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밀과 거짓말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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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리 감독
프랑스, 영국
1996.09.21 개봉작
드라마, 코미디 영화
사람들은 자신만의 비밀을 갖고 살아간다.
그로부터 파생되는 거짓말은 모든 일의 원인이자 결과이다.
영화의 색감에 대한 개인의 취향을 먼저 짚고 넘어가자면, 단연코 실뱅 쇼매 감독의 영화 <마당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그리고 자비에 돌란 감독의 <마미>라고 얘기할 수 있겠다.
위 영화들은 모든 미장센마다 시각적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색감, 구도, 조명 등 자연스럽고 따뜻한 느낌의 연출로 매 장면마다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시각적 화려함에서 오는 아름다움과는 다른 현실의 아름다움이다.
마찬가지로 <비밀과 거짓말> 역시 특별한 효과나 도구는 없다. 평범한 가정집 내부, 카페, 도심, 사진관, 공원, 길거리, 공장 등 일상적인 장소가 이야기의 주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관객의 시선을 잡아끈다.
<비밀과 거짓말>은 마치 햇빛이 내려앉은 그들의 삶과 모습을 담고 있는 카메라 렌즈에 내 두 눈을 갖다 대고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환상과는 거리가 먼 장면들조차 감독 마이크 리의 손을 거쳐 어두움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이미지들의 공간이 되었다.
이는 영화 속에서 사진사 일을 하는 '모리스 펄리'와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는 사진관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카메라에 포착한다. 교통사고로 한쪽 얼굴이 망가진 여성의 모습을 아름답게 담아내고, 결혼을 하는 부부의 웨딩 사진, 친구들 간 우정 사진을 찍으며 그들에게 행복한 순간을 선물한다.
여기서 모순적인 점은, 이런 사진을 찍는 그는 정작 행복과는 먼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거의 모두가 '모리스 펄리'와 같은 삶을 살아가지 않을까. 아이를 갖지 못하는 몸으로 히스테리를 부리는 아내를 받아주고, 누나의 힘듦을, 가장의 무게를 견디며, 다른 이의 가장 행복한 미소를 이끌어내려 애쓰고 있지는 않을까.
어쩌면 웨딩사진을 찍은 신혼부부는 서로를 사랑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각자 숨겨둔 파트너가 있다던가 말하지 못한 비밀이 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간은 한 쪽 얼굴이 망가진 여성처럼 자신의 비밀을 숨기고 보여주고 싶은 단편적인 모습만을 드러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사진 한 장을 찍는 것과 다를 바 없을 지도 모른다.
영화는 비뚤어짐이 없다. 모든 장면에서 화면 구도와 전환은 눈을 편안하게 만든다. 안정적이고 깔끔하다. 카메라는 인물이 화면의 중간 혹은 완전한 측면에 오도록 하고, 둘 이상일 경우엔 마주 보기보단 나란히 앉는다, 주로 인물들을 따라가거나 멀리서 관찰하는 형식으로 흘러간다.
영화는 런던에 사는 지적인 여성 '호텐스'가 양어머니 장례식 이후 자신의 생모를 찾고자 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이야기는 '신시아(호텐스의 친모)'와 '호텐스'가 만나게 되면서 일어나는 그들의 감정의 변화와, 자신이 흑인의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차마 알리지 못하는 '신시아'의 내적 갈등이 주이다. 물론 이 외에도 얽혀있는 관계들은 많다. '신시아'와 딸 '록산'과의 갈등, 남동생 '모리스'와 그의 아내 '모니카'와의 갈등 등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요소이다.
2시간 20분의 짧지 않은 러닝타임 중 2/3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관찰하고 결말을 예상하려고 애쓰지만, 결국 영화의 흐름에 몸을 맡기게 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앞에서 보여준 모든 내용들은 영화의 끝부분에 나오는 바비큐 파티를 위한 단계였다. 아주 세심하고 치밀한 구조다.
자칫 지루하다고 생각될 수 있는 초, 중반 이야기조차 영화가 끝난 후에 흥미롭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그들이 모두 저마다의 비밀을 한 가지씩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해 형성되는 관계가 자연스럽고 사실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관객은 영화가 결말로 치닫기 전 모든 인물들의 감정과 인물들 간의 관계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 '록산'은 '신시아'를 한심하고 형편없는 엄마라고 생각하고, '모니카'는 '모리스'에게 신경질적이지만 '모리스'는 그것을 덤덤히 받아내고 오히려 그녀를 이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이 외에도 관객들은 그들의 성격과 그들 과거까지도 상상할 수 있다.
그렇기에 관객은 그들의 모든 비밀들이 폭로되는 과정을 이질감 없이 지켜볼 수 있다. '신시아'의 말대로 비밀을 고백할 적당한 타이밍이란 없다. 영화의 후반부, 모니카의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배우들의 연기로 이질감을 한층 더 상쇄시킨다. 실제 '신시아'가 고백하는 듯한 '브렌다 블레신'의 연기는 마치 영화 속, 그들의 인생에 들어와있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2시간짜리 영화를 보고 7인의 등장인물 각각의 성격 형성 과정과 애정관계도, 행동과 말투까지 빈 종이에 빼곡히 써 내려 갈 수 있을 정도로, 배역들은 살아 움직이는 실존 인물에 가까웠다.
자신의 생모를 찾고 생모의 가족 구성원에게 그 사실을 밝히는 이야기는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비현실적이다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모리스의 카메라처럼 우리는 카메라에 담길 행복한 모습들을 위해 비밀을 숨기고 거짓말을 하며 살아가는 그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영화의 장르는 드라마, 코미디이다. 그리고 인생은 코미디, 시트콤이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신시아와 호텐스, 그들의 인생 또한 가까이서 본다면 비극이겠지만, 전혀 관계없는 제3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가히 코미디나 다름없을 것이다. 어쩌면 당신의 인생도 말이다.
인생은 거짓말, 그리고 그 순간을 포작하는 카메라
[강현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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