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보고 듣는 삶 [문화 전반]

코로나 이후, 첫 공연을 다녀와서
글 입력 2021.11.27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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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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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적으로 음악을 소비한 것은 MP3를 가진 후였다. 이전까지는 TV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흥얼거릴 뿐, 노래를 따로 찾아 듣거나 보관하지 않았다.

 

13살이 되던 해. 언제부턴가 친구들이 하나둘씩 MP3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이 조그마한 기기에서 음악이 나오는 것이 그저 신기했다. 이어폰을 꽂고 음악에 집중하는 모습은 멋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서로의 귀에 이어폰을 한쪽씩 꽂고 노래를 나눠 듣는 건 또 어찌나 재밌고 신나던지. 물건 욕심이 없던 내가 처음으로 부모님을 졸라 구매한 제품이 바로 이 MP3였다.

 

자그마한 사이즈에 귀여운 헬로키티는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게 했다. 싸이월드 배경음악, 친구들과 같이 들었던 노래, 요즘 유행하는 노래 등등. 그렇게 하나둘씩 채우다 보니 MP3 속 노래는 어느덧 100곡이 넘었고 음악 듣기는 습관이 되었다. 하교 후, 기분에 맞는 노래를 고르는 게 일과 중 하나였다. 방에서 귀가 얼얼해질 때까지 이어폰을 빼지 않았다.


15살 여름, 교류프로그램으로 중국에 갔었다. 다른 학교 학생들과 조가 되는 바람에 버스에 혼자 앉았다. 얘기할 사람도 없고 습관적으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때, 지나치던 이국적인 풍경 사이로 들리던 노래. 덕분에, 가라앉던 기분이 금세 나아졌다.

 

당시에 들었던 노래들이 흘러나오면, 산전수전 다 겪었던 기억들이 물감이 퍼지듯 머릿속을 감쌌다. 음악은 들었던 순간의 공기를 복기한다.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추억에 잠기게 된다. 그래서 여행이나 행복한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정해둔 곡을 재생한다. 음악의 매력을 일깨워준 이 물건 덕분에 일상의 소중함을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었다.

 

 

 

눈으로 보는 음악



노래를 단순히 음원으로 즐기는 것보다 뮤직비디오나 그 가수의 라이브 영상과 함께 감상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보는 음악은 듣는 음악과 색다른 매력이 있다. 듣기에 집중한다면, 그 순간 자신의 감정에 몰두할 수 있다. 보는 음악은 다양한 시각 요소를 통해 곡의 풍부한 감상을 돕는다. 영상도 물론 좋겠지만, 보는 음악의 최고봉은 바로 현장에서 그 노래를 듣는 것! 공간을 가득 메우는 사운드에 좋아하는 가수를 눈앞에서 보는 것이야말로 음악을 진정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지난 내 공연역사는 미미하지만, 소중하다. 더는 볼 수 없는 일리네어 콘서트, 20살에 혼자 간 크루셜 스타 콘서트, 폭우 속 그린플러그드 페스티벌, 존죠아 콘서트까지. ‘덕후’로 불리기엔 부족한 관람 수지만, 글래스톤베리에서 떼창 부르기가 소원일 만큼 공연을 사랑한다. 학기 중에 갔던 공연들은 음악을 향한 갈증을 해소했고 내일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공연계는 급격히 침체되었다. 홍대의 소공연장은 줄지어 문을 닫았고 관객과 함께 즐기는 공연은 온라인으로 전환되었다. 나 또한, 두 차례의 공연이 물거품이 됐었다. 지난 7월, 변경된 코로나 지침으로 인해 연기되었던 공연이 다행히 재진행되었고 지난주에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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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백예린이 주축으로 있는 밴드의 첫 단독콘서트였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간 공연은 생각보다 더 낯설었다. 얼굴의 반을 덮는 마스크. 빈틈이 없던 관객들 대신 차지한 의자들. 거리두기로 인해 군데군데 비어진 좌석들. 곳곳에 붙은 경고문에는 ‘떼창,환호,함성 금지’가 쓰여 있었다.


이 상황에 콘서트가 열리는 것도 물론 소중했지만, 관람의 묘미를 더했던 요소들의 제한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맘껏 환호성 지르던 이전의 공연이 사무치게 그립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같은 곳을 바라보며 열광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여전히 그대로다. 해외의 공연들은 이미 코로나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국내에서도 하루빨리 공연의 뜨거웠던 열기를 다시 느낄 수 있길 바란다.

 

 

 

소장하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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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고심 끝에 LP플레이어를 장만했다. 높은 금액에 선뜻 구매하지 못했었다. 망설인 기간만 2년. 눈독 들이던 제품의 가격인상 소식을 듣자마자 고민했던 시간이 무색할 만큼, 빠르게 주문했다.


스마트폰으로 들으면 될 것을. 굳이 왜?


시간은 참 빠르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스마트폰이 아닌 2G폰, 인스타그램이 아닌 싸이월드. 스트리밍 서비스가 아닌 MP3로 음악을 들었다. 급속한 변화를 몸소 겪으면서 과거의 속도가 그리울 때가 많다. 초등학생 때, 헬로키티 MP3에 좋아하는 곡을 차곡치곡 담아 들었던 기억. 가족끼리 어떤 사진을 인화할지 도란도란 모여서 고르던 순간. 이제는 애플리케이션 하나로 음악이 재생되고 그 노래들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잊힌다. 우리의 추억도 그러하다. 아빠는 항상 말했다. “사진은 뽑아서 보관해야 해. 스마트폰으로 백날 찍어봐라! 나중에 들춰보나!” 그 후로, 메모장보다 종이에 글을 쓰고 사진은 인화를, 음악은 LP와 CD로 소유하기 시작했다.

 

국내 유일의 LP공장을 보유하고 있는 마장뮤직앤픽처스 하종욱 대표는 “음악은 ‘듣는다’는 동사 이외에도 ‘느낀다’, ‘만진다’는 동사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들으면 듣는 그 순간만 남는다. LP와 CD는 이런 결핍을 채워준다. 눈으로 보고 직접 만져볼 수 있다는 것은 음악을 진정으로 소유한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LP로 음악을 듣는 것은 생각보다 번거롭다. 하지만, 이를 극복할 만큼 음악을 풍부하고 또렷하게 감상할 수 있다. 디지털 음원에서는 느끼지 못한 소리의 폭과 깊이를 누릴 수 있다. 획일회된 음악소비에서 벗어나 그날의 기분에 따라 앨범을 고르는 재미도 쏠쏠하다.

 

레코드는 나를 기록하는 또 다른 방법이 되기도 했다. 하나둘씩 가시화된 시간은 과거의 나를 꾸준히 증명했다. 사라질 뻔한 찰나의 소중함을 고스란히 간직했다. 앨범 하나하나에는 때 묻은 시간의 흔적과 각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소유의 매력을 느낀 후, 이는 어느새 습관이자 취미, 그 자체로 나만이 갖는 역사가 되었다.

 

*

 

갖고 싶은 레코드만 수두룩하다. 가고 싶은 LP바도 마찬가지. 언젠가 음악 취향이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밤새 이야기를 나누는 상상을 한다. 물론, 약간의 알코올도 있다면 더욱더 좋을 것이다.  그날을 위해 새로운 아티스트를 찾고 좋은 음악을 디깅하고 맘에 드는 레코드를 소장하면서 나만의 보고 듣는 삶을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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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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