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는 악기: 2021 ㅊㅊ-하다 페스티벌 [공연]

2021 ㅊㅊ-하다 페스티벌: 기악
글 입력 2021.11.2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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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음악에 있어서만큼은 세계시민정신이 투철한 사람이다. 귀에 들어온 멜로디가 마음에 들면 그것이 지구 반대편의 이름 모를 가수가 부른 노래더라도 찾아서 플레이리스트에 쑤셔 넣는다. 이렇듯 '멜로디 좋으면 다 돼' 인간인 덕에 나의 플레이리스트는 K-pop, J-pop, Pop의 삼파전 + 그 와중에 근근이 라틴계 음악과 인도 음악이 끼어드는 식이다. 나는 국경을 초월한 '팝순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사실 나는 국경 뿐만 아니라 장르도 가리지 않는다. R&B부터 댄스, 힙합 등 안 듣는 게 없는데, 이런 내가 유독 안 듣는 장르가 두 개 있다. 심지어 국내 장르에서. 트로트와 국악이 그것이다. 물론 트로트와 국악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길거리에서 <범 내려온다>나 <사랑의 배터리>가 흘러나오면 사람인 이상 당연히 나도 내적 댄스를 춘다. 하지만 내가 '음악을 듣고 싶다'고 생각할 때 찾아 듣는 플레이리스트에는 국악과 트로트가 없다.

 

그런 내가 어쩌다 시험을 사흘 앞둔 11월 24일 저녁 7시 30분에 '국악 공연'을 보기 위해 얌전히 좌석에 앉아 있는 처지가 되었을까. <2021 ㅊㅊ-하다 페스티벌: 기악> 편의 초대권을 받고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 가기 위해 세 번의 환승을 거치면서 속으로 몇 번이나 한숨을 내쉬었는지 모른다. 왜 젊은 사람들의 전통 공연이라는 슬로건에 혹해 인생에 들여 본 적도 없는 국악을 들으러 왔을까, 하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조명이 꺼지고 첫 번째 공연이 시작됨과 동시에 깨끗이 사라져 버렸다.

 

 

 

'우는 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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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의 러닝타임은 1시간 10분 가량이었는데, 총평을 하자면 사실 러닝타임이 의미가 없었다. 딱히 시계 볼 일이 없었던 탓이다. 오묘한 조명을 받으며 물아일체가 된 공연자들의 연주를 멍하니 듣고 있다 보니 1시간 10분이 금세 끝나버렸다. 집에 돌아온 지금도 나라는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국악으로 가득 찬 공연을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여전히 놀라는 중이다.

 

담백하게 말해 나는 이 공연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가야금산조를 연주한 이유림 분, 아쟁산조를 연주한 김수진 분, 소아쟁협주곡을 연주한 청춘악단 낭랑, 해금과 가야금을 연주한 강서연&조은솔 분, 그리고 가야금과 거문고, 장구를 포함하여 여섯 대의 국악기를 연주한 Mo:tion 모두 저마다의 색이 뚜렷해 결단코 지루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이번 공연에서 특히 내 눈에 띄는 MVP 악기가 하나 있었다. 바로 '아쟁'이다. 대중에게 유명한 가야금과 거문고, 장구 등에 비해 아쟁은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악기다. 나는 이번 연주를 통해 이 악기가 얼마나 멋진 악기인지 온 달팽이관으로 느껴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1시간 10분의 공연이 내 음악생활에 있어 매우 큰 수확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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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쟁은 활을 사용해서 '켜는' 현악기다. 우리에게 익숙한 바이올린, 첼로와 그 연주 방식이 유사하다. 현을 활로 가르듯이 켜다 보니 음향의 느낌도 비슷하다. 하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바이올린의 소리와는 비교가 불가하다고 생각한다. 바이올린이 그 특유의 날카롭고 가벼운 선율을 뽐내는 한 마리의 새라면, 아쟁은 그냥 사람이다. 바이올린이 지저귈 때, 아쟁은 '운다'.

 

무슨 말인가 의아하겠지만, 말 그대로 아쟁은 '운다'. 나는 이 공연을 통해 평소 음악 수업 시간에도 접하기 힘들었던 아쟁의 소리를 운 좋게 세 번이나 연달아 듣게 된 셈인데, 세 번이나 들으니 그것은 악기라기보다는 차라리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소리가 '커졌다가 작아진다'는 감상을 주는 서양 현악기들과 달리 아쟁은 소리가 '가까이 다가왔다가 멀어진다'는 감상을 준다.

 

비유하자면 듣고 있는 사람에게 아쟁이 손을 뻗었다가 거두고, 뻗었다가 거두는 느낌이랄까. 한마디로 공간감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특히 이 다가옴과 멀어짐을 잇는 소리들이 인간의 '울부짖음'과 흡사하다. 그리고 다른 악기들의 연주들을 들으면서 확신했다. 서양 악기의 소리가 음향이라면, 우리나라 악기의 소리는 음성과 흡사하다. 그것도 '우는' 사람의 음성.


음향과 음성의 차이는 간단하다. 음향은 인간에게 듣기 좋은 배경음이 되어 주지만, 음성은 인간의 귀와 마음을 사로잡는다. 가령 어딘가에서 새가 지저귀면 듣는 사람은 기분이 좋아질 수는 있겠으나, 어느 나무에서 어떤 새가 지저귀는지 확인하기 위해 발걸음을 멈추고 나무를 쳐다보는 수고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말을 건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던 길을 멈추고 누가 누구를 부르고 있는지, 어떤 말을 하려고 하는지 귀를 기울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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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금일 공연을 통해 내 또래의 젊은 사람들이 국악을 계속 이어가는 이유가 바로 이들 국악기의 '언어' 때문임을 깨달았다. 물론 음성은 듣는 사람을 항상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듣는 이의 기분을 상하게 할 때도 있다.길거리에서 취객이 말을 건다고 생각해보라. 그리고 새소리 음향처럼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내용을 담은 '언어'이다. 그것도 매우 잔잔하게 울부짖는 사람의 언어다. 그리고 언어를 가졌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악기는 곧 사람이다.

 

 

 

나가는 말



최근 우울한 일이 많았는데, 본 공연에서 아쟁과 거문고와 가야금과 해금을 비롯한 국악기들의 멋진 대리-울부짖음을 들으며 우울감의 80% 정도를 청산한 것 같다. 아쟁이라는 악기가 유독 많이 등장하기도 했고, 나에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겼기에 지면의 대부분을 아쟁에 할애했으나 필자는 본 공연에서 거문고와 해금, 가야금의 변신도 매우 인상깊게 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꼭 언급하고 싶은 것은 바로 본 공연에서 목격한 '국악 연주자들의 태도'이다.

 

우리는 TV에서 바이올린 연주, 혹은 피아노 연주에 심취해서 땀방울을 흘리는 연주자들을 종종 본다. 그리고 그런 연주자들을 '멋지다', '섹시하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가야금 혹은 거문고를 연주하면서 땀방울을 흘리는 연주자들을 본 적이 있었는가? 아마도 없었을 확률이 높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TV에서 무아지경에 이른 표정을 하고 바이올린을 켜는 연예인들을 볼 때마다 멋지다고 생각했으나 그런 연주가 국악에서도 가능하리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국악도 무아지경의 경지가 가능하다. 나는 무아지경을 넘어 물아일체에 다다른 것이 바로 우리 국악 연주자들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얼마나 연주자들이 악기에 '진심'인지를 알고 싶다면, 공연장에서 그들의 표정과 손가락을 유심히 살펴보면 된다.심지어 필자는 오늘 연주에서 주최진의 과실으로 마이크가 고장난 상황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몰입한 얼굴로 해금을 간드러지게 연주하는 연주자를 목격했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주는 물아일체의 현장은 다른 어느 악기 연주자들보다도 '클래식Classic'하다.

 

'코리안 클래식'이라 한다면, 그것은 바로 국악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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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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