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공예의 정의는 어디까지 확장될까 - 2021 공예 트렌드 페어
-
올해로 16회를 맞이한 국내 최대 규모의 공예 축제, 공예트렌드페어가 코엑스 C홀에서 11월 21일(일) 성황리에 폐막했다. 공예트렌트페어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황희)가 주최하고 (재)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원장 김태훈, 이하 공진원)이 주관하는 것으로 공예의 가치를 발견하고 미래지향적 발전을 통해 한국 공예 문화의 대중화, 산업화와 더불어 아시아 공예 문화를 선도하는 공예 전문 박람회다.
올해는 전년과 달리 총감독을 선임하여 주제관에만 국한되었던 행사의 주제를 확장시켜 통일감 있는 페어를 느낄 수 있었다. 총감독인 정구호 디렉터는 이번 행사의 주제를 ‘형형색색形形色色’으로 선정했다. “모양(模樣)이나 종류(種類)가 다른 가지각색(--各色)의 것”이라는 ‘형형색색’을 주제로 선정한 것은 다양한 작가와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 이번 페어의 목표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결과 전년 페어에서 24명의 작가가 참여했던 것과 달리 71명의 작가들을 선정하였으며 규모도 3배 이상 커졌다.
거대한 쇼케이스, 주제관
이번 페어는 주제관 기획전시 ‘형형색색(形形色色)’과 더불어 주요 갤러리가 참여하는 ‘아트&헤리티지관’과 스튜디오, 브랜드, 기업, 공방들이 참여하는 ‘브랜드관’ 및 ‘창작공방관’, 학생들의 창의적인 공예품을 전시하는 ‘대학관’, 공진원의 사업 결과물을 선보이는 ‘KCDF 사업관’ 등 총 6개 관으로 구성됐다.
관람객들이 페어에 입장하고 처음 마주하게 되는 주제관은 관객들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았다. 페어 주제인 ‘형형색색’과 어울리는 밝은 노란색의 광장, 그 위에 설치된 좌대는 라이트박스 역할을 겸하며 거대한 공간에 놓인 작품들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정중앙에 위치한 주제관은 양옆의 나머지 5개관 사이를 연결하는 중앙역 역할을 했다. 20대 신인 작가부터 인간 문화재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한 곳에 배치되어 페어 주제를 요약하는 동시에 거대한 쇼케이스이기도 했다.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공예
정구호 총감독은 최근 들어 공예와 디자인, 순수 미술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높아지는 공예의 가치를 언급했다. 이런 경향에 발맞춰 공예를 아트 오브제로 바라보는 기획으로 공예, 디자인, 순수 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들을 선정했다.
주제관 외의 5개관 전반적으로 아트 오브제로서의 공예 작품들을 다수 만나볼 수 있었고 그의 의도에 걸맞게 이번 페어는 단순한 페어라기 보단 전시회에 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연호경, 정소혜
고우정, 정지숙
전시를 보면 마음에 남는 작품들이 있듯, 이번 공예 페어에서도 눈길을 사로잡던 작품들이 있었다.
‘취급주의’, ‘ㅋㅋㅋㅋ’ 등 낙서그림을 분청도자에 접목한 연호경 작가의 도기, 섬유의 텍스쳐를 도기로 가져온 정소혜 작가, 삶에서 겪어온 물리적인 환경 변화를 도자기에 표현해 낸 고우정 작가의 작업은 도예의 수수하고 정갈한 아름다움만을 상상했던 고정관념을 깨부쉈다. 만물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시선에서 시작된 정지숙 작가의 ‘덩어리들’은 화려한 색채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현대적인 작품들 외에도 국립무형유산원과 한국문화재재단의 전시관의 전승공예품, 국가무형문화재의 작품 등 전통적인 의미의 공예 작품, 대학관 신진 작가들의 독특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 역시 만날 수 있었다.
'K-마에스트로' 풍류(가곡)
특히 국립국악원의 ‘K-마에스트로’가 인상적이었다. ‘K-마에스트로’는 무형의 국악과 유형의 공예의 만남을 융합한 사업으로 판소리, 가곡, 산조 3가지 주제를 바탕으로 전시와 공연을 구성했다.
소리꾼의 희로애락, 다양한 인생살이를 빛과 각기 다른 형태로 엮어지고 풀어지는 매듭으로, 문인의 으막 가곡은 휘어진 대나무로 만들어진 물결로, 질서와 무질서를 넘나드는 ‘허튼 가락’ 산조는 씨실 날실이 엮인듯한 패턴으로 연출했다.
*
공예는 인류사를 함께 한 예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예의 기원 자체가 도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온, 생활과 가장 밀접한 예술인 것이다. 그러니 공예는 우리의 문화를 가장 잘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용이라는 특성이 가장 강조되어왔기 때문에 회화나 조각에 비해 공예는 예술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지금의 시대에도 공예의 이미지는 주로 전통 공예의 장인정신, 혹은 오브제에 그치지 않았나 싶다.
“시대에 맞게 공예의 정의도 바뀌어야죠.”
“헤리티지가 있는 물건은 그 나라의 정신을 담고 있어 중요합니다. 하지만 문화를 넘나들며 만들어지는 새로운 오브제 역시 현대적 의미의 유물이 될 수 있다고 봐요. 메타버스 시대에는 나라의 경계도 제약도 없어집니다. 지역적인 경계보다는 어떤 철학을 갖고 만들었는지를 더욱 따지게 되겠죠. 커다란 의미의 공예는 문화와 경계를 뛰어넘는 것 아닐까 싶어요.”
- 정구호 총감독 월간디자인 인터뷰 중
정구호 총감독의 말처럼, 또 아주 오래 전부터 그래왔듯 공예는 하나의 문화적 유물이다. 우리가 전통 공예에서 과거의 문화를 느끼듯이 지금 공예에서 보여지는 흐름도 시대를 반영하는 자연스러운 변화다. 그렇기 때문에 실용과 예술, 무형과 유형, 다양한 가치들이 융합됐던 이번 2021 공예 트렌드 페어가 더 의미 있었던 것 같다.
경계가 사라지고 빠르게 변화하는 지금의 시대에 공예의 정의는 어디까지 확장될까, 궁금해진다.
[신소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