과 주연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춘기 시절의 나는 그 소수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멋대로 결론을 내렸고, 그 생각은 종종 나를 힘들게 했다. 나를 슬프게 했고 무기력하게 만들었으며, 다소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시선을 가지게 했다. '그래봤자 들러리라면', '그래봤자 갤러리잖아'라고 생각하며 무슨 일이든 온 마음을 다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기보다 이따금씩 방치했고, 남의 일인 것처럼 팔짱 끼고 방관하곤 했다. 한마디로 나는, 나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았고 정성껏 보살피지도 않았다.

 

더 이상 키는 자라지 않지만 생각의 깊이는 더 깊어지는, 어른과 청소년 그 사이 어디 즈음에서 나는 조금 성숙해졌고, 그만큼 생각도 변해 갔다. 내 인생에 있어서 만큼은 내가 주체이고 내가 주인공이라는, 그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내가 중요하다고 의미를 부여한 일은 더 이상 사소하거나 시시한 일이 되지 않았으며, 내가 선택한 일은 시작부터 결과까지 모두 내가 책임져야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 인생의 중심은 '나'라서 '나'로 인해 돌아가니까.

 

이러한 깨달음은 내가 나를 전보다 인정하고 사랑하게 만들었을지는 몰라도, 그 방식이 건강하게 발현되지는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무언가를 이루어내고 날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기 시작했으니까. 무엇이든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다, 그럴 수 없는 청춘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오는 괴리감에, 나는 나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말은 했지만 마음 한 켠에는 정말 그렇냐고 자문하고 싶은 의구심이 오랫동안 존재해왔다.


 

건강한 자기애, 건강한 나르시시즘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완벽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실패하고 실수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자신은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극작가 조 쿠더트가 말했다. "당신은 남의 사랑을 꼭 받아야 할 필요도 없고, 또 그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도 안 됩니다. 정말로 삶의 중심이 되며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평생 알게 될 모든 사람들 중에서 당신이 결코 떠나지도 잃어버리지도 않을 유일한 사람은 당신뿐입니다."

 

-24p

 

 

그러니 서른 살이 되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무엇을 얼마나 이루었는가?"에 대해서만 셈하지 말고, 그 시간을 견뎌 낸 자신을 위로하고 애도하는 시간을 가져 보는 건 어떨까. 그 과정에서 눈물이 나면 기꺼이 울 일이다. 눈물에 인색한 사람은 자신에게도 인색해질 수밖에 없다.

 

-33p

 

 

첫번째 챕터 「세상에서 가장 아껴야 할 사람은 너 자신이다」를 읽는 내내,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의 내가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그동안 힘들었지.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돼'라고 속삭이며 나의 어깨를 토닥토닥 다독여 주는 느낌이랄까.

 

책 띠지에 적혀있던, '이 책을 10년만 더 일찍 읽었더라면 나 자신을 덜 괴롭히지 않았을까'라는 독자평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연초나 월초에 새로운 계획을 최대치로 세우고 그것을 다 이뤄내지 못하면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타인과 비교하며 자책했다. 그렇게 나는 주기적으로 나를 괴롭혀왔다. 요즘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불안한 마음에 누가 강요하지도 않은 생활을 이어오고 있었다.

 

'실패하고 실수하는 나'를 못 견뎌 하는 이상한 완벽주의자인 나에게, 이 책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동안 내가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하고 인색하게 굴었던 것이 아닐까, 타인에게 행했던 '그럴 수도 있지'의 마인드를 나에게 너그럽게 적용했던 적이 얼마나 있었나,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보았다. 씁쓸하게도 나는 타의가 아닌 자의로 힘들었던 적이 더 많았다.

 

아주 어렸을 때, 나는 막연히 '사람은 누구나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순수하고 맑은 시선으로, 하지만 지금보다도 명료하게 '사람'과 '삶'을 직시하던 어린 내가 있었다. 내가 어떤 모습이더라도, 엉망이거나 최악의 모습이더라도, 그 모습까지 인정하고 사랑하는 진정한 의미의 'Love Myself'가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처방전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감히 또 생각한다. 치열하게 살고 있지만 불안한, 이 세상의 모든 청춘들에게도 필요한 것이라고.

 

 *

 

나는 안정적인 생활을 추구하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던 길만 가고 만나던 사람만 만나며, 방문했던 곳만 가고 하던 일만 하는 것을 선호했다. 대단한 이유는 없다. 단지 그게 더 쉽고 편하며, 실수할 가능성을 차단하고 당황스러운 감정을 피할 수 있는 길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곧 '도전'이고 나에게 도전은 설렘보다는 두려움으로 다가왔으니까. 앞서 말했던 내용의 연장선상이지만, 나는 '실수하고 잘못하는 내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 누군가가 설령 나라도.

 

그랬던 내가 요즘 들어 조금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나 역시 그 말에 동감한다. 과거의 경험과 방식을 답습해오던 내가, 이전과는 다르게 새로운 길을 보다 적극적으로 개척해가고 있다. 문화예술 플랫폼의 에디터가 되었고 해본 적 없는 분야의 일을 시작했으며, 늘 생각만 해오던 프로그램에 참여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평소 전혀 생각지 못한 방면의 공모전에도 도전했다.


내가 그렇게 결심하고 행동하게 된 배경에는 '각성'과 '자극'이 있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오늘, 그리고 오늘과 거의 똑같을 내일. 반복을 나름대로 좋아하는 나조차도 조금 버거울 정도로 무미건조하고 단조로운 날들에 조금씩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 정점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일이, 특별한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우스운 내가 있었다. 유명 맥주 광고의 카피가 떠오르는 하루하루가 이어져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어디선가 이런 글귀를 읽은 기억이 난다. "전문가란 자기 주제에 관해서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잘못을 이미 저지른 사람이다." 나도 그에 공감한다. 지금은 삽질이 손실로만 보일 수도 있지만 삽질의 콘텐츠가 차곡차곡 쌓이면 어느 순간 그것이 성공을 이끄는 동력이 될 수도 있고, 미처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한 평의 땅도 갖지 못한 청춘일수록 삽질은 꼭 해야 할 신성한 노동이다. 하고 싶은 게 뭔지 잘 모르겠고, 잘할 수 있는 일이 뭔지도 모르겠다면 일단 뭐든 해 봐야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36p

 

 

프랑스 소설가 아나톨 프랑스는 "나는 현명한 외면보다는 열정적인 실책을 더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정말 맞는 말이다. 많은 것을 시도하면 실수도 많겠지만 그만큼 인생에 후회도 적다. 더군다나 세상에 모든 조건과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완벽한 선택은 없다. 그러니 손실이 적은 선택지를 기다리느라 주저하거나 기회비용이라는 말에 움츠러들지 말자. 지금 마음껏 삽질해 보고, 퍼낸 흙으로 삶의 토양을 기름지게 가꾸어 나가렴. 그렇게 해서 쌓인 경험이야말로 너만의 독특함이자 네 인생의 진정한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41p

 

 

그러던 찰나에 이 책을 만난 것이다. 내가 그동안 이런 말들을 기다려 왔나, 싶을 정도로 책 속 문장들은 나의 마음을 자극해왔다. 시의적절한 자극은 행동과 실천을 부추겼고, 그렇게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내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변화가 매우 달갑다.

 

익숙한 것이 안정적이고 평화롭다는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실수하고 잘못을 저지르는 것 역시, 아직까지 내가 감당하기에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들을 조금 즐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경험들이 하나둘씩 쌓여 성장한 미래의 나를 상상해 보면서. 조금은 성숙하고 능숙해진, 내가 바라 마지않는 어른의 모습일까 추측해 보면서.

 

그리고 과거에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까 궁금해하면서. 저자의 취미였던 뜨개질이 훗날 병원에서 환자의 상처를 봉합하는 데 실력으로 발휘된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을 통해 얻은 또 다른 수확이다. 어떻게 보면 삽질이고 시간 낭비로 보일 수 있는 일에 대해 거리낌이 한결 사라졌다. 그런 것들을 통해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혹은 싫어하는 일을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이 글을 읽는 이들 중 나처럼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이 무섭고 실수는 더더욱 두렵지만 그럼에도 거기서 조금은 벗어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조심스럽게 내가 주문처럼 자주 외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병아리 시절은 예외 없이 누구에게나 있다." 누구나 처음에는 미숙하고 서툴다. 각 분야의 일인자로 자리매김한 사람들 역시 그러했던 과거가 있다. 긴장하고, 허둥대고, 실수하고, 그런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거나 겁먹지 말았으면 좋겠다. 사실, 지나고 보면 '내가 그랬었나?', '그땐 그랬지' 하며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일이 대부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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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는 총 다섯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오늘은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첫 번째 챕터인 「세상에서 가장 아껴야 할 사람은 너 자신이다」를 전했다. 저자는 이 책에 대해 재미있게 사는 방법이 잘 안 떠오르고, 자꾸만 화가 날 때 참고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러분에게 이 책이 그런 의미로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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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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