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너의 상실은 내 세계의 종말이었다. - 키스마요

글 입력 2021.12.01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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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온 세상의 멸망 속 내 안의 종말을 담은 이야기 <키스마요>

 

"어느날 지구에 나타난 외계 비행물체의 등장과 함께 연인이 사라졌다."

 

비행물체 소동으로 온 지구는 떠들썩해지고 그 가운데 어디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 연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주인공.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연인은 시간이 잡아먹은 걸까, 그림자 속에 잠겨버린 걸까.

 

지구에는 점점 종말이 다가오고 혼란스러운 상황은 더욱 깊어져 간다. 사라진 연인의 모습을 지난 기억들로 더듬고, 시간과 언어에 담긴 연인을 느낀다.

 

 

키스마요 평면표지.jpg

 

 

<키스마요 keyword>

- 짧은 숨으로 이어진 문장들.

- 반짝이는 슬픔과 애도를 표현한 추상화 같은 소설

- 함께했던 과거의 조각을 이어 그리움을 덧대는

- 타인의 파멸, 세상의 멸망 그리고 개인의 종말

 

 

 

시인의 소설


 

이 책의 저자가 시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글을 훑었다.

 

글의 형식이 내가 알던 소설의 형식과는 많이 달랐다. 짧은 호흡으로 이어지는 장면들. 연작시 혹은 장시를 읽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야기 속의 상황이 머릿속에 생생히 그려졌다. 책을 읽는 내내 어떤 느낌이었는지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단편적인 파트를 이어 만들어낸 전시회 같았달까?


책을 읽다 말고 저자가 궁금해서 포털 사이트에 검색을 해봤다. 시인이 집필한 첫 장편 소설!

 

내가 느낀 새로움과 신선함의 근원을 찾았다. 정말 시 같은 소설이었다. 문장의 연결과 추상적이고 서글픈 표현들로 잘 짜여진 슬픈 애도의 소설이었다.

 

 

 

세상의 멸망, 개인의 종말 


 

 

언어로 생각을 해야 했다. 투명하지 않은 생각을. 언어의 독이 퍼지듯이. 생각이 아니라 중독이었다. 해독할 수 없는. - p.38

 

 

우주는 인간을 아까워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인간이 쓸모없어져서. 인간은 우주가 잊은 실험이니까. - p.112

 

 

자살이 대유행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문을 두드렸다.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주저하지 않았다. 단숨에 실행에 옮겼다. 목숨을 끊을 일만 남은 거같이. 구원이라고 했다. - p.119

 

 

악대의 음악이 옅어지고 있었다. 마지막 행렬이 지나갔다. 희미한 가로등 아래로. 그너머로. 그림자를 거둬들이고. 그 열없음을. 그림자가 더 짙어지는 거 같았다. 불빛을 빠져나가면서. 안도가 식어가고 있었다. 불안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불안으로 남은 축제의 끝이었다. - p.181

 


소설에서 크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세상의 종말, 연인을 잃은 상실감과 개인의 멸망이다. 첫 시작에 나온 외계인과 비행물체(두 개의 알)의 등장은 정말 신선했다.

 

하지만 뒤이은 바이러스의 출현, 바이러스에 걸린 후 나타나는 여러 증상(꿈을 꾸지 못함, 몸을 놓치는 느낌, 어눌해지는 말투) 등을 보며 모든 걸 파괴한 끝에 결국 인간 스스로마저 파멸하고 마는 우리의 세상과 닮아있다.

 

외계인, 비행물체라는 점만 빼놓고 보면 결국 멸망하고 있는 현실의 지구와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의 멸망을 눈앞에 두고도 그 사실을 간과하며 살아간다.

 

동물실험, 과도한 육식 소비, ‘재활용’이라는 글자만을 믿고 일으키는 자원 낭비 등. 우리 생활에 담긴 사소한 파멸로부터 세상의 멸망은 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파멸을 파멸이라고 인식하지 못한 우리는 바이러스의 출현을 통해서야 겨우 눈을 뜰 수 있었다.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전파로 혼란과 절망 속에 지내온 우리는 세상의 많은 파멸을 지켜보았다.

 

그동안 제3자의 입장에서 관전하던 우리는 그 파멸이 개인의 종말로 이어질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럼 지금에서야 우린 무얼 해야 할까?

 

 


너를 상실한 후, 난 내 세계를 잃었다.



 

나는 그 저녁에 갇혔다. 돌아오고 돌아와도 벗어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일어난 일을 계속 떠올려야 했다. 마지막으로 보지 못한 것을 계속 보았다. 마지막으로 듣지 못한 것을 계속 들었다. 떠올리지 못하고 계속. 떠올리지 못해서 계속. - p.17

 

 

우리가 가진 건 시간뿐일지도 몰랐다. 시간뿐이었으니까. 우리가 소비한 건.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서로 아까워하지 않았다. 너의 것인지 나의 것인지 구별할 수 없는 시간을 아껴봤자 남지 않는. 우리 시간이 아닌지도 몰랐지만. - p.48

 

 

몸에 힘이 없었다. 네가 사라지고 나는 중력을 잃었다. 네가 사라지고 알게 되었다. 네가 나의 중력이라는 걸. 내가 없었을까. 너의 중력에는. 나는 그림자에 몸을 맡겨야 했다. 그림자의 중력을 빌려야 했다. 몸을 놓치지 않도록. - p.52

 

 

너는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는 거 같다. 너의 눈에 빛이 고인다. 유리가 부서진 가루 같은. 너의 몸이 옅어지고 있다. 마른 유리로 된 거같이. - p.131

 


연인을 잃은 뒤,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그 흔적을 찾아 더듬거리는 주인공의 모습은 많은 이별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붙잡고 계속 반복재생하는.

 

‘내가 혹시 놓친 무언가가 있진 않을까’라는 생각에 떠올리지 못하는, 그때는 미처 눈여겨보지 못한 무언가를 계속해서 찾는다. 그 원인을 알면 이 상황을 돌이킬 수 있을 거라고 실낱같은 희망에 모든 걸 맡긴다. 결국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 이별을, 상실을.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이별과 상실을 겪으면 남겨진 사람은 반사적으로 그 사실을 거부하고 회피한다. 뜻 모를 헤어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계속해서 원인을 찾으려 애를 쓴다. 지난 시간을 추적하고, 보지 못했기에 보지 않았기에 후회로 가득한 순간들을 되뇌인다. 과거의 파편 속에서 잃어버린 연인을 그리는 그 모든 과정은 완벽한 이별, 내 안의 종말을 맞이하기 위함이다.

 

놓쳤던 너의 감정과 언어를, 놓쳤기 때문에. 그 존재를 잃은 후에야 지나간 모든 것을 하나 둘 천천히 소화시킨다. 순식간에 눈 앞에서 실종된 연인과 그 이별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우리 삶의 많은 헤어짐과 닮아있다. 언제 어디서 맞을지 모르는 수많은 이별과 종말은 갑자기 일어난 사고처럼 낯설기만 하다.

 

낯설은 부재 속에서 그가 꺼냈던 표정과 말을 꼭꼭 씹어서 다 삼켜내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너와 나의 세계를 종결시킬 수 있다. 쉼표 없이 이어지는 회상. 그 속에 나타난 이별의 모든 과정은 읽는 이로 하여금 지난 추억과 아픔을 떠올리게 한다.

 

 

 

에디터_정다은.jpg

 

 

[정다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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