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상실의 시간, 키스마요

문장의 미장센
글 입력 2021.11.28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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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마요 평면표지.jpg

 

 

 

키스마요


 

'키스마요'는 여러 가지를 떠오르게 한다. '마요'에서 괜히 마요네즈가 떠오르고, 혹은 키스하지 말아요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소말리아의 항구도시인 '키스마요'가 떠오른다. 지구 종말을 기다리며, 연인을 잃은 주인공의 이야기다. 지극히 주인공의 감정에 초점을 맞췄고, 이는 SF 장편 소설로 분류한다.

 

작가 김성대는 시인이나 작가로서 <키스마요>를 첫 장편소설로 출간했다. 그는 제29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작가로 2005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했다. 시인이라 그런지, 작가가 선택한 어휘는 어여쁘다. 다루고 있는 내용은 비극적이고 상실감을 내포하고 있지만, 연인을 그리워하고 자신을 찾아가는 주인공의 감정을 독특하고 신선한 언어로 그려냈고, 단단해진 감정선을 토대로 전개를 이끌어간다. 감정이 앞선 <키스마요>에서 우리는 그저 주인공이 끌고 가는 기억 속으로 휘말릴 수밖에 없다.

 


사람마다 자신이 가진 블랙홀의 크기로 누군가를 헤아릴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너를 헤아릴 수 없었다. 나의 공허로는.

 

<키스마요> 중 130쪽

 

 

 

현상으로 엮은.


 

종말이 예고된 지구는 혼란스럽다. 외계인의 출현과 전염병, 소행성 충돌, 사이비 집단의 출현, 지구 종말설 그리고 인간이길 포기하는 사람들로 미쳐가는 세상 속에서 '나'는 '너'를 잃어버린다. 이야기는 연인을 상실한 주인공의 마주친 현실과 그가 기억하는 연인과의 회상으로 진행한다. 어찌 보면 불친절하다고 느낄 정도로 <키스마요>는 세계관을 독자에게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그들이 사는 공간은 어느 반지하 맨션으로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지역으로 추정된다. 이것이 전 세계적인 반응인지 아니면 특정 지역만의 반응을 적은 것인지 알 수 없다. 오로지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마주친 것들에 대한 설명이 이뤄진다.

 

등장인물의 이름도 나오지 않는다. 시작 전 '상미에게'라는 말과 함께, 키스마요의 해변이 펼쳐진다. 등장한 지명은 '키스마요' 가 유일하다. 책을 읽는 내내 풀리지 않는 의문을 견디며 읽었던 것 같다. 주인공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알 수 없다. 단지 감쪽같이 사라진 연인을 찾아다니고 기다리며 흔적을 쫓아다닌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들은 정신을 잃는다. 의도를 알 수 없는 나체 시위와 죽어가는 동물들, 하늘 위에 떠 있는 외계인의 메시지를 파악하기 위해 떠들어대는 매스컴과 흔들리는 대중, 전염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또는 죽어간 사람들, 유행하는 자살, 집단으로 이어지는 연쇄살인, 이것이 작가 김성대가 현상으로 엮은 키스마요의 세계관이다.

 

 

- 대화를 시작한다. 인간과 지구의 미래가 달렸다.

외계 비행체로부터 메시지가 전송되었다. 인터넷으로 폰으로. 모든 방송과 통신으로. 침묵을 깨고 접속을 재개했다. 인간에게 동시에 모든 개개인에게. 모든 언어로 동시에 각 개인이 쓰는 언어로.

 

<키스마요> 중 181쪽

 

  

 

상실한 목적


 

생존하기 위해 살았던 개념이 아닌, 목적이 있어 생존한 사람들이 있다.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재앙들이 지구를 뒤덮었다. 그렇게 목적을 잃은 사람들이 속출했다. 영혼을 팔았다고 말하는 양아치들은 누군가에 의해 나체로 시위에 참여하며 경찰들에게 알몸인 상태로 얻어맞는다. 가면을 쓴 그들은 천사처럼 날개를 달고 나타나기도 했고 나체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했다. 이런 시위는 양호한 수준이나 다름없었다. 전염병이 창궐하자 사람들은 죽어 나갔고 거리는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이윽고, 동물들도 사라졌다. 인간을 끝까지 지키던 동물에게 전염병이 옮겨가자, 가축들은 생매장당했으며 반려동물의 개념은 사라졌다. 소행성 충돌이 머지않아지자, 사람들은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자살을 감행한다. 소위 '거울 앞에서 목매기'라고, 인터넷상에서 유행이라, 실시간으로 남의 자살을 방청할 수 있다. 자살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본인을 잊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살아가야 하는지 목적을 잃자 그들은 견디지 못했고 자신을 세상에 지우기로 한다. 주인공인 '나' 또한 마찬가지다. 저녁 산책 중 출몰한 외계인 때문에 발생한 난리 통에서 서둘러 짐을 챙기고 말없이 떠난 연인을 기다리며, 입을 닫은 '나'는 연인을 찾기 위해 연락을 수 차례 걸어보지만, 들려오는 것은 자동 응답기와 수신 없는 문자 기록뿐이다.

 

 

개가 변했다. 사람이 알던 개가 아니었다. 사람의 개가. 이제 개는 주인을 기다리지 않았다. 주인이 누군지 몰랐다. 주인이 없었으니까. 주인이 있을 필요가 없었다. 주인 없는 개로 떠돌아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사람 앞에 엎드리지 않아도 되었다. 거짓으로 짖지 않아도. 더 이상 애완동물이 아니었다. 애완동물로 사는 법을 잊었다. 야성이 돌아온 거라고 했다. 본성을 되찾은 거라고. 애완의 타성을 벗어나.

 

<키스마요> 중 102쪽


 

얼굴을 비우기 위해 거울을 본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얼굴을 벗어나기 위해. 거울을 봐도 자신이 떠오르지 않을때까지. 그게 거울 앞에서 목매는 이유라고. 이유가 다 같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비워졌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서 누구의 얼굴이 남았는지. 누구의 얼굴로 죽음을 맞았는지.

 

<키스마요> 중 119쪽

 

 

삶의 영위할 이유가 증발한 세상 속, '나'는 '너'를 찾을 목적으로 존속을 멈추지 않는다. 영문모를 전염병이라는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자신을 지우는 병은 치명적이었고, 살아갈 이유가 없는 이들에게 목숨을 부지할 명분을 앗아갔다. 그래서였을까, 비로소 만나게 된 '너'를 본 '나'는 '너'와'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나'의 본능 속에 생긴 생존이란 기능이 동아줄을 잡듯 '너'에게 집중하는 것 같았다. 다시 만난 순간이 쿵쾅거려, 연인이 말하는 것 하나 주워 담지 못한 것인지 무슨 대화인지도 나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나'는 '너'가 말해주길 기다리며, 어색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기억하는 척을 한다. 무슨 말인지 모르고 말을 들으며, 말을 잇지 못한다. 말과 말을 이어 붙이지 못해 곤욕을 치르며, 말없이 헤어진다. 그런 주인공에게 남은 '목적'은 무엇일까?

 

 

- 종말이 시작되면 다시 전해 드리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끝맺었다. 이상한 끝맺음을 이상하게 놔뒀다. 실시간 종말이었다. 순간순간 다가오고 있는. 남은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사라지고 있었다. 다음 시간을 생각할 수 없었다.

 

<키스마요> 중 171쪽

 

 

종말을 맞이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해졌다. 의지할 곳이 없어진 그들은 사이비 종교에 빠지거나 의지할 곳을 찾아 정처없이 떠돈다. 주인공도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나'는 '너'라는 의지할 대상이 있다. 연인을 제외한 '나'는 절대 스스로를 알아차리려고 하지 않는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기에 인간이라 칭한다고 생각한다. 모두 인간이길 포기한 사람들 같았다. 먼지 한 톨에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유리 부스러기로 부서지는 것 같았다.

 
 

 

날것의 문장


 

<키스마요>는 전반적으로 읽는 것보다 말하는 것에 가깝다. 문장으로 끝나는 문장이 드물다. 구문으로 쓰인 것이 반이다. 쉼표가 있어야 할 곳에 마침표가 있고, 마침표가 있어야 할 곳에 마침표가 없다. 화자와 '나'는 동일하며 우리는 '나'가 말하는 모든 설명에 의존하며 이해한다. 때마침, 집 안에 혼자 있어 소리 내 읽었더니 책을 읽는 내내 느꼈던 찝찝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보통의 책보다 손쉽게 소리 내 읽을 수 있다. '나'에 의한 설명, 감정, 기억, 오감, 현실. 모든 키워드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취향대로 서술한다. 그러니 불친절할 수밖에. 그래서 오롯함을 느낄 수 있다. 종말에 가까워진 지구를 살아가는 감정을 마치 제삼자의 입장으로 관람하는 것 같다. 주인공은 목적을 잃어 죽음을 선택하는 이들과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세상에서 사는 덕분에 뚜렷한 종착점을 가지고 글을 읽을 수 있다.

 

주인공은 솔직하나, 무의식적으로 방어한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상처받기 두렵고, 헤어짐을 통보 당하기 무서워 마음속에 응어리진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한다. 나를 바라보고 있으나 내가 담겨 있지 않고 텅 빈 너의 눈동자를 응시한다. 연인의 눈동자에 내가 담겨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내가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연인은 알지 못한다. 너와의 관계가 끝났거나 혹은 너란 사람이 원래 그렇다거나, 인정하지 못하는 자신을 무의식적으로 숨기는 감정선은 주인공이 자신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게 된 근본적인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말을 덜어 내도 어긋났다. 더 덜어 내지 못할 때까지. 서로 할 말이 없다는 걸 확인할 뿐이었다. 할 말없는 대화같이. 할말이 없어도 말을 해야 하는.

- .......

- .......

침묵이 밀려왔다. 말이 멀어질 때 밀려오는. 언젠가부터 너는 말이 없어졌다. 말보다 침묵을 더 많이 나누는 거 같았다. 나는 침묵을 골랐다. 말과 말 사이를 메우고 있는. 닿지 않는 침묵이었다. 침묵도 투명하지 않았다.

 

<키스마요> 중 39쪽

 

 

암묵적인 사회질서가 무너진 와중, 인터넷과 전기 등 인프라는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수십번의 전화와 문자에도 끄떡없던 연인이 어느 날부터 갑자기 먼저 연락해온다. 기약 없는 기다림에 익숙해져 있던 그는 갑자기 튀어나오는 감정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 말하는 모든 것들은 감정이 풍부하게 담겨 있으나 텅 비어있다. 감정 속에 본인은 없고, 눈동자에 연인을 담지 않았던 '너'에게서 비로소 살아있는 사람의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인공이자 소설을 이끄는 서술자로, 종말의 전초전을 담담히 알리는 '나'는 본인의 감정을 최대한 담백하고 정제하여 전달한다. 하지만 감장과 자신과의 분리가 진정 본인이 원한 것이 아닌 것처럼. 넘쳐흐를 때마다. 마침표를 찍는다.


 

너에게 받은 첫 문자였다. 잘못 온 거 같았다. 문자를 받을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너의 얼굴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어디서 봤는지도. 말이라도 한번 나눴었나? 두번째 문자가 왔다. 놀랐다. 내게 보낸 게 맞았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 문자로 나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나의 복원 지점이 바뀌었다. 모든 게 다시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시작이었다고 되돌아보게 되는. 뭐라 답하지. 생각해 보겠다고 해야 할까. 생각한다고 나올 답이 아니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것에 대한 생각이었다. 무슨일인지 물어야 할까. 할 말이 뭔지. 긴말을 늘어놓을 건 없겠지. 만날 이유도 모르는데.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데.

 

<키스마요> 중 109쪽

 

 

 

시간의 접촉


 

 

두 개였다. 머물고 나서야 두 개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한데 모이고 나서야. 아무도 두개라는 걸 몰랐다. 두 곳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줄 알았지.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순간적으로 사라지면서, 다음 순간을 알 수 없이.

 

두 개의 나란한 알이었다. 숨 막히는 대칭을 이루고 있는. 숨막히는 속도로 회전하면서. 쌍둥이 같았다. 서로의 회전을 이끌고 있는 거 같았다.

 

<키스마요> 중 202쪽

 

 

외계 비행체는 소말리아의 키스마요 해변 위에서 발견됐다. 두 개의 비행 물체는 상공 위에 머물렀다. 마치 쌍둥이와 같다고 묘사한다. 때마침 전장에서 쌍둥이로 태어난 연인의 이야기를 다룬다. 먼저 자궁 밖으로 나간 형제가 죽으면서 자신이 태어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한 개인 줄 알았던 비행 물체가 두 개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너'가 잃어버린 피붙이를 찾아 떠나는 여정처럼 느껴졌다. 땅속으로 꺼지듯이 사라졌던 연인은 불쑥 찾아왔고, 또다시 사라졌다가 키스마요 해변 위에 나타났다. '너'는 더 이상 '너'가 아니었다. '나'와 '너'의 관계를 정의하는 과정 중에 표현한 구절이 떠오른다. 네게는 접촉이었지만 내게는 충돌이었다. '너'는 태어나 지금까지 잃어버리는 것을 찾으려는 것인지 혹은 자신이 세상에 남은 이유를 증명하려는 것인지 끝없이 접촉하기 위한 것 같았다. 그에 온전히 공감하지 못하는 '나'는 현재 지구 위에 펼쳐진 모든 일은 충돌에 불과했다.

 

 

다투기도 했다. 우리는. 둘 사이를 가늠하려. 둘 사이의 온도를. 이건 네가 한 말이었다. 너는 그랬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네게는 접촉이었지만 내게는 충돌이었다. 둘 사이를 비집고 일어나는 열이 있었다.

 

둘 사이의 온도를 올리는. 열이 부글거렸다. 사이가 부풀어 올랐다. 식힐 수 없었다. 더 부풀면 터질 거 같았다. 터졌다. 사이가 폭발했다. 열이 바닥났다. 서로 바닥을 보였다. 서로의 바닥까지 내려갔다. 사이를 가늠할 수 없는.

 

너는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바늘 끝같이. 그 신경으로 나를 찔렀다. 허를찔리는 거 같았다. 진땀이 났다. 몸속에 바늘이 돋는 거같이. 나는 모르고 있었다. 뭐가 너의 신경을 건드리는지. 그만하고 싶었다. 져 주고 싶었다. 져 주는 게 아니라 졌지만. 지는데 져 주는 척했지만. 지고 싶은 싸움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늘 지는 싸움을. 싸움이 되지 않는.

 

<키스마요> 중 74쪽

 

 

<키스마요>를 잃고 떠오른 키워드는 파편적이었다. 몽환, 우울, 감각, 연민, 상실, 집착, 생경, 경이, 한 마디의 문장으로 정리하기엔, 외계인의 출몰이 쏘아 올린 지구 종말론이라는 전기적인 요소밖에 담지 못할 것 같다. 전개를 위한 전개가 아니라, 느끼기 위한 전개는 감각적인 문장의 미장센을 모아둔 것처럼, 한 편의 작품 같다.

 


습관처럼 이사를 생각했다. 떠나야 할 때가 됐다고. 이곳에 마음이 없었다. 마음 떠난 방에서 살고 있었다. 떠나지 못했다. 갈 곳이 없었다. 갈 수 있는 곳이. 그렇게 늦춰지고 있었다. 늦춰지고 늦춰지다 머물러 있었다. 한 발짝도 못 벗어난 채. 제자리에서 건너뛰는 시간이었다. 번번이 계절을 놓쳤다. 경계가 희미해지는 계절을. 어느 계절에 있는 건지. 날씨 없는 날들이었다. 날씨 없는 반지하였다. 우리 시간도 우리 것이 아니었다.

 

<키스마요> 중 91쪽

 

 

시간이 우리의 것이 아닌 적도 있을까? 시간은 가지기 싫어도 가질 수밖에 없는 개개인의 소유였고, 시간이 나의 것이 아닌 적이 없었다. 죽음과 아직 거리가 멀지만서도 항상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우리는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어도 그사이에 존재한 시간을 통해 안정감을 가진다. 그 법칙이 깨진 세계관에서 '나'는 '너'에게 초점을 맞췄다.

 

모든 문장이 암시적이다. 등장인물의 서술을 통해 우리가 알아차려야 한다. 나는 무엇을 느낄 수 있었을까? 개개인별로 각기 다른 반응이 쏟아져나왔다. 행성의 생존이 끝이 보이는 시점에서 내 것이 아닌 하루를 나는 접촉할 것인지, 충돌할 것인지 선택에 갈림길에 서 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영문 모를 전염병이 바로 이 기로에서 파생하지 않았나 싶은 의문이 들었다. 파편처럼 흩어진 기억 낱장을 붙잡고, 목적 없는 시간 속을 방황하는 이 시대의 현대인을 콕 짚어낸 것 같기도 했다.

 

 

하루가 넓어져 갔다. 너의 목소리가 빠져나간 나는 비어 있다. 나의 하루를 보내는 건 내가 아니었다. 내가 보내지 않은 하루를 떠올리느라 하루를 다 보냈다. 하루를 다 보내도 떠오르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는 게 내가 아닌 거 같았다. 마음이 몸에 내려앉지 못하고. 몸이 마음을 찾아가지 못하고. 마음에 어둠이 들었다. 심장이 어두워졌다. 나에게 멀어지고 있는 지도 몰랐다. 나에게 거리를 둬야 하는 건지도.

 

<키스마요> 중 126쪽

 

 

불이 작아지고 있었다. 우리는 작아지는 불 앞에서 불이 작아지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불안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잠시 숨길 수 있을 뿐이었다. 나 자신에게. 연기와 냄새에 절어 가면서.

 

<키스마요> 중 32쪽


 


아트인사이트 컬쳐리스트 명함.jpg

 

 

[이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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