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람 냄새 나는 연극 - 복서와 소년 [공연]

세상 밖으로 나가기 두려운 이들에게
글 입력 2021.12.07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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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외곽 허름한 요양원.
 
억울한 누명으로 학교폭력 가해자가 되어, 사회봉사 활동을 명 받은 고등학생 셔틀이 요양원 가장 안쪽 구석 독방에 페인트칠 봉사를 하러 온다.
 
독방에서 생활하는 이는 파킨슨 환자 행세를 하는 왕년의 복싱 세계 챔피언 붉은 사자. 서로의 존재가 불편하고 불쾌한 두 사람은 작은 일에도 사사건건 대립하며 날을 세운다.
 
어느 날, 붉은 사자가 복싱 챔피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셔틀은, 진짜 학교 폭력 가해자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붉은 사자에게 복싱을 알려달라 부탁하고, 이에 붉은 사자는 셔틀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는데……
 
- 복서와 소년 시놉시스
 
*
 
연극 <복서와 소년>은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2012년 초연 이후 2013년 재연, 2014년 삼연을 거쳐 7년 만에 돌아온 연극이다.
 
대학로의 극장에서 보는 연극은 아날로그 시대로 돌아간 듯 아늑한 느낌이 있다. 오랜만에 보는 대학로 연극이었는데, 극장 안이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온 관람객으로 꽉 차 연말의 포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복서와 소년>은 2인극이다. 주인공은 43년생 할아버지와 05년생 고딩. 장례식장 앞에 위치한 요양원과 그중에서도 창고로 쓰이던 독방에서 지내고 있는 43년생 할아버지. 그리고 일진의 셔틀을 하면서 불량 학생 행세를 하고 다니는 05년생 고등학생.

 

연극은 그 둘의 우정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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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인물은 모두 좌절을 일상처럼 경험한 이들이다. 할아버지는 3살이 되던 해에 해방을 겪고, 한국전쟁에 월남전까지 겪으며 굴곡진 삶을 살아왔다. ‘붉은 사자’라는 이름으로 복싱을 했고, 올림픽 출전까지 했으나 좌절되었다.

 

그 후 월남전에서 돌아왔을 때는 부인이 딸을 데리고 나간 상태였다. 딸이나 부인과는 그 이후로 연락도 닿지 않았으며 이후 버스 기사로 지내다가 노숙자를 치어 교도소에서 복역하기도 했다. 그런 그는 파킨슨 환자 행세를 하며 요양원 독방에 자신을 가뒀다. 고독함과 그리움이 그의 몸에 배어있다.


허세가 몸에 가득 찬, 해맑은 05년생은 부모님의 이혼 이후 할머니와 둘이 살고 있다. 학교에서는 온갖 셔틀을 하고 학교폭력을 겪는다. 일진의 죄까지 뒤집어쓰고 법원에서 사회봉사 활동 명령을 받으면서도 목소리를 내지 못한 학생은 어쩔 수 없이 사회봉사를 위해 요양원 방을 페인트칠하러 온다.

 

첫 등장부터 비속어를 남발하지만, 그 모습이 어색하다. 좋아하는 누나 이야기를 할 땐 수줍다. 제대로 살아가는 방법은 아직 모르고 일단 괜찮은 척, 센 척하며 사는 17살 고등학생의 모습이 이 캐릭터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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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요양원에서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가 부족하고, 셔틀은 세상을 사는 것이 서툴다. 서로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던 둘은 점차 시간이 지나가며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된다.

 

고등학생이 듣기엔 구닥다리 같은 할아버지의 조언엔 지혜가 가득 묻어있고, 할아버지의 눈엔 철없어 보이는 고등학생의 행동엔 아무튼 인생을 잘 살아내고자 하는 패기가 있다. 둘은 서로의 단점을 보듬으며 결국엔 좌절된 자신을 일으킨다.


붉은 사자 할아버지와 고등학생에게 요양원 독방은 링이자, 사자 우리이고, 또 감옥이다. 독방은 세상으로 당당히 나가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공간이자 자신을 가둔 공간인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독방은 점점 비워진다. 무대에서 독방의 침대, 상자가 없어지고 나면 결국 요양원 독방과 세상 밖의 경계도 없어진다.


2명의 캐릭터는 모두 소외되고 힘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극의 전개가 우울하거나 과하게 진지하지 않다. 사람의 온정이 느껴져 따뜻하고 유쾌하다. 좌절을 경험하고 다시 극복해내는 어떤 이의 초상은 시대를 초월하여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연말에 가볍지만 따듯하게 위로 받고 싶다면 연극 <복서와 소년>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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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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